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일본은 결국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감행했다. 이 조치의 공식 이유는 한국에 대한 신뢰 약화와 더불어 전략물자 및 무기 전용 가능 품목의 수출 관리라는 ‘안보 논리’였다. 한국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의 종결로 대응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한국이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키면서 역사를 바꿔 쓰려 한다고 비난했지만, 이 비난은 일본 자신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지리학자 하비에 의하면, ‘신제국주의’는 연계된 2가지 논리, 즉 경제(자본) 논리와 안보(영토) 논리에 따라 작동하며 정당화한다. 한-일 갈등은 우선 안보 논리, 즉 일본의 영토 침탈과 식민 지배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이 이를 진솔하게 반성했다면, 한-일 관계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일본은 이에 대한 한국의 요구와 강제징용 배상을 거부하면서 경제 보복을 감행하는가? 여기에는 안보 논리와 경제 논리가 뒤얽혀 있다. 한-일 갈등과 동북아의 긴장 상황은 과거 일제의 만행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또 다른 배경을 가진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한반도는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남북 분단으로 다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한·미·일의 이른바 ‘해양세력’과 북·중·러의 ‘대륙세력’ 간 대립 구조가 있었다. 이 대립 관계는 1990년대 탈냉전으로 해소됐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는 지금도 잔존한다. 한-일 갈등을 추동하는 또 다른 모멘텀은 탈냉전 후 확산된 신자유주의와 관련된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자본 논리에 따라 자본주의의 지구화를 촉진했다. 이로 인해 국가 기능이 약화되고 국경이 이완될 것이라 추정됐지만 실제 그렇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자본 축적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함에 따라, 일부 선진국들은 자국우선주의로 회귀하면서 국가 장벽을 다시 쌓고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는 이 같은 3층위의 지정학적 단층들, 즉 일제의 영토 침탈과 식민 지배, 냉전체제에서의 해양·대륙세력 간 대립, 신자유주의의 퇴조와 국가주의로의 회귀가 깔려 있다. 현재 이 단층들의 역동적 활성화로, 동북아 정치경제 질서는 극히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한-일 갈등뿐 아니라 미-중 분쟁, 남북 및 북-미 협상에서 나타나는 긴장도 이에 기인한다. 미-중 무역분쟁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신자유주의 출구전략으로 시작됐다. 또한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이 지역 국가들을 하나의 세력권으로 묶는 새로운 전략을 밝혔다. 반면 ‘중국식’ 신자유주의로 급성장한 중국은 자유무역 유지를 주장하며, 미국이 빠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일대일로 정책으로 또 다른 세력권을 구축하려 한다. 남북 간 갈등과 협력관계의 반복, 북-미 비핵화 협상의 합의와 파기의 악순환도 이런 지정학적 역동성에서 비롯된다. 1990년대 이래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의 한계를 겪으면서 중국처럼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입할 기회를 모색해왔다. 하지만 체제 유지를 위한 핵 보유를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개혁·개방의 기회를 놓쳤다. 현재 북-미 비핵화 협상도 이런 지정학적 딜레마 속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한-일 갈등, 미-중 분쟁, 남북 및 북-미 협상의 현재 상황뿐 아니라 미래 전망과 문제 해결 방안도 동북아 나아가 세계 (신)제국주의 역사에서 뒤얽혀 있는 자본 논리와 영토 논리, 그리고 이에 따라 중층화된 지정학적 역동성과 관련해 논의될 수 있다. 만약 국가 간 충돌이 양국 모두 나아가 세계 경제의 몰락을 초래한다면, 이는 아마 자본의 논리에 따라 해결 또는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역분쟁의 상당 부분은 신자유주의의 퇴조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상대국에 전가하려는 전략에서 유발된 것이다. 따라서 분쟁이 어느 한 국가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 전까지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일 갈등은 신자유주의 퇴행기의 경제 문제가 일본의 과거 역사 부정과 새로운 제국주의 모색, 그리고 동북아 안보체제의 재편과 뒤얽혀 있기 때문에 점점 더 꼬여갈 것 같다. 한국 정부는 한-일 갈등의 극복을 위해 소재·부품·장비산업을 혁신하고 안보 역량을 강화하려 한다. 물론 이런 방안도 필요하다. 이에 더해, 정부는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지정학적 모멘텀들을 면밀하게 파악하면서, 국가 간 경쟁을 심화할 경제 논리나 안보 논리의 제고보다 화해와 협력, 동북아 평화 질서의 구축을 위한 대안 논리를 찾아야 한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모든 동북아 국가에도 해당된다.
