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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2 08:00 수정 : 2019.09.02 21:44

최현우에게 책은 마술의 원천이다. 일도, 일상도 책으로 보듬는 마술사 최현우를 27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문학·심리학·뇌과학·수학…
내 공연의 기본은 모두 책에 담겨
사실 대형서점 1등급 고객입니다”

마술이 좋아 시작한 ‘23년차 현역’
정상 자리에서도 부침 없이 활동
“새 레퍼토리 구성 등 고민마다
독서 빠지니 슬럼프도 지나간듯”

“관객들에게 ‘다 가짜다’가 아닌
‘진짜 신기하다’ 감정 일우고파”
오늘도 한계 넘는 ‘문화예술’ 꿈꿔

최현우에게 책은 마술의 원천이다. 일도, 일상도 책으로 보듬는 마술사 최현우를 27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몸과 마음의 지침을 당연하다 여기지는 않나요? ‘월간 쉼표토크’는 매달 첫주 월요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과 위로를 찾는 문화예술인들을 소개합니다.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합니다.

지난 23일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막식 현장. 마술사 최현우가 무대에 섰다. “자 여러분 박수 한번 쳐보실래요.” 그러더니 이내 관객 한명을 불러냈다. “휴대폰 속 계산기를 열어 생년월일을 입력해 보세요.” “거기에 휴대폰 번호를 곱하시고요.” 로또 당첨 번호라도 기다리듯 그가 입을 열 때마다 객석은 숨죽였다. 드디어 클라이맥스. “자, 그렇게 해서 나온 마지막 숫자는 이거겠죠? 19823840.” 무대 위 관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대 밖 관객들도 할 말을 잃었다. 그날 그 순간의 기록, 2019년 8월23일 8시40분.

“아니,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나흘 뒤인 27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마주 앉은 최현우가 익숙한 질문이라는 듯 씨익 웃었다.

“관객을 심어 놓은 거죠? 아님 8시40분에 맞추려고 시간 계산을 하고 들어갔나?” 우리나라 관객들은 이게 문제지. 마술을 그 자체로 즐기지 않고 자꾸 비밀을 파헤치려 하는 것. 어쨌거나 분명, 뭔가 속임수는 있겠지만 수많은 관객을 단숨에 집중시켜버리는 그 힘은 놀랍다. 이게 바로 마법, 아니 마술의 맛인 거다.

“마술에는 다양한 요소가 접목돼 있어요. 마술을 하려면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야기의 힘은 인문학이나 소설에서 나오는 거죠. 마술의 기본 ‘트릭’을 만들려고 심리학, 뇌과학도 파고들어야 하고 수학적 논리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관객이 신기해하는 지점, 비명을 지를 그 순간까지 계산하는 게 마술이거든요.” 관객을 불러내기 전 박수를 치게 한 뒤 손 위치를 가슴 정도에 두고 눈을 마주치는 관객을 무대에 올리면 성공률이 높다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심리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마술사 최현우’가 실은 독서광이라는 말에 놀라 그에게 만남을 청했던 것 자체가 어쩌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마술사는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에요. 제 모든 공연의 기본은 책에서 추출해요.” 그중에서도 최현우는 특히 많이 읽기로 꼽힌다. 1년에 200권을 읽은 적도 있는 그는 “땡땡문고 1등급”이라며 웃었다. “책을 많이 사요. 인터넷으로도 사기는 하는데 주로 서점에 가려고 해요. 손맛이라는 게 있잖아요. 종이를 한장 한장 넘기면서 읽을 때의 기분은 인터넷으로 볼 때와는 또 다르니까.”

들여다보면 책과 함께 살기를 타고났다. “어머니도 책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으며 자랐고, 동생은 저보다 책을 더 많이 읽어요. 전 취미가 없어요. 게임도 하지 않고 술·담배도 안 해요. 당구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제겐 책이 취미인 거죠. 그래서인지 주변에 다 책 좋아하는 친구들만 있네요.”

최현우에게 책은 마술의 원천이다. 일도, 일상도 책으로 보듬는 마술사 최현우를 27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하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듯, 책만 읽는다고 좋은 마술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대표 마술사’ 자리를 지키는 데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해온 그의 땀방울이 묘약이다.

