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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2 21:05 수정 : 2019.12.03 02:42

<한겨레> 자료사진

소송 남용 막는데 필요하다지만
패소하면 수천만원대 변호사비
시민단체 공익 활동에 족쇄로

영·미 법계, 공적 판단땐 면제·상한 적용
“재판청구권 보장할 새 제도 필요”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2월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은 설악산 산양 28마리와 함께 문화재청과 강원 양양군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케이블카 설치로 피해를 보는 동물 입장에서 설치의 정당성을 따져보자는 취지였다. 재판은 첫 기일만 열린 채 지난 1월 종결됐다. 법원이 동물의 원고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단을 한 것이다. 이에 강원 양양군은 생명다양성재단에 소송비용 1652만원을 물라는 소송비용액 확정신청서를 냈다. 로펌 변호사의 성공보수가 포함된 금액이었다. 대리인단 서국화 변호사(동물권단체 피엔알)는 “문화재청에서도 소송이 들어오면 물어야 할 돈이 두배가 될 수 있어 항소를 포기했다. 대법원까지 판단을 받고 싶지만 비용이 고민됐다”고 말했다.

공익소송을 낸 시민단체들이 소송에서 져, 거액의 소송비용을 물어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송비용 부담이 공익소송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사소송법(98조)상 이긴 쪽이 소송비용액 확정신청서를 내면 법원 판단을 거쳐 진 쪽이 소송액수에 비례한 변호사 비용 등을 물어야 한다.

시민단체 언론인권센터는 2017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독촉장’을 받았다. 10년 전인 2007년 확정된 소송비용 211만원을 납부하라는 고지였다. 2003년 언론인권센터는 공정위가 언론사에 문 과징금을 취소하자 그 사유를 정리한 회의록을 공개하라며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냈다가 1·2심에서 졌는데, 공정위가 그 비용을 10년이 지나 청구해온 것이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10년 만에 소송비용을 미납하면 압류하겠다고 통보받아 당황했다. 1인당 1만원 회비로 임차료와 인건비 충당도 빠듯한 시민단체에는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공익소송의 대표 격인 정보공개 청구 소송의 경우 졌을 때 져야 할 부담이 더 크다. 정보공개 청구 소송은 행정기관의 정보 비공개 처분을 바로 잡아달라는 소송으로, 관련 법(민사소송 등 인지 규칙)은 일률적으로 그 소송액수를 5천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개정된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소가가 5천만~1억원대인 소송의 변호사 비용은 440만원이다. 대법원까지 가서 지면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이 1천만원이 넘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도 2016년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냈지만 비용 문제로 결국 상고를 포기했다. 패소로 끝난 1·2심까지 부담해야 할 비용만 1361만원이었다.

공익소송의 개념이 모호하고, 소송 남용을 막기 위해 패소자에게 소송비용을 물리는 게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 등은 소송 남용과 재판청구권의 균형을 도모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영국은 ‘보호적 비용 명령’ 제도로 공익소송 판단 기준을 마련해 공익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졌을 때 소송비용 지급 의무를 면제하거나 상한을 설정해준다. 미국은 공익소송의 경우 ‘편면적 패소자 부담주의’를 적용해 원고가 져도 변호사 비용을 물지 않아도 된다.

시민단체들은 소송의 공익성을 따져 소송비용 감면 제도를 마련하고,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 적용되는 일률적 소가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원이 자체 판단으로 소송비용을 감액할 수 있도록 대법원 규칙을 적극 적용해야 한다는 요청도 있다. 이종구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공익소송은 국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할 일을 누군가 대신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공익소송의 취지, 헌법상 재판청구권 보장을 위해서 새 제도를 설계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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