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⑧평면 만들기
호텔, 펜션 등 묵는 것도 좋은 경험
건축가가 공들여 지은 시설 늘어나
벽으로 방 나누지 않은 호텔에서
편안함 느끼는 이유 뭔지 고민
앙성집은 ‘파빌리온’으로 짓기로
공간 구분 안하고 문은 미닫이로
욕실 키워 뒷마당 바라볼 수 있게
“쓸모없는 공간에서 삶의 일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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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에서 뒷마당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을 낸 욕실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돈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염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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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축물을 방문해보는 것만큼이나 잘 설계된 호텔이나 펜션, 리조트에 묵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하룻밤 묵는 시간만큼 공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이 설계한 숙박 시설이 늘어나면서 특색 있는 공간을 경험할 기회도 많아졌다. 젊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소규모 펜션부터 건축가 서승모의 613여관, 조병수의 거제 지평집, 양진석이 설계한 설해원,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강릉 씨마크호텔, 민성진이 설계한 남해와 부산의 아난티 코브, 조민석의 골프 클럽하우스, 조병수가 설계한 남해 사우스케이프, 김찬중의 울릉도 힐링스테이 코스모스까지. 이곳에는 건축 미학이나 사용자의 요구, 그리고 휴식의 공간에 대한 건축가의 제안이 담겨 있다. 호텔의 전형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발코니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거나 층고와 공간 구성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는 변화는 사람들이 누리고 싶은 휴식의 경험이 달라졌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잘 설계된 호텔에서 배우다
휴가 때마다 우리는 집 설계를 핑계로 건축가들이 설계한 숙박 시설을 찾아 나섰다. 예산이 조금 넘어서더라도 건축가들이 공들여 구축한 공간을 경험할 기회에 기꺼이 수업료를 냈다. 역동적인 내외부 공간으로 리조트의 변화를 알린 것이 남해 아난티 코브(2006년)였다면, 평면의 흥미로운 변화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 ‘제이오에이치’에서 설계한 네스트 호텔(2014년)에서 볼 수 있었다.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객실’이라는 명확한 성격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침대는 아예 창가를 바라보고 있고, 투숙객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모던한 소파 겸 가구가 객실의 중앙에 이어져 있다. 외부의 풍경에 대응하는 평면을 구성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강릉 씨마크호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침실 공간과 응접실, 그리고 욕실을 구분하는 방식이었다. 소파가 있는 응접실에서 욕실로, 욕실에서 침실로, 침실에서 다시 응접실로, 동선이 ㅁ자를 그리며 이어지는데 침실은 유리문과 간이벽으로 여닫을 수 있었다. 문을 다 열면, 공간이 이어지고, 유리문과 간이벽을 닫으면 침실은 하나의 방이 되었다. 높은 층고와 전면 유리창이 주는 시원한 바다 전망과 느낌도 좋았지만, 필요에 따라 문을 여닫아 각 영역을 잇는 방식도 좋았다. 아이는 이 동선을 따라 마치 트랙을 돌 듯 끝없이 달리곤 했다. 또 욕조를 창가에 두면서 침실 크기만큼의 공간이 열린 욕실이 되었다. 각 공간의 용도는 구분하되, 벽을 세우지 않고 열어두고 필요에 따라 간이벽으로 여닫는 평면의 구성은 규모가 작은 공간에 유용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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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구획 없이 단일 공간으로 하되 벽을 유리로 해 자연을 볼 수 있게 하고 가구를 중앙에 모았다. 염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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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일이지만 숙박 시설의 평면에는 방의 구획이 없다. 투룸 스위트가 아니라면 하나의 방 안에서 침대와 소파, 욕실을 구분하는 정도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가구와 유리문으로 영역이 나뉜다. 어찌 보면 원룸 형태인 호텔 객실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해주는 요소는 무엇일까? 단일 공간 안에서 어떻게 각 영역을 지루하지 않게 구성할 수 있을까? 벽으로 공간을 나누지 않은 비교적 단순한 평면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려 애썼다. 작은 규모의 앙성집 역시 비일상적인 휴식의 공간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가구를 중앙으로 모으면
