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16 20:19 수정 : 2019.12.17 18:52

박한식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미국 민주주의를 표준으로 삼는 국내 풍토를 비판한다. 한편으론 한국 민주주의의 이데알튀푸스(이념형) 가운데 하나인 ‘왕정의 유산’이 극심한 당쟁과 사대주의 행태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2017년 1월 서울 덕수궁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극우파들이 태극기보다 더 큰 성조기를 펼친 채 행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길을 찾아서’ 20회-한국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한국 후진적’ 비판하는 지적 풍토 ‘불편’

한국 민주주의 역사적 도전 과제 5가지
‘왕정의 유산’ 성조기 시위 등 사대주의
‘일제의 유산’ 독립 막은 친일파들 득세
‘분단의 유산’ 한민족 독자 정치의식 부재
‘전쟁의 유산’ 빨갱이 본능적 적대 여전
‘냉전의 유산’ 안보·군사적 긴장 일상화

미국산 수입 제도-한국역사 도전 ‘충돌’
‘개인의 자유’ 간첩조작·고문 등 유린
대권주자-특정 종교세력 결탁 ‘정치실종’
다수결 승복·정치적 타협 문화 ‘취약’

‘평화 우선’ 통일 부정적 사유 확산 추세
“한국 민주주의 과제는 한반도 평화통일”

박한식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미국 민주주의를 표준으로 삼는 국내 풍토를 비판한다. 한편으론 한국 민주주의의 이데알튀푸스(이념형) 가운데 하나인 ‘왕정의 유산’이 극심한 당쟁과 사대주의 행태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2017년 1월 서울 덕수궁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극우파들이 태극기보다 더 큰 성조기를 펼친 채 행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나는 한국을 방문해서 지인들과 만나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많았다. 무심코 듣다 보면 거의 언제나 미국 민주주의가 하나의 표준으로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진’ 민주주의를 예로 들면서 한국의 ‘후진’ 민주주의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를 듣고 돌아올 때면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어찌하여 미국 민주주의를 한국 민주주의가 따라야 할 표준으로 간주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국 민주주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수한 환경에서 제기된 도전에 응전하기 위해서 고안된 ‘미국적’ 민주주의가 아니었던가? 그런 특징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한국 민주주의 역시 한국이 처한 특수한 환경에서 제기된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할 수 있는 ‘한국적’ 민주주의로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미국 민주주의가 아니라 앞서 ‘길을 찾아서’ 18회에서 제시한 민주주의의 이데알튀푸스(이념형)여야 마땅하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에 제기된 역사적 도전을 5가지 범주로 정리해봤다. 첫째, 왕정의 유산이 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는 모두 왕정으로 통치되었다. 왕정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특히 조선시대는 신유학을 국교로 정함으로써 정치문화의 질적 변화를 초래했는데, 그로부터 파생된 가장 대표적인 유산이 당쟁과 사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이른바 ‘식민사학’ 극복의 명분으로 당쟁과 사대주의를 외면하거나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당쟁과 사대주의의 유산을 온존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다. 오늘날 한국 정치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는 타협 불가능한 정치적 투쟁, 그리고 성조기를 들고 시위할 정도로 미국에 편향된 사유양식 등은 조선시대의 당쟁과 사대주의의 유산을 빼놓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일제 식민지배의 유산이 있다. 일제는 창씨개명 등을 통해서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고자 했다. 그 와중에 친일파가 득세하고, 독립운동가는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는데, 그처럼 부조리한 유산이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예컨대 ‘독립운동가 후손은 3대가 망한다’는 말은 일제 식민지배의 유산을 예증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분단의 유산이 있다. 한반도가 외세에 의해 물리적으로 갈라지면서 한민족의 사유양식에도 분단의 골이 깊어졌다. 그래서 한민족 공동의 번영을 기약할 수 있는 독자적 정치의식을 개발하지 못했다.

