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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6 15:57 수정 : 2019.04.08 15:07

[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② 땅 고르기

앙성땅, 풍경은 별로 교통은 편리
어머니 “한적한 전원주택 힘들어”
아버지 “경치 좋은 땅 알아보자”
땅 고르는 일은 집짓기의 출발
부족한 조건 보완하고 장점 살리면
평범한 땅에서도 좋은 장소 가능

논 한복판에 지어진 음성 ‘디귿집’은 외부 시선을 차단하고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보호된 외부 공간’으로 마당을 만들었다. 밖에서는 왕관 모양의 입면을 한 단단한 집이지만, 내부는 하늘로 열린 마당에 면해 유리문을 둘렀다. 시골집의 익숙한 재료와 질감을 현대적으로 담아냈다. 사진 진효숙
“안성이요?” “아니, 앙성.” “거기가 어디예요?”

앙성이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반응이었다. 사람들에게 설명했을 때도 반응은 같았다. 안성시는 알아도 면 단위의 작은 마을을 알기는 쉽지 않다. “앙성 막걸리가 맛있잖아요!”라고 기억하는 분들이 반가울 정도였다. 충북 충주시의 북서쪽에 있는 앙성면은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도가 만나는 곳에 있다. 여주시 아래로 남한강 줄기가 내려와 경계를 이루고 억새가 너울거리는 비내섬이 근처에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탄산온천 이 있는 곳이다.

어머님은 실용, 아버님은 감성

어머님은 앙성이 시가인 친구를 통해 이곳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건강 때문에 걷기운동을 하고 치료를 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근처에 탄산온천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주 오가다가, 아예 땅을 알아보셨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 선뜻 땅을 사기로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머님에겐 나름대로 명쾌한 이유가 있었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로 한 시간 거리, 탄산온천, 그리고 볕이 너무나 잘 든다는 것이다.

땅을 보신 곳도 자연 풍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나이에 한적한 전원주택은 힘들어. 교통도 편해야 하고 면사무소나 가게들과 가까워야 해.” 추진력이 좋으신 어머님은 이 실용적이고 정확한 기준으로 땅을 사셨다.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앙성은 탄산온천이라는 콘텐츠는 있지만 이렇다 할 개발은 추진되지 않았고, 민간 차원의 장밋빛 개발 계획으로 한차례 들썩이다가 무산되면서 땅값의 거품이 빠지던 상태였다고 한다. 땅은 면사무소와 멀지 않은 곳으로, 2차선 도로를 10m 정도 접하고 그 뒤로 120m 정도 들어가는 좁고 긴 모양새다. 주변은 모두 논밭이었다.

어머님의 ‘합리적인’ 선택과 달리, 아버님은 이렇다 할 풍경도, 기댈 언덕도 없는 땅을 그리 맘에 들어 하시지 않았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임시 거주 공간을 두고 머물렀지만 한동안 집을 지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도 과연 이곳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끔 그 땅을 팔고 ‘경치 좋은 땅’을 알아보자는 말씀도 하시곤 했다. 땅에 대해서는 아버님은 감성을, 어머님은 실용을 우선시하는 바람이 선명했다.

남들은 절경을 찾아 나선다는데 과연 여기에 집을 지어도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낯설기만 한 지역이었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점은 소도시가 갖는 풍경이었다. 군면 단위의 소도시들은 주로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배차되는 시외버스를 통해 연결된다. 중심 교통수단인 시외버스터미널과 면사무소, 보건소와 같은 공공시설이 지역의 중심을 만들면서 주변으로 상가들이 모여 있는 중심 가로도 생긴다. 짧게는 10㎞, 길게는 15㎞ 거리면 끝에 다다르는 작은 규모다. 밀도도 현저히 낮아서, 가로변의 건물은 2층을 넘지 않는다. 누구나 느껴봤듯, 낮은 건물이 만드는 저밀도 가로 풍경은 사람의 눈높이에 들어오는 스케일과 비례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낮은 가로변 위로 하늘이 더 넓게 펼쳐지고 낮게 드리운 오후의 햇빛이 부드럽게 퍼진다. 논밭 사이로 띄엄띄엄 군락을 이룬 집들이 펼쳐지는 느린 일상의 풍경은 그 자체로 평온함을 준다. 말 그대로 작고 한적한 동네다.

여기에 대지 주변의 상황은 우리에게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절경도 좋고 명소도 좋지만, 과연 땅에 좋고 나쁨이 있을까? 물론 법적인 측면, 대지의 용도, 지역 지구, 진입 도로, 건축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대지의 장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조건은 건축가가 그 땅을 어떻게 풀어낼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건축의 태도를 통해 땅의 부족함은 감싸고 장점은 살리는 것이 건축가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땅의 조건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으면, 건축이 만들어내는 가능성도 커진다. 예를 들어 디귿집과 케이브하우스는 그렇게 주변에 대응하는 다른 방식을 보여주기에 좋은 집들이다.

