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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1 09:27 수정 : 2019.08.11 09:46

[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⑪조명 쓰는 법

우리나라 조명문화 일률적
지나치게 밝은 빛 선호
모든 방마다 천장에 설치

“전구, 램프 하나로 공간 달라져”
“옆에서 나오는 빛 편안함 줘”
조명은 집에 필요한 모닥불

앙성집의 조명 디자인 다이어그램. 공간별 특징에 따라 밝기를 다르게 하고, 각각의 공간이 빛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한다. 김연규·민영희 제공
밀려드는 일과 육아에 지칠 때면 늘 생각나는 카페가 있다. 늦은 저녁에 문을 여는 망원동의 한 카페다. 작은 탁자 3개와 6명이 앉을 수 있는 큰 탁자가 전부지만 그곳에선 늘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낮은 조도와 탁자 위를 밝히는 작은 조명이 만드는 장면 때문인 듯하다. 밤을 위한 카페답게 어두운 실내에는 작은 램프들만 탁자 위를 비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실내 공간에 떠 있는 불빛들을 보노라면 묘한 해방감이 든다. 그곳에서 나는 돌봐야 할 가족과 일에서 완벽히 분리된, 온전히 나만의 적막한 공간이 필요했다는 걸 느끼곤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집들에선 조도의 변화를 찾기 힘들다. 언제나 쨍하게 밝은 거실 중앙의 형광등은 집 전체를 환하게 비추고, 방마다 천장에 고정된 조명 덕에 방의 표정은 한결같다. 외국 영화에서 주인공이 집에 들어오면 집안 곳곳을 다니며 조명을 켜는 장면이 아직도 인상적이다. 플로어 램프에서 테이블 램프까지, 등 기구를 통해 집을 부분적으로 밝히는 방식은 우리와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조명 문화 차이는 집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우리나라의 조명과 이사할 때마다 들고 다니는 외국의 ‘내 조명’의 차이도 있지만, 구석까지 밝아 창백하기까지 한 형광등의 조도와 밝고 어두움이 공존하는 조도 간의 차이도 있다. 왜 우리의 집들은 밝은 형광등에 의존하게 된 걸까? 집에도 빛의 아늑함을 담을 수는 없는 걸까? 조명 디자이너인 김연규·민영희 네테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왜 우리나라는 밝음을 선호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밝은 게 좋다는 취향의 문제보다 사회적인 맥락도 있는 것 같다. 근대 주택에서 밝은 실내와 쨍한 빛은 부유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전쟁 때의 블랙아웃 현상으로 빛이 절실했고, 떨어지는 폭탄의 이미지를 통해 빛은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렇게 밝음에 대한 선호가 생겨난 게 아닐까 싶다.”(김연규) 밝음에 대한 집착은 공동 주거의 중앙집중적인 평면과 맞물려 ‘거실의 가장 크고 밝은 형광등’이라는 지금의 전형적인 실내 풍경을 만들어낸다. 편리하지만 뭔가 좀 아쉽다.

최근엔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가족 단위나 개념도 달라지면서 생활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알전구 하나, 테이블 램프 하나 켰을 때 공간이 얼마나 달라지는가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단계인 것 같다. 개별적으로 빛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는 것 같다.”(김연규) “예전엔 집을 소유하기 전까지 집을 가꾸는 데 인색했다면, 소유가 불확실해진 요즘은 전세 2년을 살더라도 공간을 가꾸고 싶어 한다.”(민영희) 아파트의 획일적인 주거 유형에서 다양한 집을 꿈꾸게 된 과정처럼, 효율과 기능에만 충실했던 집의 조명에도 변화가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빛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빛으로 공간을 디자인

처음 조명 디자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른 건 루이스 폴센 피에이치파이브(PH5) 제품과 독일의 유명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가 디자인한 아름다운 조명이었다. 그러나 조명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 디자인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극장 무대, 건축물, 공간, 도시 환경까지 빛을 통해 공간을 디자인한다. 김연규·민영희 대표는 조명 디자인을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전환을 생각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단순히 기구를 골라서 넣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과정으로, 빛을 다루기 때문에 채도가 아닌 명도를 본다고도 했다. “어떻게 하면 보기 편하게 만들어줄 것인가가 조명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모든 것이 보이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민영희) 그러니까 조명 디자인은 전체 공간에서 어디가 밝고 어디가 어두울지 계획하고, 이를 구현하는 방식을 정하고, 이를 실현할 기술적인 기구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빛의 설계 과정인 것이다.

