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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말뫼(왼쪽)와 덴마크 코펜하겐(오른쪽)을 연결하는 외레순대교. 2000년 7월1일 외레순대교가 개통되면서, 두 도시는 30분 안에 오갈 수 있는 이웃이 됐다. 말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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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기획]
‘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국외-③스웨덴 말뫼 서부항 재개발 사업
말뫼시 6개월간 항만재생 끝장토론으로
조선소 터에 친환경 정보·복지 ‘미래도시’
평균 나이 29.5살…‘1인 기업’ 창업 활발
‘재정 균등화 제도’ 덕택 사업 성공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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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말뫼(왼쪽)와 덴마크 코펜하겐(오른쪽)을 연결하는 외레순대교. 2000년 7월1일 외레순대교가 개통되면서, 두 도시는 30분 안에 오갈 수 있는 이웃이 됐다. 말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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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25일 스웨덴 항구도시인 말뫼시의 서부항에 있던 코쿰스(KOCHUMS)조선소의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1500t급 크레인이 배에 실려 한국의 현대중공업으로 떠났다. 1987년 코쿰스조선소가 망하면서 10년 이상 매물로 나와 있던 크레인이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린 것이다. 이 크레인은 현대중공업에서 ‘골리앗 크레인’이라고 불렸다. 한국 언론은 이날의 일을 ‘말뫼의 눈물’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달 25일 <한겨레>는 ‘말뫼의 눈물’을 살펴보기 위해 말뫼를 찾아갔다. 하지만 스웨덴 관문인 스톡홀름공항을 거쳐 말뫼로 가지 않고, 바다 건너 이웃 나라인 덴마크의 코펜하겐공항을 거쳐서 갔다. 말뫼와 코펜하겐은 외레순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지난 2000년 7월1일 두 도시를 연결하는 외레순대교가 개통됐기 때문이다.
외레순대교는 길이 7845m의 2층 다리로, 2층은 자동차 전용 4차로이고, 1층은 복선 철로이다. 두 도시를 오가는 기차는 출퇴근 시간에는 10분, 나머지 시간대는 20분마다 운행한다.
코펜하겐공항역에서 말뫼행 열차가 출발하고 6분이 지나자, 외교부·소방청·통신사의 안내문자가 잇달아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6분 만에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12분이 더 지나자 목적지인 말뫼 중앙역에 도착했다. 코펜하겐공항역에서 말뫼 중앙역까지 열차 일반석 요금은 우리돈 1만6000원에 불과했다. 국경을 넘었지만, 물품 검사 등 출입국 절차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열차 승차권 검사도 하지 않았다. 열차는 승객들로 가득 차서, 절반가량은 붐비는 지하철처럼 좌석 없이 서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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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말뫼 서부항에 있던 코쿰스조선소의 1950년대 전성기 때 모습. 말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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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에 도착해서 사흘 동안 옛 조선소 지역을 샅샅이 훑었지만 ‘말뫼의 눈물’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코쿰스조선소와 협력업체 건물들로 즐비했던 말뫼 서부항은 이미 친환경 신도시로 변했고, 옛 조선소 작업장 건물이 아직 남아있는 곳에선 중장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옛 조선소 도크는 요트 계류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본느 고스너(Yvonne Gossner) 스웨덴 문화교육사 대표는 “말뫼 코쿰스조선소의 크레인이 한국에 팔려갔다는 것은 어른들만 기억할 뿐, 젊은이들은 잘 알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말뫼는 덴마크 북부와 스웨덴 남부를 아우르는 외레순 지역의 중심도시가 되어 있었다.
1870년 코쿰스조선소가 말뫼 서부항에 문을 열면서, 말뫼시는 195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1970년대 두차례 오일쇼크를 겪으며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코쿰스조선소는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설비 축소와 인력 감축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소용없었다. 스웨덴 정부는 1979년 코쿰스조선소를 국유화하고, 인력 30%를 추가 감축했다. 공적자금 349억크로나(4조4000억원)도 투입했다. 하지만 회생에 실패하며 1986년 말 부도를 냈고, 1987년 초 결국 사업장 폐쇄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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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시의 새로운 일자리에 고급인력을 꾸준히 공급하고 있는 말뫼대학 내부 모습. 카페처럼 꾸며진 복도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하거나 토론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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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정부는 대규모 실직 사태를 막기 위해 조선소 자리에 사브(Saab)자동차 공장을 유치했다. 그러나 1992년 지엠(GM)이 사브를 인수합병하면서, 사브 공장을 폐쇄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에 말뫼시의 일자리 25%가 사라지면서, 말뫼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3만여명이 실직했다. 말뫼시는 재정 파탄 위기로 내몰렸다.