칼럼 |
[최병두 칼럼] 지정학적 역동기의 한일갈등과 동북아 |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일본은 결국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감행했다. 이 조치의 공식 이유는 한국에 대한 신뢰 약화와 더불어 전략물자 및 무기 전용 가능 품목의 수출 관리라는 ‘안보 논리’였다. 한국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의 종결로 대응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한국이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키면서 역사를 바꿔 쓰려 한다고 비난했지만, 이 비난은 일본 자신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지리학자 하비에 의하면, ‘신제국주의’는 연계된 2가지 논리, 즉 경제(자본) 논리와 안보(영토) 논리에 따라 작동하며 정당화한다. 한-일 갈등은 우선 안보 논리, 즉 일본의 영토 침탈과 식민 지배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이 이를 진솔하게 반성했다면, 한-일 관계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일본은 이에 대한 한국의 요구와 강제징용 배상을 거부하면서 경제 보복을 감행하는가? 여기에는 안보 논리와 경제 논리가 뒤얽혀 있다. 한-일 갈등과 동북아의 긴장 상황은 과거 일제의 만행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또 다른 배경을 가진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한반도는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남북 분단으로 다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한·미·일의 이른바 ‘해양세력’과 북·중·러의 ‘대륙세력’ 간 대립 구조가 있었다. 이 대립 관계는 1990년대 탈냉전으로 해소됐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는 지금도 잔존한다. 한-일 갈등을 추동하는 또 다른 모멘텀은 탈냉전 후 확산된 신자유주의와 관련된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자본 논리에 따라 자본주의의 지구화를 촉진했다. 이로 인해 국가 기능이 약화되고 국경이 이완될 것이라 추정됐지만 실제 그렇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자본 축적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함에 따라, 일부 선진국들은 자국우선주의로 회귀하면서 국가 장벽을 다시 쌓고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는 이 같은 3층위의 지정학적 단층들, 즉 일제의 영토 침탈과 식민 지배, 냉전체제에서의 해양·대륙세력 간 대립, 신자유주의의 퇴조와 국가주의로의 회귀가 깔려 있다. 현재 이 단층들의 역동적 활성화로, 동북아 정치경제 질서는 극히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한-일 갈등뿐 아니라 미-중 분쟁, 남북 및 북-미 협상에서 나타나는 긴장도 이에 기인한다. 미-중 무역분쟁은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신자유주의 출구전략으로 시작됐다. 또한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이 지역 국가들을 하나의 세력권으로 묶는 새로운 전략을 밝혔다. 반면 ‘중국식’ 신자유주의로 급성장한 중국은 자유무역 유지를 주장하며, 미국이 빠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일대일로 정책으로 또 다른 세력권을 구축하려 한다. 남북 간 갈등과 협력관계의 반복, 북-미 비핵화 협상의 합의와 파기의 악순환도 이런 지정학적 역동성에서 비롯된다. 1990년대 이래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의 한계를 겪으면서 중국처럼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입할 기회를 모색해왔다. 하지만 체제 유지를 위한 핵 보유를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 개혁·개방의 기회를 놓쳤다. 현재 북-미 비핵화 협상도 이런 지정학적 딜레마 속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한-일 갈등, 미-중 분쟁, 남북 및 북-미 협상의 현재 상황뿐 아니라 미래 전망과 문제 해결 방안도 동북아 나아가 세계 (신)제국주의 역사에서 뒤얽혀 있는 자본 논리와 영토 논리, 그리고 이에 따라 중층화된 지정학적 역동성과 관련해 논의될 수 있다. 만약 국가 간 충돌이 양국 모두 나아가 세계 경제의 몰락을 초래한다면, 이는 아마 자본의 논리에 따라 해결 또는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역분쟁의 상당 부분은 신자유주의의 퇴조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상대국에 전가하려는 전략에서 유발된 것이다. 따라서 분쟁이 어느 한 국가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 전까지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일 갈등은 신자유주의 퇴행기의 경제 문제가 일본의 과거 역사 부정과 새로운 제국주의 모색, 그리고 동북아 안보체제의 재편과 뒤얽혀 있기 때문에 점점 더 꼬여갈 것 같다. 한국 정부는 한-일 갈등의 극복을 위해 소재·부품·장비산업을 혁신하고 안보 역량을 강화하려 한다. 물론 이런 방안도 필요하다. 이에 더해, 정부는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지정학적 모멘텀들을 면밀하게 파악하면서, 국가 간 경쟁을 심화할 경제 논리나 안보 논리의 제고보다 화해와 협력, 동북아 평화 질서의 구축을 위한 대안 논리를 찾아야 한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모든 동북아 국가에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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