건축이 빛으로 확장될 수 있겠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깨달은 우리는 앙성집의 조명 디자인을 두 디자이너에게 의뢰하고 협업하기로 했다. 이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개념을 통해 집이 어떻게 빛으로 물들어가는지를 보여주었다. 정해진 동선이 없고 원형인 앙성집은 자연광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이므로, 외부 조명과 내부가 시선을 교류하면서도 사람이 점유하는 집 안에서는 인공적인 안정감을 주는 게 첫번째 논리였다. 마당처럼 시선이 머무는 공간에는 덩어리처럼 빛나는 조명을 두어 많이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거실엔 천장 면을 타고 퍼져나가는 조명을 넣었고, 현관 옆 벽에는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떨어지는 빛을 디자인해 벽을 안정감 있게 구축했다.

빛의 성격을 고려하고 빛을 어떤 방향으로 보낼지에 대한 건축화 조명 스케치. 김연규·민영희 제공
사람들이 앉는 공간에는 마치 고양이가 옆에 앉은 것처럼 낮은 빛이 떨어지게 해서 마당의 빛이나 나무 그림자, 달빛이 실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고려했다. 북쪽 뒷마당에는 벽에 조명을 없애고 아주 작은 등 하나만 두었는데 벽은 사라지고 무한하게 확장되는 느낌을 준다. 앞마당에는 가로등처럼 작은 폴대형 조명을 제안했는데, 집 앞에 밝힌 가로등으로 낮과 밤이 묘하게 교차하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떠올랐다. 빛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원형 벽의 곡면을 따라 빛이 번지게 하면, 시간이 늘어지듯 뻗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앙성집의 평면 위에 크고 작은 빛의 위계를 보고 있노라니, 집은 빛에 의해 물들어가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싱크대 밑에도 간접조명을

빛의 힘이 이렇게 크다니. 꼭 집을 짓는 경우가 아니라도 천편일률적인 형광등 아래 놓인 일상의 공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의 팁도 듣고 싶었다. 가장 편한 것은 ‘작업’이 있는 곳에 빛이 있는 것이 좋다는 것. “싱크대가 있으면 하부에 간접조명을 달 수 있다. 방 전체의 네 면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는 공간에 빛을 주고 나서 방 등을 벽에 붙일 수도 있다.”(김연규) 창문 밖을 바라보는 게 좋은 사람은 창 안쪽에 조명을 달아도 밖을 바라보기 좋고 장식적인 조명을 활용하는 것도 로맨틱한 선택이라고 조언한다. “거실 중앙 천장에 등을 다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천한다. 옆에서 나오는 빛이 편안함을 준다.”(민영희)

무엇보다 조명 디자인에 조금 관심을 가지면 다른 차원의 공간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최근 공간에 대한 높은 관심은 뒤집어보면 ‘안정감을 찾고 싶다’는 어떤 불안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내 공간이 있다고 느끼는, 일종의 쉼터의 의미가 있다.”(김연규) 빛의 밝고 어두움에 따라 공간은 무한히 확장되기도 하고, 작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보고 또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반응도 유도한다.

왜 조명 디자인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우리에게 적막과 사색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현상학적인 빛의 향연처럼 적절한 어둠과 빛은 물리적인 경계를 사라지게 하고 우리를 명상과 몰입의 순간으로 이끈다. 건축이 빛과 그림자를 통해 구조와 공간을 표현한다면, 조명 디자인은 시지각적인 경험을 통해 내 공간을 만들어준다. 조명은 오늘의 집에 꼭 필요한 빛의 모닥불이 아닐까.

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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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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