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찰스 보이콧은 19세기 말 아일랜드에서 부재지주 어니 경의 마름 노릇을 했던 영국인이다. 1873년부터 소작료를 징수하던 그는 일대에 악명이 자자했다. 소작인의 닭이 자신의 땅에 들어오는 것조차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을 징수했다. 그렇지 않아도 살인적인 소작료로 신음하던 소작인들의 분노가 쌓이고 있었다. 1880년 흉작이 들었다. 주민들은 소작료를 낮춰달라고 호소했지만, 보이콧은 소작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다고 오히려 소작농들을 쫓아냈다. 소작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마을 주민 모두가 보이콧과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보이콧은 자신의 농장에서 일할 일손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동네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도 없었다. 심지어 우편배달부도 배달을 거부했다. 보이콧 운동은 이렇게 시작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센 놈’을 배척하는 방식의 투쟁은 전세계로 퍼졌다. 지금 한국에서도 일본 보이콧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제품은 사지도 않고, 일본 여행은 가지도 않는다는 저항운동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한국 기업이 필요로 하는 물품 수출을 어렵게 만든 아베 정부의 조치에 대한 반발이다. 하지만 더 깊게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기업과 정부에 항의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의 일본 불매운동을 촉발한 ‘보이콧’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조짐은 올해 초부터 있었다. 그는 1월28일 중의원 본회의 시정 방침 연설에서 한국을 아예 빼버렸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말하고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지향하겠다”면서도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동북아를 정말로 안정된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의 발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새 시대의 근린 외교를 힘차게 펼치겠다”면서도 한국은 건너뛰었다. 아베 총리의 ‘한국 패싱’을 1938년 고노에 총리의 ‘국민당 정부 패싱’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중일전쟁 초기였던 1938년 1월 고노에 총리는 “국민당 정부와는 상대하지 않고 새로운 중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천명해 사실상 정부간 협상의 여지를 봉쇄하고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정부를 아예 무시하는 방식으로 ‘전면전’을 선언한 셈이다. 지난해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 원인을 제공했다. 10월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해당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최종 확정판결을 내렸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사법부 견해를 공식화한 것이다. 11월에는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12월에는 독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사이에 군사분쟁이 있었다. 즉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문제뿐만 아니라 안보분야에서도 한일 갈등이 폭발 직전의 수준까지 갔던 것이다. 아베 정부는 ‘전후체제의 탈각’이라는 방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모든 청구권은 1965년 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베 정부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청구권’이라는 표현에는 식민지배는 합법적이었지만 그 시기에 일어난 불편과 불행에 대해서는 보상을 했다는 역사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사과했고 특히 2015년 합의 이후 정부 공금으로 위로금 지원까지 했으니, 이 또한 완전히 영구히 해결됐다고 한다. 일관되게 보상과 위로금 청구권이 해결됐다고 하며, 배상 청구권은 언급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식민지배라는 국가폭력을 과거의 역사로 묻어두려는 것이다. 해서 현재 진행 중인 것은 ‘한일 경제분쟁’이 아니다. 피해자와 그 후손이 피해자의 인권을 인정받고, 제국주의가 그 인권을 폭력으로 짓밟았음을 이제라도 인정받으려는 ‘인정투쟁’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식민지배의 역사를 묻어두려는 세력과, 그 폭력성과 불법성을 세계가 인정하라고 외치는 시민이 대결하는 ‘세계역사전쟁’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21세기는 덜 야만적인 세상으로 만들어보려는 ‘미래전쟁’이다. 19세기 말 아일랜드의 보이콧 운동은 20세기 초 영국 토지법으로 귀결됐다. 이 법으로 아일랜드에서 부재지주는 사라지고 소작농은 농토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21세기 역사전쟁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칼럼 |
[서재정 칼럼] 경제분쟁이 아니라 역사전쟁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찰스 보이콧은 19세기 말 아일랜드에서 부재지주 어니 경의 마름 노릇을 했던 영국인이다. 1873년부터 소작료를 징수하던 그는 일대에 악명이 자자했다. 소작인의 닭이 자신의 땅에 들어오는 것조차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을 징수했다. 그렇지 않아도 살인적인 소작료로 신음하던 소작인들의 분노가 쌓이고 있었다. 1880년 흉작이 들었다. 주민들은 소작료를 낮춰달라고 호소했지만, 보이콧은 소작료를 제대로 내지 않는다고 오히려 소작농들을 쫓아냈다. 소작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마을 주민 모두가 보이콧과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보이콧은 자신의 농장에서 일할 일손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동네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도 없었다. 심지어 우편배달부도 배달을 거부했다. 보이콧 운동은 이렇게 시작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센 놈’을 배척하는 방식의 투쟁은 전세계로 퍼졌다. 지금 한국에서도 일본 보이콧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제품은 사지도 않고, 일본 여행은 가지도 않는다는 저항운동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한국 기업이 필요로 하는 물품 수출을 어렵게 만든 아베 정부의 조치에 대한 반발이다. 하지만 더 깊게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기업과 정부에 항의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의 일본 불매운동을 촉발한 ‘보이콧’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조짐은 올해 초부터 있었다. 그는 1월28일 중의원 본회의 시정 방침 연설에서 한국을 아예 빼버렸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말하고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지향하겠다”면서도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동북아를 정말로 안정된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의 발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새 시대의 근린 외교를 힘차게 펼치겠다”면서도 한국은 건너뛰었다. 아베 총리의 ‘한국 패싱’을 1938년 고노에 총리의 ‘국민당 정부 패싱’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중일전쟁 초기였던 1938년 1월 고노에 총리는 “국민당 정부와는 상대하지 않고 새로운 중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천명해 사실상 정부간 협상의 여지를 봉쇄하고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정부를 아예 무시하는 방식으로 ‘전면전’을 선언한 셈이다. 지난해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 원인을 제공했다. 10월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해당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최종 확정판결을 내렸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사법부 견해를 공식화한 것이다. 11월에는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12월에는 독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사이에 군사분쟁이 있었다. 즉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문제뿐만 아니라 안보분야에서도 한일 갈등이 폭발 직전의 수준까지 갔던 것이다. 아베 정부는 ‘전후체제의 탈각’이라는 방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모든 청구권은 1965년 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베 정부뿐만 아니라 많은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청구권’이라는 표현에는 식민지배는 합법적이었지만 그 시기에 일어난 불편과 불행에 대해서는 보상을 했다는 역사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사과했고 특히 2015년 합의 이후 정부 공금으로 위로금 지원까지 했으니, 이 또한 완전히 영구히 해결됐다고 한다. 일관되게 보상과 위로금 청구권이 해결됐다고 하며, 배상 청구권은 언급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식민지배라는 국가폭력을 과거의 역사로 묻어두려는 것이다. 해서 현재 진행 중인 것은 ‘한일 경제분쟁’이 아니다. 피해자와 그 후손이 피해자의 인권을 인정받고, 제국주의가 그 인권을 폭력으로 짓밟았음을 이제라도 인정받으려는 ‘인정투쟁’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식민지배의 역사를 묻어두려는 세력과, 그 폭력성과 불법성을 세계가 인정하라고 외치는 시민이 대결하는 ‘세계역사전쟁’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21세기는 덜 야만적인 세상으로 만들어보려는 ‘미래전쟁’이다. 19세기 말 아일랜드의 보이콧 운동은 20세기 초 영국 토지법으로 귀결됐다. 이 법으로 아일랜드에서 부재지주는 사라지고 소작농은 농토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21세기 역사전쟁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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