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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7 09:43 수정 : 2019.07.27 10:02

[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⑩ 좌식과 입식 사이

걸터앉아 발 씻을 곳 없는 욕실
소파에 기대 바닥에 앉는 거실
바닥과 가구 사이 중간에 대한 갈증

거실에 툇마루 들여 눕거나 앉아
침실엔 평상, 마당엔 쪽마루
일상의 아늑함 선사하는 공간들

바닥 높이에 변화를 주면 자연스럽게 몸을 기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앙성집 안방에는 창틀을 넓게 하고 평상처럼 약간 높은 곳을 두어 아이가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염상훈 제공
늘 궁금한 게 있었다. 다들 집에서 발은 어떻게 씻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욕실 구조에서 곤란한 건 발 씻기다. 샤워할 때는 발에 물을 흘리는 정도고, 비누를 묻혀 제대로 씻으려면 늘 한 발을 들고 곡예를 하는 기분이 든다. 편하게 앉아 발을 씻고 싶은 바람은 목욕 의자의 힘을 빌려서나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너무 낮아 자세가 영 불편하다. 세면대, 욕조와 샤워기가 전부인 욕실은 기댈 곳이 없다. 이래저래 발은 홀대받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욕실만이 아니다. 집에서 생활하는 방식은 늘 입식과 좌식으로만 구분된다. 소파나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앉거나다. 종종 티브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소파를 등받이처럼 기대어 티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우리의 생활과 공간이 딱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 같다. 앙성집에 창틀에 앉아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상자를 만들어달라는 내 바람도 어쩌면 가구에 앉거나 바닥에 앉는 것이 아닌 중간 지점에 대한 갈증이 아닐까? 내게 필요한 것은 걸터앉는 자리, 앉거나 기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바닥 높이에 변화 주기

건축가들이 지은 집에는 종종 이렇게 바닥 높이에 변화를 주는 공간을 볼 수 있다. 건축가 조재원이 설계한 제주도 ‘플로팅 엘(L)’ 주택에는 거실에 툇마루를 만들었다. 집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지만 30㎝ 높이의 툇마루를 두면서 변화가 생겼다. 걸터앉을 수도 있고, 마루 위에 올라가 눕기도 좋다. 거실에 평상을 들여온 것 같은 이 툇마루를 조재원 소장은 ‘와식 공간’(일을 하지 않고 놀고먹는 공간)이라고 불렀다. 더구나 이 툇마루는 그대로 테라스까지 이어져서 앉아서 밖을 내다볼 수 있기도 하다.

건축가 조재원이 설계한 제주도 ‘플로팅 엘(L)’ 주택 거실에는 35㎝ 높이의 툇마루를 두었다. 걸터앉거나 누울 수 있는 이곳은 내부 공간을 더 아늑하게 쓸 수 있게 해준다. 사진 진효숙
건축가 이소진은 삼청공원 숲속도서관에다 창틀을 넓게 만들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이 넓은 창틀은 아늑하면서도 숲속 풍경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소진의 표현대로 ‘따뜻한 창틀방’이다. 좌식 공간에도 3개의 계단으로 높이 변화를 주었는데, 앉을 수 있는 방식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준다.

계단도 바닥 높이에 변화를 주는 요긴한 방법이다. 계단의 폭을 넓게 만들면 계단의 단 차이가 곧 앉거나 기댈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건축가 김효만의 ‘경독재’는 집의 내부에 2.5개 층을 가로지르는 사다리꼴 계단을 넓게 펼쳐냈다. 집을 대각선으로 분리해 2층 창을 통해 남쪽 빛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있지만, 이 계단은 집의 중심이 되는 거실 역할도 한다. 계단 곳곳에 넓은 계단참(계단 중간에 있는 좀 넓은 공간)을 둬서, 취미로 음악을 하는 가족들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거나 공연장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머물기도 좋고, 위층과 아래층을 서로 바라보기도 좋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이런 넓은 계단은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바닥을 높이거나 낮추거나, 혹은 계단을 두면서 집 일부분이 그 자체로 공간의 가구가 된다.

높이를 나눈다는 것은 건축적으로도 흥미로운 개념이다. 일본의 젊은 건축가 소 후지모토(후지모토 소스케)는 이를 극단적으로 실험하기도 했는데, ‘원시적이고 미래적인 주택’ 계획안에서 그는 높이 35㎝ 간격으로 층을 나눈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35㎝는 앉을 수 있는 높이, 그 두 배인 70㎝는 책상 높이가 되고 그보다 더 높으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35㎝ 단위로 공간을 나누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은 그곳에서 앉거나 서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머물 수 있다. 이를 통해 건축가는 “건물의 전체적인 질서를 세우기보다 부분의 관계를 통해 질서가 출현하는 것을 유도하고 싶었다”고 한다. 건축의 공간을 바닥, 벽, 기둥으로만 보지 않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숲이나 둥지, 동굴 같은 유기적인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가는 이 계획안을 통해 ‘지엽적인 관계가 모호한 질서를 만들어낸다’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상당히 과감한 이 개념은 2013년 영국 서펀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도 했는데, 층의 구분 없는 35㎝ 단위의 정글짐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연과도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었다. 벽이나 문 같은 물리적인 요소가 아니라, 높이나 밀도처럼 보이지 않는 요소를 통해 영역을 구분하는 시도는 개념적으로도, 지어진 건축물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앙성집 옆마당 쪽은 한옥의 쪽마루처럼 걸터앉을 수 있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걸터앉거나 기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외부 공간을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염상훈 제공

몸이 집과 맞닿도록

바닥과 가구 사이, 좀 더 자연스럽게 걸터앉거나 기대거나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 몸이 집과 맞닿는 방식을 다양하게 만든다. 창틀의 걸터앉을 수 있는 공간, 바닥 높이의 변화는 집에 내 몸을 기댈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집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기도 하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앙성집을 설계하며 적절한 곳을 골라 기댈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욕실에 편히 앉아서 발을 씻을 수 있도록 욕실 벽에는 걸터앉을 수 있는 작은 툇마루 형태의 단을 만들고, 침실에는 밖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창틀을 만들기로 했다. 또 침대 위쪽으로 넓은 평상을 끼워 넣은 듯 높이 차이를 두었다. 가드를 올리면 아이가 잘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평상시에는 걸터앉거나 눕기 좋은 곳이다.

걸터앉을 곳은 집 밖에도 이어졌다. 원형의 벽을 따라 앉을 수 있는 공간을 꼭 만들고 싶었다. 한옥을 답사할 때마다 좋았던 쪽마루가 이곳에는 더없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한옥의 쪽마루가 갖는 유용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30㎝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쪽마루에 앉아 벽에 기대는 것만으로도 바깥에서 바람을 쐬기에 최적이다. 가장 아늑한 옆마당에 원형 담을 따라 쪽마루 형태를 만들고 이를 따라 작은 지붕도 두르기로 했다. 투시도에 담아낸 이 작은 마당은 아마도 집이 완성되고 나면 내가 가장 사랑할, 또 가장 많이 머물 공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음을 설레게 했다. 결국, 집은 내 몸을 어떻게 담고 뉠 공간일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실현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아늑함을 원한다면 내 몸을 기댈 수 있는 공간 하나쯤 집 속에 담아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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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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