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1 18:26
수정 : 2019.04.01 19:32
[한겨레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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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동창인 김아무개씨가 2016년 9월 서울서부지법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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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현직 부장검사가 고교 동창 사업가로부터 수천만원의 뒷돈을 받은 사실이 <한겨레> 보도로 드러났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폰서 검사’ 사건이다. 스폰서였던 김아무개씨가 최근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와 수사관, 정부를 상대로 5천만원을 물어내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수사팀이 자신을 ‘강제로’ 포토라인에 세워 수갑을 찬 모습 등이 언론이 공개되면서 자신과 가족의 고통이 컸다는 이유에서다. 애초 판사 한명이 선고하는 단독 재판부에 배당됐던 이 사건은 지난 2월 판사 3명으로 구성된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진상범)에 재배당됐다. 지난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패싱’ 논란 이후 피의자 인권 보호와 국민 알권리가 충돌하는 포토라인 관행이 법원 판단을 받는 첫 사례다.
1일 김씨 쪽과 검찰 쪽이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살펴봤다. ‘공적 인물’이 아닌 김씨를 포토라인에 세운 것이 관련 규정을 어겼는지가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당시 80억원대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김씨는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강원도 원주로 도주했다. 김씨는 2016년 9월5일 서울서부지검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는데, 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이날 오전 <한겨레> 보도로 김씨가 김형준(사법연수원 25기) 전 부장검사의 오랜 스폰서였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씨의 주장은 이렇다. 체포 뒤 서울로 접어들 때쯤 한 수사관이 검사로 추정되는 인물과 통화를 했다고 한다. 통화를 마친 수사관이 “법원에 도착하면 기자들이 준비한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고 알렸지만, 김씨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도 아닌데 왜 언론 앞에 서야 하느냐”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스폰서’ 김씨 “인권 침해”
‘공적 인물’ 아닌데 언론에 공개
검사 등 상대 “5천만원 물어내라”
사건 주인공 검사는 비공개 조사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주장
검찰 “국민 알 권리 차원” 뇌물공여·사기범죄 여론 관심 커
“인권침해 줄이려 얼굴 모자이크”
검사는 빼 ‘제 식구 감싸기’ 비판
“법원에 설치…검찰 책임없다” 맞서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22조)은 ‘사건 관계인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소환·조사·압수수색·체포·구속 등 일체의 수사과정에 대해 언론이나 제삼자의 촬영·녹화·중계방송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적 인물’에 대해 소환할 때에 한해 공개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뒀다. 공적 인물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이 포토라인에 섰던 것과 달리, 자신의 사례는 이 준칙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것이 김씨 쪽 주장이다.
검찰은 당시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모두 취했다는 입장이다. “언론보도 과정에서 원고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됐다. 게다가 이미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상태여서 김씨의 실명, 직업 등 신상이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김씨가 과연 얼마나 추가적인 손해를 입었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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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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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포토라인 위치도 문제 삼았다. 일반적으로 포토라인은 검찰 소환 조사나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등 피의자가 ‘피할 수 없는’ 동선에 맞춰 설치된다. 하지만 김씨의 포토라인은 판사로부터 영장심사 일정을 통보받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서울서부지법 청사 현관에 설치됐다. 김씨 쪽은 “굳이 피의자가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절차였다. 지하 통로를 통해 방송 카메라 등을 피해 이동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서울서부지검과 서울서부지법 청사 지하에는 두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다. 피의자들은 이 통로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김씨 역시 처음 포토라인에 선 뒤로는 계속해서 지하 통로 등을 이용해 움직였다. 검찰은 법원에 설치된 포토라인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에서 허용한 포토라인 설치에 대해 검찰에서 금지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씨 쪽은 핵심 피의자인 김형준 전 부장검사를 검찰이 비공개 소환했다는 점에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언론도 검찰의 이런 행태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씨를 대리하는 김인숙 변호사는 “검찰이 포토라인을 자의적으로 운영해 피의자의 기본적인 인권마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김씨의 사기 범죄에 따른 피해가 80억원 상당이었다. 또 김형준 전 부장검사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과 관련해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언론에 공개되는 등 여론의 관심이 컸던 상황이었다”며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 필요 최소한의 조처를 취했다고 강조했다.
수갑을 찬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것을 두고도 양쪽이 맞붙고 있다. 검찰은 흰 천으로 수갑을 가려서 “괜찮다”는 입장이지만, 김씨 쪽은 “검찰이 가려주지 않아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스스로 가린 자기방어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얼굴 모자이크 처리에 대해서도 “선처”라는 검찰 입장과 달리, 김씨 쪽은 “가족과 지인들이 다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형준 전 부장검사에게 징역 1년의 집행유예(2년) 및 벌금 1500만원을 확정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16년 11월 해임됐지만,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해임 불복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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