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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2 05:00 수정 : 2019.11.12 09:56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옆의 산책로. 원래 이곳은 낡은 부두였다.

[부산시-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기획]
‘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⑤문화도시로 부활, 스페인 빌바오항
쇠락한 철강도시를 시민 품으로 돌려
폐업 잇따르고 대홍수 겹쳐 슬럼화돼
시, 수질개선에 1조7천억원 과감 투자
30년동안 ‘문화예술도시’ 탈바꿈 작업
구겐하임미술관이 방문객 모으며 활기
인구 40만명 ‘부자도시’의 위상 되찾아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옆의 산책로. 원래 이곳은 낡은 부두였다.
“썰렁하고 우울했던 도시 전체가 쾌적해지고 방문자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이베리아반도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의 빌바오항 상류 부두 산책로에서 만난 후안 호세(72)는 “날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니 지역경제도 살고 교통도 편리해졌다. 덩달아 철강·조선업종에서 첨단 지식업종으로 산업생태계까지 변하는 것 같아서 빌바오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지난 9월말 사흘 동안 둘러본 빌바오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진 스페인의 다른 도시와 달리 생기가 넘쳤다. 산악지역의 인구 40여만명 도시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빌바오 국제공항은 유럽 전역을 오가는 비행기들로 혼잡했고 도로엔 차들이 넘쳤다.

빌바오시는 스페인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무력투쟁까지 벌였던 바스크 자치지방의 3개 주 가운데 하나인 비스카야주의 주도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빌바오시는 중세시대 철이 발견되면서 철의 도시가 됐다. 산업혁명기 빌바오에서 만든 철강제품은 유럽 전역으로 수출됐다. 도시에 일자리는 넘쳐 났고 사람과 돈이 몰리면서 금융업이 발달했다. 철구조물을 사용하는 조선업도 호황을 누렸다. 빌바오시는 20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자리매김했고 유럽에서도 손에 꼽을 부자도시가 됐다.

1970년대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빌바오항 하류(왼쪽)와 현 빌바오항(오른쪽). 빌바오 메트로폴리 30 제공
일등공신은 북대서양 비스케이만 들머리의 빌바오항이었다. 빌바오 곳곳에서 채굴한 철광석과 제련소를 거쳐서 만든 철강제품 등은 빌바오항을 통해 수출됐다. 비스케이만에서 유입되는 북대서양의 바닷물은 네르비온강과 만나 하류인 빌바오 시내까지 10㎞ 이상 흐르는데 네르비온강변 왼쪽에 줄지어 들어선 제련소와 조선소의 부두엔 철강제품과 선박 기자재를 실은 배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부두 주변은 크레인 등 중장비들과 부두·공장노동자들로 북적였고 시민은 접근하지 못했다

위기가 찾아왔다. 1980년대부터 철강·조선업체들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의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이 강력한 경쟁자였다고 한다. 휴·폐업이 잇따라 실업률은 20~30%까지 치솟았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났다. 설상가상 1983년 대홍수까지 발생해 도시는 물바다가 됐다. 철강·조선업체들이 떠난 자리는 쓰레기장과 우범지역으로 전락했고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스페인 북부 스페인 빌바오항 상류에 정박중인 대형 크루즈선 주변에 요트들이 다니고 있다.
빌바오시는 1990년대부터 도시 재생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빌바오시와 주정부, 시민단체는 도시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공업도시에서 문화예술도시로 탈바꿈하기로 결심했다.

시작은 네르비온강이었다. 빌바오시 재생의 중·장기계획을 만드는 싱크탱크인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의 대표 알폰소 마르티네즈 시아라는 “강변 수질개선부터 시작했다. 빌바오시 제련소와 조선소에서 흘러나오는 시뻘건 쇳물이 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차단했고 강바닥의 썩은 퇴적물을 걷어냈다. 1990년대부터 30년가량 1조7천억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제련소와 조선업체는 외곽으로 옮기고 네르비온강변의 부둣길을 따라 3㎞의 산책길과 1.2㎞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었다. 세계적인 거장의 예술작품을 곳곳에 설치했고 미술관·콘서트홀·박물관·공원 등을 만들었다.

접근성도 높였다. 누구나 친수공간으로 변모한 네르비온강변에 쉽게 다가서도록 1950년대 철수했던 트램을 다시 운행했다. 주변 도시 주민들이 30분 안에 시내를 찾을 수 있도록 지하철을 확충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의 구겐하임미술관 옆에 트램이 달리고 있다.
빌바오시 관계자는 “네르비온강 때문에 단절했던 윗동네와 아랫동네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곳곳에 다리를 만들었다. 어린이놀이터를 만들고 국제공항도 새로 단장해 도시철도를 타고 20분 안에 도심에 도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네르비온강변을 찾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달리는 사람들이 생겼고 해 질 녘이면 가족들이 버스킹 공연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린이놀이터에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장노동자들만 이용했던 도심의 강변이 주민 품에 안긴 것이다.

