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두 ㅣ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현대사회는 초연결사회라고 일컬어진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람들 간 연결성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 간 관계는 점점 더 단절되고 있다.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혼밥, 혼술, 혼족 등과 같은 용어가 유행한다. 누구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통계청이 며칠 전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9’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고립을 심각하게 우려하도록 한다. 1인 가구는 2018년 585만가구로, 전체 가구의 29.3%를 차지한다. 1990년 9.1%였던 1인 가구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서, 이제 전형적 가구 유형이 됐다.
1인 가구의 비중이 높다고 해서 개인 생활이 고립되거나 국가복지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차례로 2017년 기준 40%가 넘는다. 이런 북유럽 국가들은 소득 수준이 높고 복지제도의 발달로 사회적 관계망이 잘 갖춰져 있어 1인 가구가 고립의 위기에 처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35.9%가 200만원 미만 소득자로, 다인 가구에 비해 소득 수준이 낮고, 임시·일용직과 비임금근로자의 비율이 높다.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30~40대로, 자립해야 할 연령층이 오히려 고립되고 있다. 이들은 일반가구에 비해 단독주택에 사는 비율이 높고, 생계비 지출이 많은 반면 사회활동이나 여가를 위한 지출은 적다.
이런 현황을 보고받은 대통령은 4인 가구 기준 주거 및 사회복지정책을 바꾸어 1인 가구 종합정책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동안 1인 가구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대책들은 1인 가구 증가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대체로 단편적이거나, 포장만 그렇게 했을 뿐 실제 1인 가구 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흔히 1인 가구의 증가 원인으로 개인 성향이나 비혼과 만혼, 이혼, 사별 등 가족 문제가 거론되지만, 1인 가구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근본 문제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개인 특성이나 가족 해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1인 가구의 고립은 경쟁과 대립, 양극화와 불평등, 부의 독점적 사유화, 복지체계 미흡, 공동체 해체와 개인주의 확산 등에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고립은 1인 가구에 한정되지 않는다.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다인 가구에서도 가족의 실직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은 1인 가구에서 더욱 절박하다. ‘고독사’는 그 전형적 문제다.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 여론화된 고독사 문제는 무연고사회의 결과로 진단된다. 우리 사회는 일본보다 출산율이 더 낮고 비혼·만혼 추세가 더 빠르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를 피하기 더욱 어렵다.
사회적 고립의 원인으로 공간적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 급속한 도시화로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도시에는 친근한 주민은 없고 낯선 타자들만 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이 일반화됐지만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이웃은 찾아볼 수 없다. 온정이 오고 갔던 골목길, 동네 가게, 재래시장은 사라지고, 돈으로 거래되는 커피숍, 편의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사회적 고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우선 지역밀착형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지방정부의 과제다. 예로 서울시는 지난 10월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종합계획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자치구별 1인 가구 지원센터 설치, 1인 가구 지원 온라인플랫폼 구축, 1인 가구끼리 서로 돕는 품앗이 개념의 ‘시간은행’ 서비스 등과 함께 1인 가구끼리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하며 소통하는 공유 생활공간의 확충 계획이 포함된다.
생활공간의 공유화는 사회적 관계망 구축을 위한 장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공유부엌, 공유식당, 나아가 공유육아시설, 공유작업장, 공유회의실 등 다양한 공유 생활공간의 활성화는 사회적 고립 해소뿐 아니라 주민들의 공동체 운영 역량 강화, 나아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사회자본의 확충에 기여할 것이다.
다른 한편 중앙정부는 사회적 고립의 근본 원인 해소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안정된 일자리의 확보, 사회적 양극화 해소, 사회적 경쟁과 갈등 완화, 복지 확충과 전달체계 정비 등과 함께 도시 개발로 생성된 사회적 부의 공유화를 위한 포괄적 계획은 중앙정부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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