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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1 07:36 수정 : 2019.10.07 16:53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69)오아시스
감독 이창동(2002년)

중증지체장애인인 공주(문소리)와 전과 3범의 종두(설경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주변인들이지만 깊은 사랑을 키워간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의 멜로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관객들과 동일시가 쉽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봄날은 간다>(2001)의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연애담은 ‘너’의 이야기지만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동시에 아프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주한 홍종두와 한공주의 연애담, <오아시스>.

전과 3범 홍종두(설경구)는 우연히 중증지체장애인 한공주(문소리)를 본 날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 종두를 통해 난생처음 이성을 알게 된 공주는 격심한 혼란을 느끼지만 이내 직접 종두를 찾는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일상을 나누며 관계가 더욱 깊어지나 이들을 둘러싼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고, 결국 잠시 떨어지게 되지만 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오아시스>는 이전에 들은 적도, 본 적도, 심지어 상상해본 적도 없는 타자들의 연애담을 은막 너머의 세상 안에 펼쳐놓는다. 서로에게 백마 탄 왕자였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였을 종두와 공주의 통속적 로맨스는 누구나 알 법한 지극히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연애담임에도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낯설고 불편하다. 이 익숙함과 낯섦 혹은 불편함 사이의 줄타기는 영화 속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종두와 공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을 외면한 세상과 싸우며 둘만의 사랑을 이루어나간다.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그 행위의 주관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의 객관화를 시도하는 순간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두와 공주의 사랑 또한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들의 주관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은막 너머 ‘타자’로서의 종두와 공주는 은막을 넘고 나와 결국 ‘나’ 혹은 ‘너’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오아시스>의 익숙함과 낯섦 혹은 불편함의 경계는 다시 동일시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 점에서, 영화를 통해 진실을 담아내고자 하는 이창동의 연출 철학과 이 작품을 통해 연기파 배우로 굳어진 설경구와 문소리의 경이로운 연기는 또다시 관객과 줄타기를 시도한다.

윤필립/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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