담을 칠 수 없는 판교 주택단지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집이 폐쇄적으로 돌아앉는 경우가 많다. 케이브하우스는 반대로 길을 향해 1층 높이의 커다란 아치창을 열었다. 길에 대해 열려 있지만 건물 안쪽으로 깊이를 주어 거실 내부와 길 사이의 적정한 거리를 확보했다. 완벽한 차폐 대신 적절한 소통 방식은 동네와 집 모두에게 좋은 풍경을 선사한다. 사진 신경섭

디귿집과 케이브하우스의 경우

충북 음성군 대소면의 디귿집은 논 한가운데 지은 시골집이다. 건축가 서재원, 이의행(aoa건축)이 설계한 이 집은 논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워 외부인들의 움직임이 많았다. 외부 시선을 차단하고 어린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된 외부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에 두 세대가 함께 쓰는 공간을 적절히 분리하기 위해, ㄷ자 형태의 집을 만들고 커다란 대문(입면)으로 막아 중정을 만들었다. 왕관 모양을 한 집의 정면은 시골에서 흔히 보는 익숙한 콘크리트와 벽돌 질감의 건물을 낯설어 보이게 한다. 황량한 주변에 대응하기 위해 건물의 몸집은 키운 대신, 규모가 작아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도 주었다. 실제 창보다 크게 보이는 윤곽을 넣은 것도 그런 제스처다. 무엇보다 마당에서 보는 이 집의 장면은 익숙한 시골집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담아낸다. 그리 크지 않은 마당의 아늑함은 마당을 향해 사선으로 깎아내린 지붕 덕분이기도 하다. 마당을 면해 복도와 거실을 두고 방 안쪽으로는 한식 창호를 두었는데, 화려할 것 없는 이 시골집의 장면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풀벌레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일 시골집의 깊은 밤의 적막이 보이는 듯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땅에서 내부를 보호하는 태도도 있지만, 과감하게 외부에 열린 집도 있다. 담을 두를 수 없는 판교주택단지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집이 돌아앉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주변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건축가 김광수의 케이브하우스는 오히려 꼭 집을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묻는다. 물론 동네에 열린 태도로 집을 만드는 것은 의뢰인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건축가는 집을 길에 완전히 등지는 대신 거실 앞으로 커다란 아치창을 만들어 마주하도록 했다. 1층 높이의 커다란 아치창과 유리블록 창은 길과 적극적으로 만난다. 보호장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치창을 동굴처럼 깊게 들여놓고 마당을 두면서 거실과 길 사이에 거리를 두었다. 마당의 나무는 거실과 길 사이를 적절하게 가려준다. 유리블록으로 마감한 창을 통해 빛과 움직임은 통하지만 사적 공간은 보호한다. 어쩌면 꽁꽁 싸매야 할 것 같은 심리적 불안감의 실체는 막상 경험하지 않았거나 익숙하지 않아서 커진 그림자일 수도 있다.

땅의 상황과 조건 읽어내기

이렇게 땅에 대응하는 건축가의 태도와 해석은 땅의 조건이 완벽하지 않아도 좋은 장소를 만들 수 있게 한다. 아늑하게 차단하면서도 경직되지 않게 지붕의 선을 조절하거나, 과감하게 열린 태도로 주변과 소통하면서도 적절한 깊이로 거리감을 만드는 것, 그것이 땅의 상황과 조건을 읽어내는 건축가들의 작업이다. 그러니 절경이 펼쳐지는 땅이 아니더라도, 혹은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땅이라 하더라도 그 땅을 어떻게 보완하고 다른 경험을 만드느냐에 따라 좋은 집이 만들어질 수 있다.

땅을 고르는 일은 집 짓는 일의 출발이자 토대라 많은 것을 결정한다. 거주의 목적에 따라 전원주택을 꿈꾸기도 하고, 도심 혹은 신도시에 조성되는 주택단지를 찾기도 한다. 양평이나 가평처럼 풍광이 뛰어난 곳, 강이나 호수를 면하거나 숲이 아름다운 곳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도시의 인프라가 중요한 경우, 신도시의 주택단지도 좋은 대안이 된다. 공공시설부터 전체 가이드라인까지 도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계획 아래 조성되는 주택단지는 필지 내에서 어떻게 지을지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되니 편리함이 크다. 그러나 절경이 없어도, 소박하다 못해 정체된 소도시의 풍경이라 해도, 그 풍경이 주는 매력을 담을 수만 있다면, 집은 얼마든지 아늑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

설계안을 보여드리기 전까지도 아버님은 ‘그냥 땅을 팔까?’ 하며 주저하셨지만, 주변으로부터 보호된 아늑한 공간을 만들되, 세 개의 마당을 통해 하늘과 외기에 열려 있는 아들의 설계안을 보신 후에는 마음이 머무신 듯했다. 완벽한 땅은 만나기 어렵지만, 좋은 장소는 건축으로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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