옛 컨테이너 야적장과 제련소 터에 들어선 구겐하임미술관은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1997년 10월 미국 뉴욕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인 구겐하임미술관을 네르비온강변에 완공하자 100만명 이상이 찾았다. 구겐하임미술관은 완공 5년 만에 3000억원의 건축비를 회수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항 상류에 있는 비즈카야다리(세계문화유산). 북대서양 북부의 비스케이만의 바닷물이 이곳을 통과해서 시내까지 흐른다.
구겐하임미술관은 파급효과를 낳았다. 발길이 뜸했던 다른 미술관 등의 방문객이 늘어났다. 빌바오시 관계자는 “10년 만에 호텔수가 10배 이상 늘었고 일자리 4000개가 창출됐다”고 했다. 구겐하임미술관 근처 레스토랑의 주인은 “구겐하임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미술관을 개관할 때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서 아직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빌바오항 재생 성공으로 도시 전체가 되살아나면서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도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30만명까지 줄었던 인구가 40만명을 회복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달러로 스페인 평균 3만달러를 훨씬 상회한다. 스페인 최고 부자도시 위상을 되찾은 것이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항 하류 야외 해양박물관은 크레인과 선박 등 예전의 선박시설들이 전시되고 있다.
빌바오시는 빌바오항 재생을 추진하면서 철강·선박도시의 전통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콘서트홀이 대표적이다. 실제 제련소 터에 세운 콘서트홀은 철구조물이었다. 빌바오시가 철강도시였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야외 해양박물관은 빌바오항의 역사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야외 마당은 대형 크레인, 도크, 닻, 퇴역한 선박 등이 손님을 맞는다. 해양박물관 안내원은 “이곳에 1900년 첫 번째 도크가 만들어져 수많은 시민과 선주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이 열렸다”고 말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뒤로 주택이 밀집됐다. 김광수 기자
빌바오항 하류 네르비온강변의 재생은 2개의 조직이 주도했다. 지방정부와 스페인 정부, 지방의회가 함께 설립한 재개발추진기구 ‘빌바오 리아 2000’과 민·관 협력기구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이다. 두 조직 모두 1992년 출범했다. 빌바오 리아 2000은 실행기구다. 공공개발을 한 뒤 지분과 사용권을 민간에게 넘기고 발생한 수익금은 재개발사업에 다시 투자한다.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에서 30은 빌바오시 주변 도시 30곳을 의미한다. 빌바오시 발전만 꾀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 30곳과 상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메트로폴리 30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800여명이나 된다. 건축·설계·환경 등 모든 분야에 몸담은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의 관계자들이다. 거대한 집단지성인 이들은 정기 또는 수시로 만나 도시 재생의 계획을 세운다. 합의된 의견은 빌바오시에 전달하고 빌바오시는 이를 반영해서 집행한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의 구겐하임미술관. 보는 방향에 따라 선박과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공기관이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갈등이 일어날 수가 있는데 빌바오 리아 2000과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의 갈등은 없다고 한다. 빌바오 메트로폴리스 30에 지방정부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고 이견이 해소될 때까지 끊임없이 소통하기 때문이다. 빌바오시는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새로 지을 때면 세계적인 작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전략을 펴고 있다. 또 빌바오시 산하에 ‘인터내셔날’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유명한 작가 전시회와 음악회 등을 수시로 열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가 되려면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 문화가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는 게 빌바오시의 설명이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항 하류 빌바오 시내에 자리한 구겐하임미술관은 원래 컨테이너 야적장 등이 있던 자리였다. 둥근 고층 건물이 스페인 전기회사이고 이 건물 앞에 대학 도서관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위쪽으로 걸어가면 철구조물로 만든 콘서트홀과 해양 야외박물관(크레인)이 있다.
빌바오시의 독특한 정치·경제적 상황도 빌바오항 재생의 성공에 한몫했다. 빌바오시는 바스크 지방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는데 중앙정부가 독립운동을 무마하려고 빌바오시민이 내는 세금의 15%만 거둔다고 한다. 나머지 85%는 빌바오시가 집행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빌바오시가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강력한 이유다.

빌바오시 지방정부와 시의회의 갈등이 거의 없는 것도 강점이다. 독립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스크 정당 후보들이 시장과 시의원에 계속 무더기 당선되기 때문이다. 빌바오시 관계자는 “지방선거에서 1위를 한 정당이 바뀌면 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될 수 있지만 빌바오시는 사람만 바뀌고 정당은 그대로여서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트램 철로 옆의 자전거도로.
고비도 있었다. 빌바오시가 1988년 구겐하임미술관 등을 지어서 문화예술도시로 변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분노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실업률이 치솟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고용을 유발하는 제조업을 육성하지 않고 뜬금없이 미술관을 유치하겠다고 하니 반발은 당연했다. 이에 당시 빌바오시장이 “미술관을 완공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1990년 착공에 들어갔다. 만약 당시 빌바오시장이 표를 의식하고 구겐하임미술관 건립계획을 포기했다면 오늘의 빌바오시가 가능했을까.

빌바오시는 이제 2035년을 바라보고 있다. 전통 제조업의 비중을 더 낮추고 유럽 5대 도시 도약이 목표다. 고용·국내총생산·교육·노인부양·건강 등 5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미래 도시를 만들려고 한다.

[%%IMAGE11%%] 2단계 재생계획은 이미 착수했다. 중류지역 50㏊에 대규모 공원과 체육시설 등을 갖춘 친환경 주거·업무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맡겨 기본계획을 만들었고 현재 낡은 공장을 차례로 철거하고 터를 닦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알폰소 마르티네즈 빌바오 메트로폴리 30 대표는 “어떤 투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성장이 멈춘다. 이를 예측하고 또 다른 성장을 모색하지 않으면 또다시 위기가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네르비온강변의 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빌바오시는 없었을 것이다. 시민들이 항구를 내 집 마당처럼 이용하지 않으면 외지 관광객도 찾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관광객 유치에만 목적을 두고 항만재생을 하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빌바오/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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