넷째, 한국전쟁의 유산이 있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특히 국군이 양민을 ‘빨갱이’로 간주해서 학살한 사람이 무려 100만여명에 이른다. 여순사건, 제주 4·3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구자환 감독이 양민학살 현장을 10여년간 답사하면서 제작한 영화, <레드 툼>(빨갱이 무덤)과 <해원>을 보면 남한 전역이 킬링필드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아버님도 빨갱이로 몰려 평생을 고난 속에서 사셨다. 나 역시 빨갱이의 별칭인 종북학자 내지 친북학자로 간주되어 학문 연구와 사회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도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본능적으로 저주하는 적대감이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여전히 지배한다. 한국에서 빨갱이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냉전의 유산이 있다. 냉전은 분단과 한국전쟁의 유산 등을 화석화했다. 한반도에서 불신·공포·무력 등을 요체로 삼는 안보 패러다임을 고착시켰고, 남북간의 ‘정통성 전쟁’(legitimacy war)을 가속화했으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일상화했다. 그런 와중에 남한과 북한은 모두 군사강국이 되었다. 남한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본뜬 군산복합체를 보유하고 있고, 한-미 군사훈련을 연례적으로 하고 있다. 그로부터 위협을 느낀 북한은 핵무장 국가가 되었다.

박한식 교수는 분단·전쟁·냉전의 유산을 안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는 안보 패러다임에 갇혀 한반도 평화통일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2017년 9월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사실상 핵무장 국가임을 공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한국 역사에서 제기된 도전을 직시할 수 없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이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민주주의는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는 대신,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설정한 의제를 해결하는 데 더욱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친일파가 친미파로 변신해서 한국 민주주의를 선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미국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수용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면서도 극심한 갈등과 각종 부조리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한 제도와 한국의 역사적 유산에서 제기된 도전 간의 충돌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이데알튀푸스를 잣대로 한국 민주주의에 내재된 문제의 실상을 분석해본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개인의 자유가 유린된 사건으로 점철된 역사이기도 하다. 친일 경찰이 주도한 반민특위 사건, 일제 판검사가 주도한 국회 프락치 사건, 간첩의 누명을 씌워 희생시킨 조봉암 사건, 해방 이후 최대 간첩조작 사건인 동베를린 사건, 인혁당 사건, 5·18 광주민중학살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지금도 국회에서는 한국전쟁유족회에서 간청하는 과거사법을 통과시켜주지 않고 있다.

18세기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자유와 방종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자유는 반드시 사회 질서의 근간인 법과 규범을 준수하는 절제력(discipline)을 요구한다. 자유가 절제력을 상실하게 되면 이내 방종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한국 민주주의에서 주장하는 자유는 방종에 가까운 사례가 많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에서는 탈북민이 가세한 인권단체에서 북한으로 ‘삐라 풍선’을 날려 보내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의 이름으로 옹호했다. 국제정치의 세계는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북한에 삐라를 보내는 행위가 빌미가 되어 전쟁이 발생한다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그 전쟁을 방어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북한은 남한에서 풍선을 계속 보내면 총격을 가하겠다고 수차례 경고했었다. 자유를 방종으로 이해하는 무지가 한반도의 대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한식 교수는 ‘자유’를 넘어선 ‘방종’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오히려 위협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14년 10월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민통선 부근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날렸을 때 북한군이 총격을 했고 이에 한국군도 대응사격을 한 사례가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민주주의에서 중시하는 자유는 기본적으로 계몽사상에서 탄생한 가치다. 그런데 계몽사상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요체로 삼는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 허용하는 정치적 자유와 종교적 자유는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 그런 분리는 종교의 터전을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한정함으로써 정치의 공적 영역에 침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유력 대권주자와 특정 종교가 긴밀하게 제휴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체험한 가장 끔찍한 재앙은 대부분 정치와 종교가 결탁한 종교전쟁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종교전쟁이 끝없이 창궐하는 중동을 보라! 협상과 타협을 요체로 삼는 정치적 투쟁은 협상과 타협이 불가능한 종교적 투쟁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게 되면 협상과 타협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정치 그 자체가 실종되어버리고 만다.

