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9 05:00
수정 : 2019.10.2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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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 메디엔하펜의 랜드마크인 프랭크 게리의 노이어 촐호프.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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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기획]
‘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국외-②독일 뒤셀도르프 메디엔하펜
‘현대건출 박람회’ 방불케하는 거리
‘노이어 촐호프’ ‘로겐도르프 하우스’
세계적 건축가들, 곳곳에 랜드마크
보존-신축 50%씩 조화 이뤄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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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 메디엔하펜의 랜드마크인 프랭크 게리의 노이어 촐호프.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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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는 뭔가 다르지 않아요?”
지난달 하순 찾아간 독일 뒤셀도르프 메디엔하펜(미디어항구). 교과서에 등장한 거리와 건물을 소개하던 시청 메디엔하펜 담당관 한스 얀센이 불쑥 물었다.
“광고가 보입니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둘러봤다. 프랭크 게리(미국)가 설계한 세쌍둥이, 윌리엄 올솝(영국)이 건축한 컬러리움, 노르베르트 빙켈스(독일)가 장식한 로겐도르프 하우스 등 어디에도 간판이 없었다. 그러면 목적지를 어떻게 찾느냐고 되물었다.
“이곳에선 건물을 디자인으로 찾아가지요.”
뒤셀도르프는 북해에서 200㎞ 떨어진 라인강 하류의 내륙 도시다. 1288년 베르크 백작이 도시를 개척한 이래 라인강가를 따라 원도심이 발전했다. 조용한 중세를 지나 19세기에 부근의 상공업이 일어나면서 1896년 철도와 항만이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이후 공산품 수출항으로 성장했지만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부분 부서졌다. 이후 잿더미 속에서 석탄·철강 무역항으로 재건돼 전후 라인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주력 산업이 재편되면서 쇠퇴에 직면했다. 산업 이전과 소득 저하, 인구 감소 등 악순환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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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 메디엔하펜 서쪽의 컬러리움과 로겐도르프 하우스 뒤셀도르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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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는 1974년 항만재생의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2년 뒤 항구 구역 212㏊ 중 베르거하펜과 촐하펜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이곳에 30㏊의 상업·업무·주거 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1978년부터 당시 국영에서 주 단위로 분화하던 방송사와 팽창을 가속화하던 통신사 등 미디어산업을 집중적으로 유치했다. 이후 광고 영화 출판 패션 등 산업이 입주하면서 메디엔하펜으로 굳어졌다.
시정부는 메디엔하펜을 4단계로 나눠 추진했다. 먼저 원도심에 맞붙은 동쪽에 240.5m 높이의 라인타워(1981)와 주의회 의사당(1988), 서독일방송 스튜디오(1991)를 지었다. 2단계는 1989년부터 10년 동안 옛 부두를 따라 세계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 스티븐 홀, 데이비드 치퍼필드 등이 설계한 건축물을 잇달아 세웠다. 특히 프랭크 게리의 노이어 촐호프는 짓자마자 곧바로 뒤셀도르프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외관이 휘어지며 올라간 세쌍둥이 건물은 건축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명성을 누렸다. 3단계는 1999~2010년 부두 건너 창고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알록달록한 창들이 어우러진 컬러리움과 인형들이 기어오르는 로겐도르프 하우스 등은 인기 있는 답사 코스로 떠올랐다. <뉴욕 타임스>와 <인디펜던트>도 혁신적 디자인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도할 정도였다. 서쪽 끝 4단계는 미래에 대비해 주거용지 등으로 유보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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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뒤셀도르프 메디엔하펜. 뒤셀도르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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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과정에서 도로는 입주 회사의 민간자본으로 닦았고, 다리는 시정부의 공공자금으로 건설했다. 시정부는 이곳에 버스·트램·지하철 노선을 배치해 접근성을 높였다. 이곳을 찾으면 170m 공중의 라인타워 전망대, 라인강의 파노라마보트, 자전거나 보행로 등을 이용해 다양한 각도로 현대 건축의 박람회장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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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도로를 지하화한 라인강 산책로 구조. 뒤셀도르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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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부는 메디엔하펜을 조성할 때 랜드마크, 공공성, 정체성 등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건축 디자인과 스카이라인 등 기준을 설정하고, 신축 건물은 국제 공모를 통해 저마다의 특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특히 공습에서 살아남은 2차대전 이전 건물에 애착이 강한 국민 정서를 고려했다. 항만이었던 도시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항만의 안벽과 철로를 비롯해 크레인, 사일로, 하역장 등 시설과 세관 창고 발전소 등 건물을 남겼다. 이렇게 해서 수변 건물의 50%는 보존하고, 50%는 옛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축했다. 또 건물 광고를 금지하고, 야간 조명을 연출하는 등 디자인을 부각하는 데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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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과 라인강을 가로막은 강변도로를 지하화하고 지상에 녹지공원을 조성한 뒤셀도르프의 명소 도시해변.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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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부는 이어 메디엔하펜 들머리를 친수공간으로 바꾸었다. 이곳은 원도심과 라인강 사이에 있는 강변도로 때문에 보행로가 단절된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보행자가 없어 활력을 찾기 어려웠다. 시정부는 1993년 4차로 규모의 강변도로 2㎞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나무가 울창한 라인강 산책로를 조성했다. 원도심과 라인강을 연결한 녹지 축이 만들어지자 도시의 인상이 달라지고, 덩달아 상권이 살아났다.
실제로 라인강 산책로에는 10여개의 컨테이너로 만든 매점, 카페, 식당, 클럽 등이 나란히 문을 열고 있다. 주민들은 이곳을 도시해변으로 부르며 여유와 휴식을 즐기고 있다. 화창한 날이면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어 햇볕을 쬐거나 정담을 나눈다. 시정부는 “도심 언덕 위 안락의자에 앉아 라인강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주민들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는 다른 도시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고 소개했다.
45년 동안 추진된 메디엔하펜 프로젝트는 뒤셀도르프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도시 인구는 90년대 58만명에서 최근 64만명으로 늘어났다. 메디엔하펜에는 시세이도 유럽 본사 등 기업 800곳이 이전해 9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투자유치 효과는 현재 4억유로이고, 앞으로 16억유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뒤셀도르프 마케팅 유한책임회사의 로만 폰데어비셰 홍보실장은 “입주하려고 대기 중인 기업이 적지 않다. 따로 광고하지 않아도 홍보 효과를 충분히 누리고 업무 환경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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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언하펜의 동쪽에 들어선 라인타워와 노이어 촐호프. 뒤셀도르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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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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