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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1 08:44 수정 : 2019.05.27 16:07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영화 100년, 한국영화 100선
②오발탄
감독 유현목(1961년)

19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를 이끈 유현목 감독의 대표작이 <오발탄>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차례 한국영화 최고 걸작에 선정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월남 작가 이범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4·19혁명 발발 직전에 기획되었지만 동인 프로덕션을 구성해 어렵게 제작되었고 국제극장에서 개봉했지만 5·16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곧 상영금지 영화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섯군데 화면을 삭제하거나 단축하는 것을 조건으로 재개봉된 영화는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출품되었고 그것이 현재 남아 있는 영화가 된 셈이다.

영화 ‘오발탄’의 주인공 철호는 잇따라 찾아온 불행한 사건에 혼란에 빠져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택시를 타고 횡설수설하던 철호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뿌리 없는 월남민으로서 한 가족의 각기 다른 굴절된 삶의 양태를 통해 시대를 증언하는 영화의 주 무대인 서울의 해방촌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전쟁과 근대의 그늘이 만든 빈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표현주의적 구성에 기초하면서도 리얼리즘적 정신을 구현하고, 모더니티의 흔적까지 경유한 <오발탄>은 전후 서울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의미를 탐색한다. 1960년대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을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몽타주와 표현주의, 서구 모더니즘에서 할리우드 갱스터 장르의 관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오발탄’ 포스터
‘양공주’(미군 상대 성매매 여성)가 된 여동생, 은행 강도가 되어 쫓기는 동생 영호(최무룡 분),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잇달아 겪은 철호(김진규 분)는 한꺼번에 이를 두개나 뽑고 과도한 출혈로 쓰러져가면서 택시 안에서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라며 자책하고 자학한다. ‘가자’를 외쳐대는 실성한 노모나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갈지 결정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오발탄’이라 중얼거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실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시대의 무력감과 좌절을 우울하게 보여주었다.

변재란/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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