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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3 09:26 수정 : 2019.10.13 09:32

[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⑭ 바깥 공간의 활용-마지막 회

단열 위해 밀봉되는 집들
점점 ‘편리함’ 기능만 남아

발코니처럼 바깥과 연결돼
하늘을 보고 바람 쐬는 일
‘바깥 부엌’ 만들어 느껴볼까

집 짓는 과정은 허들의 연속
관공서 허가 같은 뜻밖의 난관

건축가 조병수가 설계한 서울 종로구 구기동 주택의 옥상. 주변 집에 둘러싸여 채광과 환기가 좋지 않은 저층부 대신 옥상에 바람이 통하는 바깥 공간을 만들었다. 익스텐디드 메탈 레이어에 투명한 렉산(내구성이 뛰어난 반투명 건축 소재)으로 덮은 지붕이 빛을 끌어들이고 비를 막아준다. 세르조 피로네 제공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완공되어 처음 이사 왔을 때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중간 3개 층에 있던 개방형 발코니다. 새시를 덧대 막지 않은, 외부에 열린 발코니 풍경을 본 순간 숨통이 트였다. 문을 열고 나가 햇볕도 쬐고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공간의 존재가 아파트 입면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6개월이 채 지나기 전에, 모든 개방형 발코니는 창호로 기밀하게 막혀 내부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발코니를 확장하거나, 내부 공간으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면적과 추위 때문일 거다.

사계절이 있어 아름답다는 한국의 기후는 사는 집에는 냉혹하다.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는 60도까지 늘어났다. 그러니 집의 단열과 열효율은 점점 더 필수가 된다. 아파트와 일반 주거의 성능도 높아져, 최근에 지어진 집일수록 열 손실이 적다. 단열은 좋아졌지만 아쉬운 것도 있다. 집은 점점 밀봉된 상자가 되어가고, 바깥바람을 쐴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편리함’이라는 기능만 남는 느낌이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건축가 조병수의 사무실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상가 꼭대기에 있다. 전형적인 상가건물의 맨 위층에 오르면 예상치 못한 공간이 펼쳐진다. 옥상층의 건물을 두채로 나누고 그 사이 공간을 두었고, 앞으로도 작은 채를 하나 더 두었다. 비 내리는 것도 보고, 하늘도 보고, 바람을 쐬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건축가의 선택이다. 중요한 건 외부를 바라볼 수도 있고 문을 열면 바로 바깥 공간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가 2000년대 중반에 설계한 집도 ‘두 상자의 집’ ‘세 상자의 집’이라는 이름처럼 채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덥고 추운 날씨에 채를 나눈다는 것은 꽁꽁 싸맨 집보다 열효율이 떨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무릎 담요를 꺼내 들고 잠깐 나가 바람을 쐬고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생각을 환기할 수 있는 경험의 가치를 과연 효율성과 맞바꿀 수 있을까? 채를 나누지 않고 옥상에 바깥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다. 그의 최근작인 구기동 주택이 이런 사례다.

흥미로운 공간 ‘바깥 부엌’

도시건축가 김진애 박사의 책 <집놀이>(2018)는 집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구성할지, 이를 어떻게 놀이처럼 누릴 것인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던지는 책이다. 집을 물리적 공간 혹은 정서적 함축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운영하고 가족과 함께 활용하는 놀이터로 전환하는 발상이 집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부엌을 집의 중심으로 끌어낸다든지, 싱크대의 높이를 남자의 키에 맞춘다든지, 아이를 위해 숨바꼭질하고 싶은 집을 만든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집을 말 그대로 우리 스스로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게 한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깥 부엌’에 대한 언급이다. 김진애 박사는 하늘을 바라보며 요리를 하고 물을 쓰고 식사도 할 수 있는 ‘바깥 부엌’을 제안한다. 아파트라면 마당처럼 활용할 수 있는 발코니가 제2의 부엌이 될 수 있다. 짐이 쌓여 있거나 거실로 확장된 곳이 아니라, 물을 쓰고 불을 피울 수 있는 외부 공간의 매력이 부엌이라는 용도로 구체화한다.

