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귀향.
전직 대통령 모두 지방 출신이었지만 퇴임한 뒤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대통령의 귀향에는 부인 권양숙 여사의 제안이 한 계기가 됐다. 2006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나이지리아를 방문했을 때, 권 여사가 ‘봉하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경남 일대의 은퇴자 마을 카탈로그를 구해 보면서 살 곳을 찾고 있었다.
“듣고 보니 고향을 두고 뭐 하러 다른 곳을 찾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해서 귀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중략) 내가 고향에 돌아가 사는 것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자서전 <운명이다>)
2007년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끝부분 산등성이에 집을 지었다. 그는 “균형발전 정책을 후보 때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서 지방을 살리자고 말했는데, 제가 온다고 지방이 곧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저라도 와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를 설명하곤 했다.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정기용 건축가에게 집 설계를 맡기며 “느리게 살고 적게 쓰는 삶에 적합한 집, 자연과 어우러지는 지붕 낮은 집, 언젠가 시민에게 돌려줘야 할 집,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집, 그런 의미에서 부끄럼 타는 집”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대통령의 집은 비서관·경호원 등이 근무하는 국가 소유 구역과 대통령 부부가 생활하는 개인 소유 구역으로 나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집 옆에 별도로 국가 소유 구역을 두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비서관·경호원의 편의와 업무 효율을 고려해 두 구역을 합쳐 하나로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앞두고, 당시 일부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그의 집을 ‘현대판 아방궁’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보좌진은 아방궁이라는 악의적 비난에 적극 대응하려고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 국민이 다 알게 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며 만류했다. 실제로 아방궁 논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고향에 마련한 집 앞에서.
봉하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을 ‘마을공동체의 모델’로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사회생태계 복원과 자연생태계 복원이라는 두가지 사업을 추진했다. 노 전 대통령을 따라서 봉하마을로 귀향한 김경수 전 공보담당비서관과 김정호 전 기록관리비서관이 각각 두 사업의 실무책임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은 매일 아침 8시30분 보좌진과 조회를 하며 주요 일정과 상황을 점검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아침 8시 수석·보좌관회의도 열었다. 또 마을 인근 봉화산에 올라가 숲 가꾸기와 생태숲 복원 사업을 챙겼고, 봉하들판과 화포천 습지도 둘러보며 직접 청소를 했다. 전직 대통령이 장화를 신고 앞장서서 청소를 하니 누구도 모른 척 가만있을 수 없었고, 망가졌던 환경은 자연스럽게 되살아났다.
들일을 마치고.
귀향하고 한달 정도 지난 2008년 봄 아침 조회 시간에 “당장 올해부터 친환경 벼농사를 짓자”고 결정했다. 생태마을 가꾸기의 핵심은 마을 주민들의 주업인 벼농사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벼농사는 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좌진 중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떠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리에게 잡초 제거를 맡기는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자고 제안했다. 방문객들에게 친환경 농사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어린이 체험학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실제 농사를 짓는 주민들 대부분이 손사래를 쳤다. 매일 오리를 논에 풀어줬다가 다시 거둬들여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김매기.
‘부탁 반 협박(?) 반’의 설득 끝에, 13농가가 ‘봉하마을 친환경쌀 작목반’을 구성해 2만4600평의 논에서 오리농업으로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당장 몇달 뒤인 8월 말 사라졌던 반딧불이가 다시 나타났다. 그해 가을 오리농법으로 생산한 벼 55t을 처음 수확했다. 10월엔 농업회사법인 ㈜봉하마을도 설립했다.
2009년 5월23일 서거 이후에도 그의 꿈은 멈추지 않았다. 2009년 오리농법 규모는 50농가 24만평으로 늘어났다. 친환경쌀 방앗간과 인터넷 쇼핑몰 ‘봉하장터’도 문을 열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검정 증명과 친환경 무농약 인증도 받았다. 2010년부터 고추·배추·양파·마늘 등 밭작물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2012년엔 친환경 농산물 복합가공센터와 친환경 농산물 직매장 ‘봉하밥상’이 문을 열면서, 생산에서 가공·유통까지 하게 됐다. 친환경 생태농업 규모는 주변 마을까지 확대돼 올해 160여농가 35만평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해마다 닥치는 조류인플루엔자 등 때문에 2017년 오리농법을 우렁이농법으로 완전히 바꿨다.
장태선 ㈜봉하마을 관리팀장은 “청년 창업농 학교를 열고, 친환경 봉하쌀로 술을 담그는 양조장을 세우는 등 아직도 많은 숙제가 있다. 여러 상황이 변하더라도 친환경 농업을 지속하기 위한 단지 조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을 논 가운데 서서.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뒤 하루에도 몇번씩 ‘대통령의 집’ 앞 작은 마당에서 방문객들이 목청껏 그를 불렀다. “하나 둘 셋! 대통령님 나오세요!” 그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밀짚모자를 쓰고 나와서 인사를 하고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2008년 2월25일 대통령직에서 퇴임하고 이날 밤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새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통령에서 물러났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섭섭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부터 방문객들이 봉하마을로 몰려들어 대통령을 불렀다. 많을 때는 하루에 열한번을 불려 나갔다. 집 안에서 조용히 지낼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을 정해서 방문객을 만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형 건평씨가 구속된 다음날인 그해 12월5일 오후 2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칩거에 들어갈 때까지 노 전 대통령은 369차례 방문객을 만났다.
“대통령님, 나오세요~”
노 전 대통령이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봉하마을을 찾는 방문객은 끊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엔 103만여명이 방문했고,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에도 72만여명이 찾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부인 권 여사는 근처에 집을 지어 거처를 옮겼고, 대통령의 집은 몇차례 특별관람을 거쳐 지난해 5월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노 전 대통령 10주기 추모식을 이틀 앞둔 지난 21일 봉하마을을 방문한 김희석(47·서울)씨는 “우리 곁에 오래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10주기를 맞으니 다시 뵙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노 전 대통령 생가를 둘러보던 조아무개(55·창원)씨는 “10년 전 겪었던 수모와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겠지만, 그래도 참고 또 참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 그분의 얼굴이 훤하게 그려진다.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시 관광과 담당자는 “봉하마을은 방문객 수를 파악하는 김해지역 관광지 17곳 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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