박한식 교수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정교 분리’가 ‘정교 결탁’이 될 때 정치는 실종한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20일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에 나선 황교안(왼쪽) 자유한국당 대표가 ‘개신교 극우세력’ 전광훈(오른쪽) 목사와 함께 손을 잡고 ‘반문재인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민주주의에서 중시하는 평등이라는 가치는 다수결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 다수결은 평등을 전제했기 때문에 반드시 승복을 요구한다. 다수결에 승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평등을 부정하는 특권적 주장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한국 민주주의에서는 승복의 문화가 대단히 취약하다.

권력집중이 아니라 권력분립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그런 상식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는 제대로 통용되지 않았다. 주지하듯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불법적으로 행사하면서 국민의 인권을 수없이 유린했다. 그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대통령을 국부나 국모로 이해하는 현상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왕정의 유산을 탈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그런 반면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 민주화가 진전되자 대통령의 권력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런 공감대에는 유럽 자유민주주의 사상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최소정부를 지향하기 때문에 통치자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통치자의 권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통치자의 권력이 약한 정부는 정치적으로 무능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무능한 정부는 사회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함으로써 독재정권이 들어설 빌미를 제공하기 쉽다.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장면 정부가 박정희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합법적 행사를 의미한다. 민주주의에서 권력분립을 수단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목적은 권력의 불법적 행사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권력의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통치의 핵심 수단인 권력을 약화시키면 통치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가 안보, 경제 성장, 분배의 정의, 환경문제 해결 등과 같은 공공이익(public good)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동의를 기초로 운영되는 정치체제다. 내가 볼 때 국민의 동의의 요체는 중산층의 지지다. 솔직히 말해서 상층의 일차적 관심사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있고, 하층의 관심사는 경제적 생존에 집중되어 있다. 그 반면 중산층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서 국가의 공적 가치와 장래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특히 중산층이 활동하는 시장의 문화는 민주주의의 문화와 ‘선택적 친화성’을 지닌다. 중산층이 시장에서 합리적 계산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행위는 선거판에서 합리적 계산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하는 행위와 질적으로 유사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기업 중심 경제개발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중산층이 육성되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이는 중산층의 몰락이 가속화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산층이 몰락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합리적 설득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체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에서 합리적 설득의 문화 역시 대단히 취약하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폭력적 시위가 연출되는가 하면, 국회의원의 장외투쟁도 매우 빈번하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 간의 사생결단적 투쟁의 양상을 유심히 관찰하면 조선시대 당쟁의 양상을 쏙 빼닮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합리적 설득을 방기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지 않겠는가?

박한식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합리적 설득 문화가 취약해 국회에서도 종종 폭력 사태를 연출한다고 진단한다. 2008년 1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극한 충돌은 <타임> 아시아판 표지(맨 왼쪽 사진)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양 민주주의의 이데알튀푸스에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한국의 역사적 유산에서는 선명하게 드러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가 하나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오직 한국 민주주의에 부과된 특수한 과제다. 평화적 통일 없이는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는 영원히 기약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유통되는 한국 민주주의 관련 연구서나 교과서에는 한반도 평화통일의 과제가 거의 공통적으로 빠져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가 주로 미국에서 발간된 민주주의 책을 보면서 따라 한 데서 파생된 심각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여론의 풍토’(climate of opinion)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중요성이 자꾸만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다’, ‘통일 대신 평화를 우선시해야 한다’ 등등의 견해가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여론의 풍토’를 선도해야 할 지식인들 사이에서 민족의 실존적 도전을 외면하는 통일 부정적 사유가 팽배하는 까닭은 그들의 몰역사적·반지성적·비주체적 사유양식에서 파생된 것이다. 도대체 그들이 숭상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어떤 지식인이 미국이 직면한 도전을 외면한 적이 있었나? 한국 민주주의는 한국이 직면한 민족의 실존적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하는 ‘한국적’ 민주주의여야만 한다. 한국 지식인의 존재 이유도 바로 그 과제의 해결에 헌신하는 데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집필 이현휘 제주대 특별연구원/구술정리 박연진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한식의 평화에 미치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