그도 안 되면, 아파트 단지에 공용 시설로 바깥 부엌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나는 더 공감했다. 나 역시 아파트 단지에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바비큐 시설을 두면 어떨까 늘 상상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관리의 문제가 충분히 예상되지만, 오히려 공동체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키울 시험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야외에 나가 고기를 구워 먹는 게 전부인 펜션 나들이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직 설계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앙성집에도 바깥 부엌을 두고 싶다. 캠핑 바비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예 독립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릴을 두어 불을 쓸 수 있고, 그곳에서 바로 물로 씻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옆으로 긴 야외 식탁이 놓이면 좋겠다. 함께 모여 야외에서 요리하고 식사할 수 있는 자리다. 아니면 불을 피우는 장소를 아예 둘러앉을 수 있는 야외 가구로 만드는 것도 좋겠다. 불을 피울 수 있는 자리를 정해두는 것도 마당을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물론 수영장도 있으면 좋겠지만, 활용도가 낮고 유지 관리가 어려운 수영장 대신, 접이식 간이 풀장도 잘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공간만 있다면 설령 그곳이 옥상이든 발코니든, 여름 한 철 물을 가득 받아 아이들이 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런 행위들을 마당의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미리 계획하면 좋다는 것이다. 그 공간을 어떻게 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공간 구성이 더 수월해진다. 공간의 쓰임이 살아나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 건축가 미오 쓰네야마는 건축가 남편과 함께 자신들이 살 집을 조금씩 고치며 에너지 절감 건축 실험을 하고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한번에 완성되는 집이 아니라 조금씩 완성해나가는 집은 거칠지만 하나씩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료고 우타쓰, 미오 쓰네야마 제공

예측할 수 없는 집짓기의 어려움

집짓기는 전문가인 건축가에게도 어렵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땅을 측량하고,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용도를 변경하고, 설계를 통해 집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세운 뒤 지역 관공서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공사를 선정하고 땅의 기초를 다지고 시공을 하는 동안 또 많은 변수가 생기곤 한다. 날씨와 현장 상황은 시공 일정에 영향을 줘 예상 일정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집짓기를 할 때 속앓이를 하는 대부분은 이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그런 이유로 경제적으로나 경험으로나 탄탄한 시공사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컨드 하우스가 아니라면 금융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아파트를 팔아 집을 짓는 경우 임시 주거를 마련하는 방법과 기간이 중요해진다.

그 어려움 때문에 집 짓는 과정은 골치 아픈 일이 되곤 한다. 하지만 변수를 아예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예도 있다. 내 일본인 친구 미오 쓰네야마는 젊은 부부 건축가다. 결혼 뒤 살 집을 구하던 중 도쿄의 한적하고 비교적 땅값이 싼 건물을 구입한 두 사람은 아주 천천히 자신들의 집을 직접 고치며 친환경, 에너지 절감의 건축을 실험 중이다. 외부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고 자체적인 건물 유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실험이다. 시간과 예산이 날 때마다 곳곳을 수리하면서 집은 두 사람이 사는 동안 천천히 만들어지는 중이다. 첫 1년은 1층 현관에 벽이 없이 천막을 두르고 살았다는 말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느리게 완성되는 이들의 실험은 집이 꼭 완성된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앙성집처럼 허가 준비를 마치고 모든 협의를 끝냈을 때, 담당 공무원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면 허가와 관련해 모든 협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건축가가 자신의 집을 짓는 경우, 설계안을 손보는 시간이 더 늘어나기도 한다. 허가가 늦어졌으니,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없는지 다시 돌아보는 셈이다. 다행히 세컨드 하우스이니, 당장 거주 문제를 고민할 부담은 없지만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그런 이유로 앙성집의 시공 과정과 조경, 집들이까지의 이야기는 좀 더 나중의 일이 되었다.

아쉽게도 연재를 잠시 쉬고, 앙성집이 도면에 그려진 원형의 담과 3개의 마당으로 지어진 뒤에 그 과정과 결과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보다 더 현실적인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허들을 다 넘고 나면 우리가 꿈꾸는 드림 하우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도면과 모형이 아닌, 직접 살아본 사람의 아쉬움과 좋은 점을 더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집에 정답이 있을 리 없고, 수많은 이야기와 취향이 담길 뿐이니, 앙성집 완공 뒤 더 많은 집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 <끝>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하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임진영은 건축저널리스트이자 기획자다. 건축전문지 <공간> 편집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마크> <도무스> 등에 글을 쓰며 건축물 개방 축제인 ‘오픈하우스서울’을 기획하고 있다. 남편인 염상훈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자 건축가다. 움직이는 파빌리온 ‘댄싱 포레스트’ 등을 설계했다. 부모님과 함께 쓸 ‘앙성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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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임진영·염상훈의 앙성집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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