데뷔 23년차, 현역에서 활동하는 가장 오래된 마술사인 최현우는 고등학교 때 일본 도쿄의 한 백화점 매직숍에서 마술을 보고 매료돼 취미로 배우기 시작했다. 20살이 되던 해 직업으로 삼아야겠다 결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마술사 알렉산더 리(고 이흥선)를 찾아가 무작정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안 된다는 그를 설득하려고 매일 찾아가 청소 등 궂은일을 도맡으며 의지를 보여줬다. “집에서는 당연히 반대했죠.” 20살 때 쫓겨나다시피 하며 4년간 고시원을 전전하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마술을 배웠다. 4년 만에 ‘영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한 뒤 신문에 기사가 나면서 부모님은 그의 진심을 알게 됐다. “그제야 들어오라시더라고요. 하하하.”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4년 만에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프로그램 구성부터 마술 트릭, 대본, 연기 등 모든 것을 혼자 다 구상해야 하고 무대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 마술은 더 그렇다. 빠른 시일에 자리잡은 그도 처음부터 승승장구는 아니었다. “어느 대학 축제가 첫 무대였는데 완전 망쳤죠. 마술 두개를 선보였는데 앞이 캄캄하고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이후 무대를 더 많이 서봐야겠다는 생각에 버스킹이 없던 시절 ‘마술 버스킹’을 하는 등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했어요.” 사람들 앞에 서는 두려움을 없애려고 6개월간 지하철에서 껌을 판 적도 있다. 그는 “무대에 섰을 때 앞이 보이기 시작한 게 10년 뒤”라며 “적당한 긴장감은 관객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시키고 훨씬 더 좋은 마술을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일부러라도 긴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부분을 체크해 다시 보기를 반복한다.
생각해보면 정상에 우뚝 선 사람 중에 힘든 시기를 겪지 않은 이가 없다. 바닥을 쳐야 진짜 자신을 알게 된다는 말처럼 창작자에게 시련은 디딤돌이 된다. 하지만 최현우는 2009년 ‘세계 마술 올림픽’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참가자 중 가장 독창적인 마술을 선보인 사람에게 주는 상인 ‘오리지널리티상’을 받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마술사가 된 이후 단 한번의 내리막도 없었다.

슬럼프 없이 달려온 데도 역시 그의 분신 같은 책이 따라다닌다. “사실 슬럼프가 없었던 게 나도 신기한데, 아마 그게 공연 구상이 잘 안 되거나,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 조금 지친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책을 읽다 보니 모르고 지나간 것일 수도 있어요. 서점에 가서 몇십만원어치 사와서 틀어박혀서 내내 책을 읽어요. 그럴 때마다 늘 책에서 답을 찾았거든요.” 지금 역시 12~1월 우리금융아트홀에서 하는 공연에 대한 고민이 큰데 그 역시 책으로 이겨내고 있다. “매년 레퍼토리가 바뀌어서 그걸 고민하다 보면 1년이 후딱 가요. 고민이 시시때때로 찾아오지만 역시 책에서 헤쳐나가고 있어요.” 곧 마술로 타로카드를 보는 유튜브 콘텐츠도 문을 연다.

그는 데이비드 카퍼필드를 존경한다. 그처럼 오랫동안 마술계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카퍼필드를 만나 장난스런 포즈를 취한 최현우. 소속사 제공
학창 시절 얌전했다는 그는 마술사로 무대에 오른 뒤 다른 사람이 됐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그가 마술을 하는 것보다 무대에서 사람들을 끌어가는 것에 더 놀란다고 한다. 8~9년 전 리허설을 하다가 4미터 높이에서 추락해 왼쪽 팔 전체에 철심을 박는 위기의 순간에도 그는 “24시간 마술만 생각하는 일상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직업적 한계를 고민해본 적도 없다. 좋아하는 취미가 깊어진 거라고 보면 된다”는 그는 다만 마술이 모든 예술의 원천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건 안타깝다고 한다. “영화사 초창기의 혁명적 작품 <달나라 여행>(1902)을 만든 감독 조르주 멜리에스도 원래 마술사였어요. 마술에 쓰이는 효과들을 영화에서 만들어 특수효과로 발전시킨 거죠. 마술이야말로 고도로 발전된 문화예술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데이비드 카퍼필드예요. 이분이 개인 마술 박물관을 열었는데 어느 날 공연이 끝난 새벽 3시에 저 포함해 다섯명을 모아놓고 박물관을 소개하며 직접 시연까지 하시는데 눈이 초롱초롱 빛나더라고요. 56년생인 분이 지치지도 않고 마술 앞에서는 아기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마술을 이 정도까지 사랑하고 있는 걸까 반성을 많이 했어요.” 말하는 그의 눈도 못지않게 빛났다. 최현우는 자신의 마술 역시 “세상 어딘가에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는 걸 믿게 만드는 특별한 것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믿음이나 신념이 많이 떨어진 세상이잖아요. 공연을 보고 나면 마법은 다 가짜다가 아니라 진짜 신기하다, 그런 감정을 다시 일깨우고 싶어요.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 그게 가장 큰 목표예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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