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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5 09:48 수정 : 2019.10.05 10:03

[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⑬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미스터리

정부, 2013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전교조, 취소 소송·집행정지 신청
1·2심 ‘처분 집행을 일단 정지하라’
고용부 재항고로 대법원 올라

‘법외노조 처분 집행정지가 옳다’
재판연구관 전원 같은 의견 올리자
‘고용부에 유리한 근거’ 검토 지시

참교육학부모회 등 학부모단체들이 지난 5월21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내가 검토한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도 다르게 진행됐다. 오로지 파기만을 전제로 한 법리 검토, 법리적 상식에서 벗어난 무리한 이유를 들어서까지 대법관님이 고집을 부려 몇차례나 보고해야 했다.”

2018년 7월26일 이종엽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일제 강제노역 재상고 사건’(이하 ‘강제노역 사건’)을 비롯한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지던 시점이다. 이 부장판사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했을 당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재항고 사건’(이하 ‘전교조 사건’)과 강제노역 사건을 검토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페이스북에 썼다. 언론의 확인 전화가 빗발치자 그는 이 글을 지웠다.

그로부터 1년2개월이 흐른 지난 9월27일 이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재판에 출석했다. 법정 증인석에 선 네번째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었다. 전교조 사건을 비롯해 강제노역 사건, 원세훈 대선개입 사건 등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이 판단한 굵직한 사건들이 ‘재판 거래’ 의혹 명단에 오르면서 당시 대법관들을 보좌했던 재판연구관들도 잇달아 증인으로 법정에 불려나오고 있다.

한쪽으로 기운 검토보고 지시

대법원에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3명의 대법관이 있다. 대법원 사건은 한해 4만건이 넘는다. 대법원은 대법관의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을 돕기 위해 법관·비법관 출신 재판연구관을 둔다. 이들은 대법관 한명에 배속되는 전속조와 민사·헌법·형사 등 전문 분야를 연구하는 공동조로 나뉜다. 2014년부터 2년 동안 헌법·행정법 공동조에서 일했던 이 부장판사는 2014년 12월 유해용 당시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에게 전교조 사건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페이스북에 쓴 그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 장관은 교원노조법 2조를 근거로 ‘전교조는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고 통보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처분을 일단 중단하라’는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서울행정법원에 이어 서울고등법원은 ‘위헌 법률 심판 제청 신청’을 이유로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지만, 고용노동부가 재항고해 2014년 9월 대법원까지 사건이 올라갔다.

이 사건은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에 배당됐다. 전속조와 공동조 재판연구관들의 결론은 일치했다. 전속조인 한애라 재판연구관은 형사·근로 분야 공동조의 이미선 재판연구관(현 헌법재판소 재판관) 의견을 참고해 고용노동부 재항고를 기각해야 한다고 보고했다(2014년 10월31일). 김정중 헌법·행정법 분야 공동조 총괄부장도 같은 취지로 간이 검토보고서를 올렸다(11월19일). 법률적으로는 비교적 간단히 결론 내릴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한다.

다른 재판연구관들 검토보고서가 고용노동부 재항고 기각 쪽으로 수렴되자, 사건 검토 지시가 이 부장판사에게까지 넘어왔다. 보통 집행정지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 양쪽 근거를 충분히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의아하게도 검토 방향이 한쪽으로 기우는 분위기였다. 2014년 12월 당시 유해용 선임재판연구관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근거인 교원노조법 2조가 헌법재판소 위헌법률심판 논의 대상에 올라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집행정지를 결정하면 문제는 없는지 검토해달라고 했다. 2015년 1월7일 유 선임재판연구관은 또 한번 “어려운 부탁을 드려 죄송하다” “보안에 각별히 유의해달라”며 이 부장판사에게 교원노조법 2조가 헌법에 부합한다는 근거를 보강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용노동부의 손을 들어줄 만한 판단 근거를 더 찾아보라는 식이었다.

이 부장판사는 고영한 당시 대법관과 면담한 뒤 거듭된 검토 지시가 고 대법관의 의중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지난달 27일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이 부장판사에게 검찰이 물었다.

“2015년 1월7일 추가 검토 지시가 내려왔을 때 고영한 전 대법관으로부터도 직접 재항고 사건 설명을 들었나요.”(검찰)

“그때는 파기환송 결정의 문제점을 정식 검토해달라고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 취지를 듣기 위해 고 전 대법관 방에서 어떤 방향으로 검토를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설명을 들었습니다.”(이 부장판사)

“고 전 대법관이 직접 ‘너무나 합헌인데 집행정지를 결정해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나요.”(검찰)

“그런 취지였습니다.”(이 부장판사)

“고 전 대법관이 전교조 사건을 파기환송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입니까.”(검찰)

“직접 그렇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 논리에 따른다면 파기환송에 이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이 부장판사)

고 전 대법관의 뜻과 달리 전교조 사건을 검토한 모든 연구관의 결론은 재항고 기각으로 정리됐다. 그러자 고 전 대법관은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2015년 5월28일 헌재가 교원노조법 2조를 합헌으로 결정했고, 집행정지 근거는 사라졌다. 닷새 뒤인 6월2일 대법원은 헌재 판단을 이유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3년 뒤에 발견된 ‘그때 그 문건’

당시 고영한 대법관 등이 이례적인 지시를 내린 배경을 추측할 수 있는 법원행정처 문건이 그로부터 3년 뒤 발견됐다. 2014년 12월3일 법원행정처 정다주 기획조정심의관이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에는 당시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시도를 의심케 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정 전 심의관은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정리·검토한 뒤 양 전 대법원장의 역점 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에 끼치는 영향을 정리한 표에서 ‘재항고 인용(인정하여 용납함)은 양쪽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대법원 사건의 최종 결정 권한은 대법관에게 있고, 당시 고 대법관이 특정 논거를 집중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정 전 심의관이 작성한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볼 수 있듯, 검찰은 전교조 사건이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과정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단순한 사건 검토 지시에 형법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고 전 대법관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재판과 큰 관련이 없었던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사건을 챙겨봤던 정황이 일부 확인된 상태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현재진행형이다. 고용노동부의 통보처분이 적법한지를 따지는 재판이 아직 대법원에 머물러 있다. 사법농단 사태로 전교조 재항고 통보처분을 둘러싼 진실까지 법원이 판단할 몫으로 남게 됐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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