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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8 16:39 수정 : 2019.05.10 11:27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글을 쓰는 지금, 어버이날의 아침이다. 며칠 전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과 공원에서 보낸 시간은 참 따뜻했다. 간만의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 속에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적힌 작은 카드를 만들어 올 것이다. 요즘 내 삶에서의 행복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노력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특히 가정의 달을 맞이한 요즘, 슬픈 목소리의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선생님은 행복하세요? 무엇 때문에 살아가세요?” 그분들에게 가족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은 마음 무거워지는 일이다. 가정에서의 상처가 그분들을 진료실로 찾아오게 만든 이유이니까.

가정에서의 상처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평생 지속되기도 하고, 30~40대가 되어서도 부모와의 관계로 힘들어한다. 가족 간의 심리적 갈등이란 왜 이리 길게 지속되는 걸까? 삶을 힘들게 만드는 걸 알면서도 왜 해결하지 못할까? 최근 몇년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사피엔스>에 대답이 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갓 태어난 동물들은 잠시 후 걷기 시작하는 데 반해, 인간은 1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후에도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선 수년 동안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직립보행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직립보행 때문에 아기가 나오는 산도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아기의 머리가 작은, 뇌가 덜 발달한 시기에 일찍 출산하도록 인간이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에 인간은 생애 초기 몇년간 양육자에게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로 태어난 이상, 부모-자녀 관계의 특수성은 모든 이에게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이는 정신의학적 시각과도 일맥상통한다. 부모-자녀만큼 특수한 관계가 없다. 아기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다. 부모가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일 경우 세상도 그러한 곳으로 느낀다. 부모가 차갑고 무서운 존재였다면, 세상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이렇듯 생애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는, 추후 대인관계의 원형이 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친구, 연인, 배우자, 그리고 추후 자녀와의 관계에까지. 연극의 무대와 등장인물은 바뀌지만 플롯은 일정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생긴 이런 특성이 평생 바뀔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이 생기고, 이것을 돕기 위해 정신의학이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부모-자녀가 특수한 관계인 이유는 더 있다. 미워하고 싶어도 마음 편히 미워할 수 없고,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도 그러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장기간 상담을 받으면서도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가정의 달,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 부모님을 향한 감사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감정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가정의 달 의미를 더 크게 재정립할 수 있다면 좋겠다. 부모님과 가정에 대한 감정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기간으로 말이다. 또한 5월에는 성년의 날(20일)과 부부의 날(21일)도 있다. 성년인 나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분히 심리적 독립을 했는가? 현재의 배우자에게 어린 시절 봐왔던 부부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강요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과거에 머무르며 정작 중요한 현재의 행복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가 있어서 결국 난 행복할 수가 없어요’라는 말을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다. 과거가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기에 더욱더 현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바뀔 수 없는 과거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행복은 현재에 있다. 남아 있는 5월, 모두가 조금 더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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