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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1 19:38 수정 : 2019.05.21 19:42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영화 100년, 한국영화 100선
③하녀
감독 김기영(1960년)

전후 한국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렸던 김기영 감독의 영화 목록에서 <하녀>(1960)는 확실히 변곡점을 이루는 영화라 볼 수 있다. ‘국산 영화치고는 색다른 소재’ ‘치밀한 연출에 반하여 괴기를 위한 괴기의 남조’라고 평가되거나 ‘국내 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앙상블을 이루었지만 불륜이라는 현실적인 주제를 한 남자의 상상으로 처리해버린 점을 안타깝게 받아들인다’ 등의 비평이 나온다. <하녀>는 김기영의 화제작들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이자 그를 ‘마성의 작가’라 불리게 한 주요 이유가 되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벌어지는 성적 억압과 욕망의 세계를 담은 <하녀>. 동식(김진규)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 하녀(이은심)가 동식을 유혹하는 장면.
하녀(이은심)가 동식(김진규)의 피아노 레슨 장면을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
영화는 ‘하녀의 주인집 유아 살해사건’이라는 구체적인 실화를 모티브로 가져와서 중산층의 로망이었던 ‘2층 양옥집’의 내부로 관객을 끌어들여 인간의 욕망과 억압, 공포와 불안, 금기와 처벌에 대한 사유를 촘촘히 새겨 넣었다. 전후 복구의 시기 이 2층 양옥집은 부인(주증녀)의 바느질 노동의 산물이자, 남편(김진규)이 방직공장 여공들의 합창지도는 물론 2층에 놓인 피아노로 레슨을 해야 하는 상황, 부인 역시 바느질에 더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인의 임신과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가사노동을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해진다. 영화는 두 여성, 부인과 하녀가 한 남자를 전유하기 위한 성적 대립과 하층 여성의 계급상승을 위한 심리 스릴러의 외양을 띠게 된다.

동식과의 관계로 하녀가 임신하게 되자 동식 부부는 낙태를 종용한다. 부부의 요구에 따라 하녀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기 전 동식(김진규)과 아내(주증녀)가 초조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남성 욕망의 금기에 관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응시와 욕망의 드라마인 <하녀>는 2층 테라스에서 피아노 방을 훔쳐보는 오싹한 하녀의 이미지를 괴물성으로 재현한다. 1층의 재봉틀 소리와 2층의 피아노 소리가 더 이상 중산층 가족의 꿈이 아닌 악몽이 되는 순간, 관객은 1960년대에 본격화되는 근대화의 깃발 아래 도사린, 무의식과 본능이 지배하는 공포의 대가를 혹독히 치러내야 한다. 파격적인 상황 설정, 비일상적 대사, 뒤틀린 욕망, 성적 억압에 시달리는 중산층의 심리묘사에 집요하게 매달린 <하녀>는 김기영이라는 거대한 동굴의 입구이기도 하다.

변재란/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교수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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