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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7 08:46 수정 : 2019.10.28 09:14

<이어도>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기이한 영화들을 만들었던 김기영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영화다. 여성을 죽음과 잉태를 주관하는 주체로 삼아 가부장 신화를 치마 한폭으로 무너뜨림으로써 김기영식 무소불위의 여성상을 그려냈다.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75)이어도
감독 김기영(1977년)

<이어도>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기이한 영화들을 만들었던 김기영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영화다. 여성을 죽음과 잉태를 주관하는 주체로 삼아 가부장 신화를 치마 한폭으로 무너뜨림으로써 김기영식 무소불위의 여성상을 그려냈다.

여객선은 여성의 자궁을 닮은 섬, 이어도로 향한다. 배에 탄 기자 천남석(최윤석)과 관광회사 간부 선우현(김정철)은 밤새도록 술을 마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천남석이 실종된다. 경찰은 이어도를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선우현의 계획을 천남석이 반대하자 벌어진 다툼이라 생각하고 선우현을 살인 용의자로 지목한다. 혐의를 벗기 위해 천남석의 집이 있는 파랑도에 도착한 선우현은 천남석이 어차피 이어도의 물귀신에게 잡혀 죽을 운명이었다는 마을 여자들의 증언을 듣게 된다. 선우현은 여자들의 이야기에 이끌려 파랑도에 머물면서 천남석의 죽음과 이어도를 둘러싼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이어도>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기이한 영화들을 만들었던 김기영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기이한 영화다. <하녀> <충녀>를 포함한 ‘-녀’ 시리즈로 그가 반복해온 악마적 여성상, 혹은 원시적 여성상을 최고의 강도로 집약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남자는 살 수 없는 파랑도의 여자들은 ‘정충’(정자)에 집착한다. 예컨대 남석을 기다렸던 술집 여자 민자(이화시)는 결국 파랑도의 물 위에 떠오른 천남석의 정충을 받기 위해 주검과 몸을 섞는다. 조지 로메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동안 김기영 영화 안에서 반복되었던 무능한 남자와 슈퍼우먼의 플롯이 극단적으로 재생산된 설정이기도 하다.

또한 파랑도에서의 남녀는 정확히 ‘돈’으로 이분화된다. 돈을 버는 여자들과 쓰기만 하고 떠나는 남자들. 여자들은 이 비루한 남자들과 결혼 제도로 묶이길 거부한다. 다만 자발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갖고자 할 뿐이다. <이어도>에서 아이를 갖기 위한 여자들의 집단적 광기는 영화를 이끄는 공포의 원천이면서도 (무능하면서) ‘대’에 집착하는 가부장에 대한 신랄한 조소이기도 하다. 김기영의 영화가 언제나 여성혐오적 혹은 강한 여성의 재현, 그 경계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어도>에서는 여성을 죽음과 잉태를 주관하는 주체로 삼아 가부장 신화를 치마 한폭으로 무너뜨림으로써 김기영식 무소불위의 여성상을 그려낸 셈이다.

김효정/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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