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7.11 18:29 수정 : 2019.07.11 19:06

현실에서 의미가 매우 중한 이익의 사유화, 비용(및 위험)의 사회화라는 열쇳말이 정작 학계에서는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특히 주류 경제학이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해 있고 시장가치 및 시장균형 개념을 우상처럼 섬겨온 탓이다.

이병천
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강원대 명예교수

세상사의 부조리와 그 때문에 겪는 우리들의 고통에 대해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이익의 사유화와 비용의 사회화라는 부조리는 대표적 반열로 손꼽을 만하다. 이 부조리는 국가·재벌 동맹의 주도 아래 숨가쁘게 압축 불균형 발전 가도를 달려온 한국 사회의 고질병, 그리하여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잘 짚어 준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의미가 매우 중한 이익의 사유화, 비용(및 위험)의 사회화라는 열쇳말이 정작 학계에서는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특히 주류 경제학이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해 있고 시장가치 및 시장균형 개념을 우상처럼 섬겨온 탓이다. 또 성장 및 효율을 제일 가치로 섬기는 주류 경제학 패러다임에서 비용의 사회적 전가는 성장가치 달성을 위해 부득이한 부수 효과 정도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이른바 ‘외부성’ 또는 ‘외부효과’라는 말에는 그런 함축이 담겨 있다.

외부성 담론은 효율성 가치의 입장에서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사유 재산권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회적 비용 담론은 비용의 사회적 전가로 이익을 독식하는 자들한테 그 책임을 묻고, 시민의 사회권의 입장에서 고삐 풀린 자본 재산권의 민주적 통제를 주장한다. 이는 사회권과 재산권의 다양한 타협, 나아가 ‘커먼즈’나 사회적 공통자본 같은 대안적 재산체제의 논의장을 열어 놓는다. 이 대목에서 사회적 비용론이 외부성론과 어떻게 갈라지는지 분명해진다. 카프(K. W. Kapp)가 말한 대로, 외부성을 넘어 사회적 비용이라는 말에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할 때다. 사회권론과 재산권론에도 새로운 혁신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권력이, 그것에 끌려다니는 국가권력이 시민사회 사회권의 요구를 호락호락 들어줄까. 그럴 리 만무하다. 지배권력의 비용 사회화 요구와 대항적 사회권 요구 간의 이중운동(칼 폴라니)은 불가피하다.

오늘의 기후위기는 환경에 비용을 전가한 발전양식이 낳은 대표적 재앙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지구 환경, 대한민국 환경 회복력의 재구축 없이는 정치·경제·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 영국에선 얼마 전 ‘멸종반란’이라는 단체가 점거시위를 벌였는데 영국 역사상 최대의 시민불복종운동이었다고 한다. 영국 의회는 ‘기후변화 국가비상사태’ 선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배출원, 즉 에너지·농업·제조업·교통 분야 등에서 발본적 녹색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교통 분야에서 전세계적으로 내연기관차 퇴출과 전기차로의 전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내연차 산업을 갖고 있지 않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가 선두인 것은 그렇다 쳐도 자동차 강국인 독일, 일본, 심지어 중국과 인도도 2040년 판매금지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은 어떤가.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미세먼지특위에서 환경부가 제출한 ‘2040 내연기관차 종식 선언’이 상정조차 되지 않고 기각됐다는 소식이다. 자동차업계가 수용하기엔 너무 급진적이란다. 한국이 중국, 인도보다 후진부대가 아닌가. 정부가 혁신성장의 일환으로 수소경제 로드맵을 제시한 것과도 일관성이 없다. 폭염의 시대에 이런 뒷걸음질이 과연 혁신적인가, 지속가능할까.

사회경제적 생태계 문제로 돌아오면 이익 독식/비용 사회화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생각나는 것들을 중심으로 대강 추슬러 보면 다음과 같다.

■ 재벌지배 세습자본주의 한국 재벌은 지속적 불균형 발전 과정에서 비용의 사회화로 이익을 전유한 최대 수혜자다. 총수 가문의 지배권 및 부의 대물림을 위해 정경유착, 무노조 경영 등 어떤 비리도 서슴지 않으며 금수저·흙수저의 불공정, 불평등 구조 재생산을 선도했다. 삼성이 그 꼭짓점에 있다. 이재용은 박근혜·최순실과 함께 국정농단의 주역이었고 삼성바이오 회계사기의 주동 혐의도 매우 짙다. 삼성은 해외에서도 무노조 경영 전략을 도모했음이 폭로됐고 노동권 침해 혐의로 프랑스에서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 약탈적 산업생태계 대기업이 비용을 하층 기업에 전가해 비용 절감 수단으로 활용하는 강자독식의 다단계 이중구조 문제다. 하층 기업은 다시 그 비용을 하청노동자한테 전가함으로써 갑을문제는 얼굴을 달리한 계급문제가 된다. 이는 기업·산업 수준에서 공정한 상생협력과 사회적 분업의 확장을 억압하고 소득주도성장도 가로막는다. 이 정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생계형 적합업종제도 도입, 인건비 변동에 따른 납품대금 조정 신청 등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재벌 자율을 존중하는 3단계 개혁론으로 더 이상의 개혁은 멈췄다.

■ 위험의 외주화 원청 사업주가 위험업무를 하청업체에 외주로 돌림으로써 하청 비정규 노동자가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고 원청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위험, 나아가 죽음의 외주화 문제다.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유족 및 사회적 투쟁의 결과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도급금지 작업을 한정해 김씨를 죽음으로 내몬 발전소 분야를 제외하는 등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 프랜차이즈 갑질? 가맹본사의 불공정 횡포로 점주는 쓰라린 눈물을 흘린다. 이 분야에서 고질적 불공정행위는 이른바 악명 높은 ‘육갑’(六甲·6대 갑질)로 요약되기도 한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가맹사업자 및 대리점 사업자 단체구성권’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관여하에 프랜차이즈협회가 자체 자정방안을 발표하는 등 약간의 진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갑질을 막을 수 있는 가맹점주 집단적 대응권 강화는 실현되지 못했고 공정거래법 제19조(부당 공동행위 금지)도 개정되지 못했다. 을지로위원회의 폐지도 중대 실책이었다.

■ 부동산 지대추구사회 건물주와 집주인에게 막대한 불로소득을 안겨주는 반면 다수 세입자는 뛰는 임대료 부담과 가계부채로 사업불안, 생계불안에 떨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8차에 걸친 미봉책이 실패한 뒤 지난해 9·13 대책에서 처음으로 종합부동산세 개편 방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의 효과가 없지는 않았으나 시민사회로부터 ‘찔끔 증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집값 상승 기미가 보이자 다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시행될지, 효과가 어떨지는 불확실하다.

이상과 같이 이익을 독식하고 비용을 사회화하는 다중 불공정·불평등 체제로는 진정한 사회혁신의 길은 열릴 수 없다. 하지만 정의로운 전환은 놀고먹으며 국민에 기생하는 국회의원, 삼성 떡값을 중간에서 챙긴 것으로 알려진 국회의원, 반헌법적 노동자유계약제를 주장하는 국회의원과 그들의 정당에 고삐를 채우지 않고는 난망하다. 또 일본의 수출 규제 대책을 논의하는 청와대 간담회 자리에 굳이 ‘오너 참석’을 요구하는 식의 과거회귀적 행태로도 어려울 듯하다. 여전히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이병천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