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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8 17:32 수정 : 2007.05.03 15:16

소박한 실내풍경이 담백한 맛을 더한다.

[박미향기자의 삶과 맛] ③ 안춘선
황해도식 손맛으로 차려주는 갈비배추탕과 오마니국수


오래된 물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난다. 김 영감이 드디어 백수를 누리고 생을 마감했다. “아이구, 아버님. 이제 하늘나라 가시면 어머님 만나시겠네요. 여자 때문에 어머니를 그리 고생시키시더니.... 두 분,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세요, 어머니께 잘해주세요.” 김 영감, 공중에 붕 떠서 아들딸들이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 할망구 만나면 잘해줘야지. 내가 첩들 때문에 너무 고생을 시켰어.”

흐뭇하게 웃으며 구름 위로 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먼저 간 할망구가 방끗 웃으면서 김 영감을 맞는다. “영감, 이제 오슈? 여기서는 맘고생 안 시킬 거죠? 드디어 영감 독차지하게 되었네” 이에 질세라 김 영감도 “ 그럼 할망구, 나도 반성 많이 했어, 이제 우리, 구름 위에서 부부의 정을 나눠봅시다.”라며 슬그머니 할망구의 손을 잡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고~ 저 멀리에서 산발한 여인네들이 마구 달려오는 게 아닌가~ “아이~ 영감 이제 오슈? 얼마나 기다렸다구~” 하며 애교를 피운다. “어머, 이 영감 내 영감이야.” “어라 내가 진짜야, 날 제일 예뻐했다구.” 할망구, 한숨을 푹 쉬면서 “아이고, 첩년들도 다 모였네. 내 여기서도 머리채 잡고 싸워야 하나? 이 세상 끝나면 저 세상은 다를 줄 알았건만….” 하며 한탄하더라.

사람이 많지 않은 모임이나 작은 부서 회식자리로 좋다.
갈비배추탕이 맛나기로 유명한 <안춘선>의 주인장 부부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주인장 부부의 금슬이 너무 좋아 그 맛으로 맛난 먹을거리를 만들어서 행복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뭇거뭇 누덕누덕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낯익은 주인장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눈이 마주치면 ‘아, TV에서 본 분이네’하고 내심 생각하게 된다. 주인장은 오랫동안 연극무대와 TV를 오가면서 멋진 연기를 펼친 예인이다. 안이 훤히 보이는 부엌에서 안주인이 음식을 만들면, 그는 완성된 음식을 여기저기 나른다.

안주인은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로 동네에서 유명했단다. 이웃들은 그녀가 만든 김치를 자주 먹으며 음식장사를 해보라고 그리 성화였지만 그녀는 함께 나눠 먹는 것이 더 좋다며 극구 사양했었다. 그러다 8년 전, 집에서 만들던 황해도식 손맛을 그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서대문에 <안춘선>을 만들었다. 독특한 이 집의 이름은 안주인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것이다. “내 이름 걸고 음식을 만듭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아주 좋은 음식만 내지요.” 이제는 손님들이 “잘한다” 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리 즐거울 수가 없단다.


옛술을 좋아하는 어르신을 모시고 가면 더욱 좋다.
이곳에 있는 갈비배추탕이나 오마니국수, 매골수육은 정말 다른 곳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양념으로 쓰는 고춧가루는 주인장 고향에서 처음 딴 고추를 말려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최고로 신선하다. 반찬으로 나오는 깻잎의 맛도 특이한데, 짜지도 맵지도 않아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게 만든다. 이곳의 모든 메뉴가 안주인의 창의력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요상한 스파게티나 16가지 된장찌개 등 아주 많은 요리를 시도했단다. 밤마다 메뉴를 고민하고 연구하며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현재의 메뉴로 정리되었다.

이집에는 특이한 동동주도 있다. 일명 ‘청술’이라고 하는데,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에 들어갔던 술이라서 그렇게 이름 지었단다. 연로하신 분이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것을 어찌어찌 해서 안주인이 들여왔다. 오로지 손님들에게 최고만을 대접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쉽게 취하고, 쉽게 깨며, 다음 날 뒤끝이 없어서 진정한 술꾼들에게 인기란다.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들어갔던 ‘청술’. 쉽게 취하고 쉽게 깨며 다음날 뒤끝이 없어 진정한 술꾼들에게 인기다.
조용히 가수 안치환의 노래를 들으며 부부의 다정한 부부의 정을 양념으로 넣은 수육과 오마니국수를 먹어보라. 천국이 따로 없다. 우리네 소박한 설날 상차림처럼 담백하고 따스한 정이 송골송골 솟아오른다. 참, 가수 안치환이 조카란다. 가족사랑 역시 맛난 음식처럼 깊고 은은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치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전화번호 02-392-2877
영업시간 오전 12시 ~저녁 10시
메뉴
갈비배추탕 7천원
오마니국수 6천원
매골수육 3만5천원
동동주 7천원

* 귀띔 한마디 집은 조금 작다. 별로 꾸미지 않아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다. 오래된 맛을 즐기는 분을 모시고 가기에 좋다. 겨울에는 주인장이 손수 만든 깻잎을 팔고 있다.




<박미향 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 하다> 연재에 들어가며

어찌하다보니 먹을거리와 관련된 책 두 권을 출간했다. “사진기자가 어떻게, 왜?” 라고 질문을 한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 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요리와 사진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각가지 재료와 여러 가지 기자재가 필요한 것도 비슷하다. 한 품, 한 장이 나올 때마다 들여야 하는 노력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이 둘은 아주 창조적인 냄새가 난다. 한겨울 따스한 태양처럼 반짝이는 창조적 향기, 아마도 그 향기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듯하다. 지금부터 연재할 맛집들은 두 번째 책 <박미향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하다>에 수록된 것들이다. 서문에도 적었지만 그저 독자들이 제발 맛나게 즐겼으면 한다. 때로 짜고, 때로 너무 달아도 그저 이런 곳에 이런 삶과 맛이 있구나 하면서 넓은 아량으로 웃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주인장들의 삶만큼 독자들의 시간들도 쫄깃하고 푸짐한 것이 되길 역시 소망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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