1994년 말뫼시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끝장 토론을 6개월 동안 진행했다. 이 결과 ‘전통 제조업과의 이별’을 선언하고, 지식·정보·관광서비스 등 신흥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개발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정책을 결정하고 이끌었던 일마르 리팔루(Ilmar Reepalu)전 말뫼시장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잘하고 있구나’라는 믿음과 ‘이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 먼저 말뫼시는 1996년 조선소가 있던 서부항 30만㎡ 터에 친환경 정보·복지 사회인 ‘미래도시’(City of Tomorrow) 건설에 나섰고, 2001년 완공과 동시에 이곳에서 유럽주택박람회를 열어 유럽 전체를 상대로 분양했다. 2002년엔 코쿰스조선소 터 전부를 구입해 친환경 신도시 확장에 나섰다. 서부항 신도시는 주거·업무·상업·교육 기능을 모두 갖춘 복합형 도시이며, 지역 내에서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에너지 자급도시이다.
2005년엔 서부항 신도시 상징물로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를 세웠다. 높이 190m 54층짜리 아파트로 북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시계방향으로 90도 비틀어진 특이한 형태로 서부항 신도시의 대표적 관광명소가 됐다.
2000년 개통한 외레순대교는 말뫼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지난해 외레순대교 이용자는 하루 평균 1만4500명으로, 93%가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었다. 말뫼와 코펜하겐 사이에 2030년 해저터널을 뚫고 지하철까지 개통하면, 두 도시는 15분 거리로 단축된다.
서부항 신도시는 2030년 완공 예정인데, 이 지역 인구는 이미 2만명을 넘겼다. 또 최근 10년 동안 말뫼 전체에 2만6000여개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이 가운데 2만여개가 서부항 신도시에서 생겨났다. 이들 중 생산업 종사자는 7%에 불과하다. 전체 일자리의 42%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1인 기업이다.
말뫼시는 새로운 일자리에 고급인력을 꾸준히 공급하기 위해 1998년 7월1일 말뫼대학을 열었다. 말뫼대학에선 현재 2만6000여명이 첨단과학 중심의 학문을 배우고 있다. 또 2002년부터 예비사업가들의 기술개발과 창업을 지원하는 창업인큐베이터인 밍크(MINC)와 미디어 이볼루션 시티(Media Evolution City), 메데온 사이언스 파크(Medeon Science Park) 등을 잇따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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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남아있는 옛 코쿰스 조선소 공장 모습. 말뫼시 서부항 신도시는 2030년 완공된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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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동안 말뫼시 인구는 5만명가량 늘어서, 지난 7월31일 현재 34만1999명을 기록했다. 조선업 호황기 때보다 8만명 이상 많은 것이다. 내년에는 35만명을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잇대는 20~30대와 이들이 낳는 5살 이하 아이들이다. 덕택에 말뫼시는 평균나이 29.5살의 젊은 도시가 됐다. 2007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말뫼 서부항 신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말뫼를 세계 혁신도시 순위 4위에 올렸다.
안드레아스 쇤스트룀(Andreas Sch ?str ?) 말뫼시 부시장은 “조선소 크레인은 더이상 말뫼의 상징이 아니다. 이제 말뫼는 터닝 토르소와 외레순대교라는 새로운 상징을 갖췄다. 말뫼는 매우 전략적 위치에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스웨덴을 넘어 북유럽 전체의 앵커 도시가 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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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말뫼의 새로운 상징이 된 터닝 토르소.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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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위기에까지 몰렸던 말뫼시가 대규모 재개발 사업을 과감히 벌여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가장 눈여겨볼 것은 ‘도시 재정 균등화 제도’(Kommunala utj ?ningssystemet)이다. 이 제도는 지방세 수입이 많은 도시가 지방세 수입이 적은 도시를 지원해 재정 균등화를 이루려는 것이다. 잘사는 도시의 지원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중앙정부가 지원한다. 잘사는 도시의 돈으로 못사는 도시를 돕는 것이라서 ‘로빈 후드 제도’라고도 부른다. 세금 수입은 도시 규모와 성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도시별로 주민들이 누리는 혜택까지 달라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이다.
말뫼시는 이 보조금을 재개발사업에 투자했다. 말뫼시는 아직도 보조금을 받고 있는데, 지난해엔 50억크로나(약 6158억원)를 받았다. 이는 지난해 말뫼시 총수입의 20%를 넘는 액수이다. 재개발을 통해 말뫼시가 빠른 속도로 되살아나면서, 최근에는 보조금 받는 것을 중단할 때가 됐다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다.
로타 한손(Lotta Hansson) 말뫼시 홍보담당관은 “도시 재정 균등화 제도는 모든 국민이 함께 잘살기 위한 것이다. 만약 말뫼시가 이 제도의 지원을 받지 않아 여전히 어려운 상태라면, 말뫼는 물론 국가 전체가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말뫼시가 아직은 이 제도의 도움을 받지만, 머지않아 다른 도시를 돕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말뫼/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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