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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0 05:00 수정 : 2019.06.11 16:01

【헌신페이의 민낯】
“교회 목사에게 노동착취 피해”
부목사·전도사·직원 35명 증언
한기총 부회장 이재희 목사는
유학 간 딸 집·아들 회사에 동원
피해자들 “주님 아닌 목사의 종”
헌신페이 경험한 전도사 86%
“사역자들을 소모품으로 여겨”

“나의 헌신을 고발합니다.”

일터가 교회라는 이유로, 누구에게나 적용돼야 할 노동법이 어떤 이에겐 ‘딴 세상 법’이었다. 교회 내 사역자·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헌신해달라”는 교회의 요구가 실은 강요된 ‘열정페이’였다고 말한다. 교회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런 노동 착취를 ‘헌신페이’(종교계 열정페이)라고 부르곤 한다.

<한겨레>는 두달에 걸쳐 35명(대면 취재 21명, 통화·서면 취재 14명)의 ‘헌신페이’ 피해 증언을 들었다. 증언은 부목사·전도사·직원 등 다양한 직군에서 나왔다. 사랑과 복음이 가득해야 할 교회에서 그들은 왜 이런 일을 겪은 걸까.

■ “전도사들 가사도우미 시킨 한기총 임원”

“그 사람은 예수님 이름을 걸고 자기 이익을 취해요. 양의 탈을 쓴 늑대입니다.”(분당횃불교회에서 일한 전도사 ㄱ씨)

경기도 성남 분당횃불교회 전도사·부목사(부교역자)와 교인들은 지난달 7일 <한겨레>와 만나 이재희 담임목사가 교회 구성원들을 유학 간 딸 가사도우미로 동원하는 등 부당한 업무 지시를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이 목사는 20여년 전(전신은 흰돌교회)부터 이 교회를 개척해 목회활동을 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부회장 등 교계 연합회 간부직을 맡고 있다.

이 목사는 2010년부터 6년여에 걸쳐 부교역자들을 한번에 2~3명씩 교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보냈다. 그곳에 ‘지교회’(선교를 위한 분원 격의 교회)를 개척하고, “해외선교 활동을 해야 한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파견된 이들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유학 중이던 이 목사 딸의 집에 거주하며 가사도우미 노릇을 맡았다고 한다. 2010년 이후 세차례에 걸쳐 미국을 약 9개월간 방문한 ㅎ 부목사는 “이 목사 딸의 집에 가서 청소부터 속옷 빨래까지 허드렛일을 하는 게 전부였다. 한마디로 ‘식모살이’였는데 임금마저 없었다”고 말했다. 전도사들은 이 목사 딸이 등교한 낮시간이면 땡볕에서 교회 빈 건물의 페인트칠과 보수공사를 했다고 밝혔다. 가시풀을 뽑고, 지역 노숙자들이 남긴 오물을 치우는 일도 그들 몫이었다. 2010년 이후 이렇게 ‘헌신페이’를 강요당한 이들은 스무명을 넘는다.

이 목사의 사적인 업무 지시는 국내에서도 이뤄졌다. 이 목사 아들이 경영하는 ㅋ사(반려견 분양 및 애견호텔업)에서 9개월간 일했던 ㅂ 전도사는 “매달 급여를 준다더니 실제 받은 건 딱 2번이었다. 그것도 한번은 이 목사에게 헌금으로 냈다”고 밝혔다. 이 목사 남편의 어머니 병간호에도 교인을 동원했다.

예배 준비와 찬양인도, 중고등부 청년 대상 사역, 사무실 교대 당직근무 등을 맡은 전도사들에 대한 사례비는 전혀 없었다. 또 다른 전도사 ㅂ씨는 “A4 용지, 마이크에 넣을 건전지 하나까지 모두 부교역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이었다”며 “생활이 어려워 대부업체에서 빚까지 내야 했다”고 털어놨다.

부교역자들은 이 목사 지시의 부당함을 알고 있지만 이를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ㅎ 부목사는 “본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는 일’이라고 질책했고, ‘저주를 받을 수 있다’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신도와 부교역자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신의 ‘종’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횃불교회를 떠난 부교역자와 교인들은 올해 1월부터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어 이 목사의 부당 노동행위를 규탄하고 있다. 이 목사 쪽은 <한겨레>의 해명 요청에 “교회와 목사에게 앙심을 품고 나간 사람들의 일방적인 허위 주장”이라고 밝혔다.

분당횃불교회 담임이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부회장인 이재희 목사. 횃불교회 누리집 갈무리
■건설 자재 나르고, 고구마 재배하고…‘소모품’ 된 전도사

전도사 황명중(가명·28)씨의 아침은 철근 정리로 시작됐다. 무거운 자재들을 짊어지고 나르는 게 그의 일과였다. “신도들을 가르칠 교육관이 필요하다.” 명중씨가 지난해 1월부터 사역하게 된 전북의 ㄱ교회 담임목사는 교육관 짓는 일을 그에게 지시했다. 목사는 이를 하나님을 위해 필요한 사역이라고 했다. “어느 직장이나 잡일을 할 수는 있다고 봐요. 그런데 도를 넘어섰어요. 온종일 건설 노동만 하다 보니 설교나 예배를 준비할 여유는 없었어요.”

건설 노동은 해가 어둑어둑해져서야 끝났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다. 교인 데이터베이스(DB) 관리도 명중씨의 몫이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가 받는 사례비는 한달에 110만원. 십일조 헌금을 하고 나면 그의 손엔 99만원이 남았다. 결국 올해 초 1년간 사역한 교회를 떠났다. 교회는 그에게 전별금 10만원을 줬다.