처음 평면을 계획할 때 건축가인 남편이 생각한 것은 하나의 파빌리온이었다. ‘파빌리온’은 본관의 부속 장치인 별도의 건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한시적인 이벤트를 위한 임시 구조물 혹은 일종의 가설 건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근대에 등장한 파빌리온들은 지붕, 기둥 등 최소의 요소만으로 건축을 구성하고 건물의 외벽을 유리로 마감하며, 자유로운 평면을 선보이곤 했다. 벽이 힘을 받는 구조에서 벗어나면서 더는 육중한 외벽은 필요하지 않았고 지붕은 기둥만으로 지지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년),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1945년) 등은 하나의 커다란 지붕 아래 최소의 기둥과 벽만으로 공간을 구축한다. 건물의 외벽은 유리로 마감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부분적으로 세운 벽은 공간을 완전히 구획하지 않는다. 방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복도가 중첩된 것처럼, 사람들의 발길을 이곳저곳으로 조용히 이끈다. 건축가 박헬렌주현이 설계한 여주 마임빌리지의 그리팅가든 역시 거대한 지붕 아래, 외벽 전체를 유리로 두르고 주변의 자연경관을 끌어들이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핵심은 주변의 자연을 향해 건축의 존재감을 최소화하고, 화장실만 집 속의 집처럼 별도의 방으로 두며, 그 외에는 사람들이 내부에서 어디든 머물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호된 실내에서 자연을 경험하며 건축물의 내외부 경계가 사라진 듯 머물 수 있다.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파빌리온의 기능은 종종 스스로 즐거움의 대상이 되는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기능에 충실한 곳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곳이라는 의미다. “파빌리온은 일상과 다른 공간이다. 내외부의 경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실내에서 외부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었다. 평면에서 보면 사람들이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창에 더 많이 서 있을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연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순환형 동선을 만들어주고, 가구를 중앙에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벽에 가구나 여러 설비를 넣으면 사람들은 집의 가운데로 모여 공간을 쓰게 된다. 기능이나 효율은 높아지겠지만 사람들이 외부와 닿는 면적은 작아진다. 아파트의 ‘게으른 거실’처럼 가장 넓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가구나 설비를 공간 가운데 넣으면 사람들은 그 가구를 중심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 동선은 비효율적이지만 외부와 접촉은 많아지고 바라보는 전망도 다양해진다. 우리는 방을 구획하지 않고 하나로 통하는 평면을 만들되, 벽체를 따라 가구를 두는 대신 중앙에 모으기로 했다.
목적 없는 공간이 일탈을 만든다
중요한 곳은 욕실이었다. 처음 현관 옆에 배치했던 화장실은 비교적 작고 소박해서 기능에만 충실했다. 여러 고민 끝에 남편은 화장실을 가장 안쪽 침실 옆으로 옮기면서 크기도 키웠다. 기능만을 충족시킬 것이 아니라 욕실에서의 경험을 위해서였다. 욕실의 창을 집의 뒷마당 쪽으로 향하게 내면서 욕조에서는 뒷마당의 나무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적어도 앙성에서 하루의 마지막은 이렇게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정돈할 수 있을 거다. 30평도 안 되는 작은 집에, 이런 여유는 과연 사치일까? “목적을 두지 않는 여백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쓸모없는 비효율적인 공간, 24시간 중 한 시간도 안 쓰는 공간이라도 그 공간의 경험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세컨드 하우스의 미덕이라면 그런 삶의 작은 일탈이 있는 공간을 경험하는 게 아닐까?”(염상훈)
ㅁ자 집(건축가 조병수 설계)의 아무런 목적 없는 고요한 공간을 떠올려보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중정을 둘러싼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그 공간들은 그냥 중정을 바라보며 앉거나, 음식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영역일 뿐이다. 앙성집 역시 거실과 식당과 주방을 공간 구획 없이 영역으로 구분하고, 집의 가장 안쪽에 침실을 두었다. 문은 열어둘 수 있는 미닫이문으로 내어 때에 따라 집의 끝에서 끝까지 모두 열어둘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침실 하나는 별동으로 두어 2세대가 지낼 때의 독립성도 고려했다. 앙성집은 건물의 양쪽이 모두 전면 유리로 마감된 파빌리온 같은 과감한 집이지만 원형의 담이 이를 둘러주면서 최소의 평안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평면을 결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제 세세한 결정들은 더 쉽게 내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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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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