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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1 17:29 수정 : 2019.08.22 09:53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대표

“제주도 방언으로 ‘배지근하다’란 말이 무슨 뜻일까요?” 제주도에서 물질 경력만 50년 넘는 해녀 고봉순씨가 전국 각지, 외국에서 모여든 참가자 40여명에게 물었습니다. 검은색 해삼 같기도 하고, 불에 검게 탄 고구마에 뭔가 돌기가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한 바다 채취물이 해녀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이게 군소라는 거예요, 군소.” 해녀는 능숙하게 군소를 해체해서 시식용 접시에 담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입에 한 조각 넣어보는 참가자들을 바라보며 해녀가 말합니다. “지금 느끼시는 그 맛을 ‘배지근하다’라고 해요.” 뭍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지만 오감을 통해 경험하고 나니 이제야 ‘안전한’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입안 가득 감칠맛이 나고, 기분 좋은 기름기가 느껴지고, 아삭아삭한 식감에 계속 손이 가는 군소는 그렇게 배지근하게 데뷔를 합니다. 이 장면은 ‘해녀의 부엌’이란 제주도의 사회적경제 기업이 매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점심과 저녁에만 진행하는 ‘해녀와 함께하는 공연과 식사 경험’의 일부입니다.

과거 한창일 때 제주도 해녀 산업은 제주도 수산 총소득의 절반 이상에 기여할 정도로 지역경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만명 넘었던 해녀는 현재 4천명으로 줄었고, 이 중 70대 이상 고령 해녀가 절반 넘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제주시는 만 80살 이상 고령 해녀 397명을 대상으로 ‘은퇴수당’ 제도를 만들어 공식적인 은퇴를 유도하고 3년간 매달 생활비 30만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워낙 빈번한 해녀 안전사고를 고려한 어쩔 수 없는 조처지만, 대상자의 신청률은 27%로 저조합니다.

앞서 ‘해녀’ 고봉순씨에게 누군가 “자녀 중에 해녀가 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해녀가 힘들어서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해녀를 할 거예요.” 고령 해녀들이 왜 은퇴를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엿볼 수 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해녀와 해녀의 문화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이런 물음이 ‘해녀의 부엌’을 창업한 김하원(28) 대표의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본인과 창업팀의 전문성을 살리고 구좌읍 종달리 어촌계와 협력해 방치되어 있던 위탁판매장 공간을 근사한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공공기관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진행하는 사회적경제 기업 육성사업 ‘낭그늘’(‘큰 나무 그늘’이란 뜻의 제주도 방언)에 선발되어 긴요했던 사업 준비금과 프로그램 고도화 지원, 그리고 전문 멘토링을 받았습니다.

지난 3월부터 예약제로 운영되는 매 프로그램은 참가비만 4만원 넘지만 대부분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녀를 주제로 한 연극, 해녀가 직접 소개하는 해녀와 해산물 이야기, 그리고 해녀들이 직접 준비한 성게미역국, 군소 무침, 뿔소라 산적과 찜, 우뭇가사리 무침, 흑임자죽, 톳밥 등 ‘해녀식단’은 참가자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먹고 대화하는’ 차별화된 경험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숙박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가 제주도에서 추천하는 ‘경험’으로도 선정되어 외국인들의 참여가 확연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본 김하원 대표는 제주도 해안에 있는 100곳 넘는 해녀 탈의장 중 방치된 장소를 이와 비슷하게 만들어가는 꿈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지역적인 경험과 이야기가 가장 세계적인 경험과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언젠가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업이 잘될수록 제주도 고유의 해녀 문화가 보존되고 확산하며, 고령 해녀들에게는 더 안전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소득창출 기회가 늘어납니다. 또한 지역 어촌계가 채취한 해산물을 직접 소비하여 어촌계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도 가능해집니다. 무엇보다 ‘해녀의 부엌’은 임팩트 시대가 지역에서 어떻게 가능한지와 동시에 지역의 고유함이 임팩트 시대에는 오히려 보편적인 매력과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란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는 요즘, 제주도 ‘해녀의 부엌’에서 ‘배지근한’ 경험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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