ㄱ교회는 명중씨의 두번째 사역지였다. 앞서 그는 2017년 초 전북의 첫 사역 교회에서 파트타임 전도사(일주일 중 통상 2∼3일만 일하는 전도사)로 일했다. 주말 이틀만 사역하고 주중에는 학업에 집중하기로 목사와 협의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담임목사는 그를 평일에도 자주 호출했다. 가보면 원하지 않는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담임목사는 “선교지에 기부하려 한다”며 고구마를 재배하라고 했다. 명중씨는 3300㎡(1000평) 규모 고구마 밭을 일굴 때 사역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사역지에서 상처받은 그는 두번째 교회에서도 ‘헌신페이’에 내몰린 것이다. “사역자를 원체 소모품으로 여기니까요.”

명중씨가 겪은 ‘헌신페이’를 많은 젊은 전도사들도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뭐든 해내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길 요구받는다고 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한 김병욱(가명·30대)씨는 7년 전 부임 때부터 교회 안의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았다. 차량 운전, 예배 준비, 설교, 청소에 담임목사 잔심부름까지. 병욱씨는 “예배가 있는 수요일과 금요일은 밤 10∼12시가 되어야 퇴근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교육전도사(파트타임) 때 60만원, 전임 때는 120만원을 받으며 생활했던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현재 그는 사역지를 옮겨 교회 일 말고도 이삿짐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 “은혜롭게 하세요”…직원·교인들도 ‘헌신페이’

교회 소속 기관에서도 ‘헌신페이’는 강요된다. 김여름(가명·27)씨는 다니던 교회 목사한테 “교회 소속 청소년 상담센터를 운영하는데 보조로 도와달라”는 제안을 들었다. 대학교에서 심리 상담을 전공하며 경험을 쌓으려던 여름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여름씨는 처음에 주 4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하지만 몇개월이 지나자 그의 근무시간은 늘어나 있었다. 목사는 여름씨가 늦은 밤까지 근무하길 원했다. 주 5일,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 그가 다달이 사례비 명목으로 받은 돈은 40만원이었다. 힘들다고, 그만두겠다고 목사에게 하소연한 것도 몇차례나 된다. 그때마다 목사는 전공 경험과 종교적 헌신을 강조했다. “너도 배우는 과정이잖아.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 거니까, 하나님이 다 보상해줄 거야.”

여름씨는 그렇게 2014년 초부터 거의 2년을 헌신했다. 그의 헌신은 상담센터 담당 목회자가 성범죄로 구속되면서 허무하게 끝났다. “아, 내가 시간낭비 했구나, 그 사람이 나를 이용했구나 싶은 거죠.”

사역자가 아닌 교회 내 관리·청소 노동자들도 열악한 노동상황을 견뎌야 한다. 통상 ‘관리집사’라고 불리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교회 사택에서 거주하는 관리집사의 근무시간은 대체로 정해져 있지 않다. 담임목사나 장로가 호출하면 주말이든 새벽이든 불려 나간다. 서울의 ㅇ교회 관리집사 이형연(가명·65)씨는 “교회는 월요일이 쉬는 날인데 관리집사들은 그날도 대부분 쉬지 못한다”며 “노회(각 지역 교회들의 상급 연합체) 모임이 열리면 담임 목회자 차를 운전해야 한다. 그렇다고 보수를 더 받는 건 아니”라고 했다. 형연씨는 교회 사택에 산다는 이유로 연차나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관리집사 가족도 교회 사역에 동원되는 일이 잦다. 명목은 ‘자원봉사’이지만 사실상 강요라는 게 경험자들의 얘기다. 서울의 한 교회 관리집사 배우자는 “교인 예배모임이나 교회 행사를 위해 식사 준비를 해야 하고 설거짓거리가 쌓이면 목회자가 ‘은혜롭게 하시라’고 한다. 일하라는 뜻”이라며 “사택에 살면 눈치가 보이니까 일을 안 할 수도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 지친 교회 청년들…“문제 제기하기 어려웠다”

‘헌신페이’는 교회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한겨레>의 의뢰로 기독교 온라인 매거진 <전도사닷컴>이 벌인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도사닷컴>이 에스엔에스를 통해 “당신은 헌신페이·은혜페이에 가슴 아파한 경험이 있나요?”라고 물었더니 투표에 참여한 847명 중 86%가 “그렇다”고 답했다. ‘헌신페이 경험이 있다’고 밝힌 이들을 대상으로 “어떤 상황을 겪었느냐”(복수응답 가능)고 추가 설문을 한 결과, 응답자 110명 중 86명(78%)이 “정해진 업무 이상 잡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59%는 “정해진 출근일 외 부당한 출근을 강요당했다”고 했고, 셋 중 한명꼴로 ‘교회 중직자(목사, 장로 등 교회 내 권력자)들의 갑질’(34%), ‘사역자 가족에 대한 비자발적 헌신 요구’(32%)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회 내 사역자들의 임금도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을 전임 사역·노동자라고 밝힌 이들(부목사·간사·전도사) 40명의 평균 사례비는 월 160만원 수준이었다. 응답자의 66%(72명)가 “담임 목회자와 지나치게 차이 나는 급여를 경험했다”고 했다.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지만 ‘헌신페이’ 경험자들이 정작 교회 안에서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참여자 중 78%(86명)가 “이 상황의 개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는 응답은 18명(16%)에 그쳤다. 헌신페이를 경험했다고 밝힌 이들의 연령대는 30대가 53%로 가장 많았다. ‘헌신페이’ 경험자들은 △교단 차원의 권고와 교회법 개정(56%) △목회자 의식 변화(55%) △노동조합 활동(32%) 등 방법으로 교회 내 노동 인권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박준용 배지현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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