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5 20:51
수정 : 2019.07.07 11:45
노동절 참사 소송, 비뚤어진 법의 잣대
“두 크레인 소통 실패·조작 과실 탓”
신호수 등 현장 노동자만 금고·벌금형
하청 대표·삼성중 간부들에 ‘면죄부’
사고 예방·안전 미비 등 눈 감고
다단계 내세워 ‘윗선 책임 못 물어’
산재 사고마다 ‘기업 면책’ 되풀이
“행님, ‘골리앗’에서 무전이 들어왔습니다. 붐(지지대) 다운해야겠습니다.”
“이거 고철통 한개만 더 올리고 붐 다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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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1일 경남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지브크레인이 골리앗크레인과 충돌해 엿가락처럼 휜 채 근로자 31명의 피해가 발생한 선박 건조 작업장 쪽으로 맥없이 넘어져 있다. 거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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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1일 노동절 오후, 경남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하청업체 대흥기업이 운영하는 지브크레인(32t급) 운전수와 신호수가 무전을 주고받았다. 삼성중공업의 골리앗크레인(800t급)으로부터 작업 요청이 들어오자 하던 일을 끝낸 뒤 지지대를 내리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브크레인이 ‘붐 다운’하지 않은 상태에서 골리앗크레인이 몸을 틀었고 지브크레인과 부딪혔다. 지지대가 무너지며 지상의 화장실과 흡연실을 덮쳤다. 노동절에 일하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크레인 운전자와 관리감독자 15명, 삼성중공업이 재판에 넘겨졌다.
■ 6명 사망 사고에 1년6개월의 집행유예가 최고형 1심 법원의 판단은 2년여 뒤 나왔다. 지난 5월7일 경남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2단독 유아람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삼성중공업과 임직원, 협력업체 대표 15명 가운데 골리앗크레인 신호수인 이아무개(50)씨 등 말단 직원 9명에게 최대 1년6개월 금고형의 집행유예 또는 500만~7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반면 하청업체 대표, 삼성중공업 중간관리자와 조선소장, 삼성중공업의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와 산업재해 예방조치를 다하지 않은 혐의 등에는 무죄가 선고됐다.
유 판사는 사고 원인을 두 크레인 간 소통 실패와 노동자들의 조작 과실로 봤다. 지브크레인은 ‘고철통 옮기는 데 5~10분 정도 소요되니 기다려달라’고 골리앗크레인 쪽에 말하지 않았고, 골리앗크레인은 지브크레인의 움직임을 확인하지 않은 채 크레인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고는 상대 움직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두 크레인의 업무상 과실이 경합해 발생했다”며 현장반장과 반원의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안전 규정은 현장 작업자들이 철저히 준수할 때만 효과가 있다고 보면서, 하청업체 중간관리자 이상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충돌사고를 예방할 ‘중첩지역 통과 절차’와 ‘신호 조정 방법’이 마련돼 있지 않았고 △충돌방지 장치도 설치돼 있지 않는 등 안전대책과 관련 규정이 미비해 사고가 났다고 봤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크레인 경로상 충돌 가능 요소를 사전 조치했는가’ 등 추상적인 내용의 삼성중공업 안전 규정의 실효성을 다르게 본 결과다. 사고피해노동자 지원단의 김태형 변호사는 “안전 지침은 굉장히 구체적이어야 한다. 재판부는 안전대책 보강이 필요했다는 사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책임을 미루는 동기로 이뤄진 것이라 가정해 배척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조선소장과 삼성중공업은 협의체 운영 의무 위반 등만 유죄로 봐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 “규모 큰 현장일수록 지휘·감독자 책임 자유로워” 유 판사는 또 거제조선소의 노동자 수가 3만5천명(협력업체 2만5천명 포함)에 이르고 연면적이 100만평이 넘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관리감독자가 모든 근로자를 직접 지시·감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7단계의 계층 구조에서 작업자 바로 위 단계에만 관리감독 책임을 물었다.
산재 사고에서 ‘윗선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법원 논리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업무상 과실 치사상죄에서 말하는 과실은 “일반적·추상적이 아닌 직접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라는 게 기존 판례다. 안전사고 위험을 보고받고 묵살하는 수준이 돼야 상급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형사 책임은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는 고스란히 기업의 면책 논리로 작동한다. 2013년 1월 협력업체 직원 등 5명이 숨진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고 때도 법원은 “안전보호구 구매 업무는 직원이 기안해 부장이 최종 승인한다”며 도급 사업주인 삼성전자 인프라기술센터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법률원)는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의 안전보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따지는 법인데, 현장에서 발생한 특정 행위 위반 여부만 따지면 맨 밑에서 일하는 사람만 처벌받게 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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