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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30 07:27 수정 : 2019.10.07 16:54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68)영자의 전성시대
감독 김호선(1975년)

가난한 시골 출신인 영자(염복순)는 남성들의 폭력과 혹독한 서울살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첫사랑 창수(송재호)도 영자의 추락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김호선 감독의 1975년작 <영자의 전성시대>는 이른바 ‘영자 영화’ 혹은 ‘창녀 영화’라는 장르 아닌 장르적 명칭을 탄생하게 한 결정적인 작품이다. 전해에 개봉한 <별들의 고향>(1974)과 더불어 시골에서 상경한 여성의 성적 추락기, 혹은 도시 수난기를 다룬 이 두 작품이 연이어 흥행을 하자 붙여진 별칭이다. <영자의 전성시대> 이후 술집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 예컨대 <여자들만 사는 거리>(1976), <나는 77번 아가씨>(1978) 등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이들을 통칭하는 말로 ‘호스티스 영화’라는 단어가 붙여졌다.

영화는 시골 출신 ‘영자’(염복순)의 취직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잣집 식모살이를 하게 된 영자는 서울에 살게 된 것이 마냥 좋기만 한 순진한 아가씨다. 게다가 주인집 사장님의 직원인 창수(송재호)가 졸졸 쫓아다니는데 그것도 영자에겐 행복이다. 불행하게도 영자의 ‘전성시대’는 거기까지다. 어느 날 주인집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적반하장으로 쫓겨나기까지 하면서 영자의 인생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공장에 취직을 하지만 종일 미싱을 돌려 받은 월급으로는 월세도, 생활비도 감당하지 못한다. 가까스로 버스안내양으로 직업을 바꿔보지만, 사고로 팔을 잃고 결국 집창촌으로 향하게 된다. 한 많은 영자의 인생을 그녀의 첫사랑인 창수가 구제해보려 했으나 그녀가 안고 있는 멍에는 한 청년이 감내하기에 너무 버거운 것이다.

가난한 시골 출신인 영자(염복순)는 창수(송재호)와 사랑에 빠지지만 다른 남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며 고난의 길에 들어선다.
영자가 판잣집에서 불에 타 죽는 원작의 결말이 영화에서는 장애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영자의 전성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씁쓸하지만 이토록 기구한 여성의 (성적) 추락 서사가 소설, 잡지, 라디오 희곡 등으로 끊임없이 복제되었다는 것은 1970년대 사회상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동원되었던 그들의 희생이 상품화되었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1970년대 말에 성행했던 호스티스 영화의 아류작들은 초반의 효시작들이 제시했던 최소한의 문제의식도 던지지 못한 채 80년대 에로영화의 전초작으로 남게 되었다.

김효정/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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