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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6 05:00 수정 : 2019.11.26 07:27

영국 리버풀시 리버풀항 앨버트도크 들머리 근처에 있는 비틀스 스토리(박물관) 모습. 리버풀은 세계적인 팝그룹 비틀스의 고향이다.

[부산시-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기획]
‘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⑨영국 리버풀항
산업구조 변화로 제1항만도시 쇠퇴
경기침체·실직…분노한 시민들 폭동
역사문화자산 개발로 도시재생 나서
존 레넌 죽음에 수만명의 추모객들
정부, 폐쇄안 대신 개발법인 설립해
축제·예술 등 문화산업 활성화 박차
EU, 2008년 ‘유럽 문화 수도’ 선정

영국 리버풀시 리버풀항 앨버트도크 들머리 근처에 있는 비틀스 스토리(박물관) 모습. 리버풀은 세계적인 팝그룹 비틀스의 고향이다.

1936년 작가 조지 오웰이 영국 하층 노동계급의 생활상을 취재하기 두 달여간 머무른 항구도시 리버풀은 내게 모하메드 살라(리버풀FC)의 도시이자, 무엇보다 비틀스의 도시였다.

10월3일, 꿈에 그리던 리버풀항의 앨버트도크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근처 정류장에 2층 버스가 도착하자 관광객들이 줄을 섰다. 근처에는 복합운동장인 엠앤에스뱅크아레나와 높이 100m가량의 대관람차가 보였다. 앨버트도크 아래에 있는 듀크스도크에는 대형 고무 튜브들이 떠 있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전신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근처 도로에 택시를 정차하고 있던 운전기사 토미는 “리버풀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많은 관광객이 리버풀을 찾는다. 이곳을 중심으로 볼거리가 많다”고 말했다.

앨버트도크에는 20세기 최고의 전무후무한 락밴드 비틀스의 노래가 쉴새 없이 흘러 나왔다. 옛 항만창고 건물로 만든 앨버트도크 들머리 한쪽에는 비틀스 자료가 전시된 박물관(‘비틀스 스토리’)도 보였다. 리버풀의 작은 술집에서 시작한 비틀스가 전세계를 사로잡던 시절의 사진과 앨범 등이 전시돼 있어 ‘비틀매니아’의 성지로 꼽힌다.

앨버트도크에는 음식가게과 술집, 커피점 등 상가가 즐비했다. 도크 안쪽에는 수상레포츠시설도 있었다. 관광객들이 카누를 타고 앨버트도크를 도는 모습도 보였다. 도크 곳곳에는 배를 만들거나 수리할 때 사용했던 높이 3m가량의 크레인이 눈에 띄었다.

영국 리버풀시 리버풀항 앨버트도크 모습. 옛 항만창고 건물이 'ㅁ'자 모양의 성처럼 둘러싼 모양새다.

리버풀시 왼쪽으로 흐르는 머지강의 이름을 딴 머지사이드 해양박물관도 앨버트도크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1715년부터 현재까지 리버풀 항만의 역사를 담은 자료를 볼 수 있다. 해양박물관 3층에는 1912년 침몰한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 전시관도 있다. 타이타닉호를 만든 ‘화이트스타라인’ 본사는 리버풀시에 있었다. 4층에는 국제노예박물관이 나온다. 노예박물관에는 흑인을 노예로 만든 과정이 기록돼 있다. 리버풀은 18세기 당시 노예무역 중심항이었다.

해양박물관 건물 왼쪽에는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리버풀’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는 미국·브라질·러시아·중국 등 세계 각국 작가들의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테이트리버풀 관리 직원은 “현장학습뿐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작가와 작품을 선택해 전시하는 공간 ‘아이디어 디포트’도 있다. 이달에는 에지힐대학교 학생들이 작품을 골랐는데, 관광객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앨버트도크를 중심으로 음악, 예술, 관광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갖춘 비틀스의 심장이자 ‘유럽 문화수도’인 리버풀의 오늘이다.

영국 리버풀시 리버풀항 앨버트도크에 있는 머지사이드 해양박물관 들머리. 옛 부두창고를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아일랜드해 연안에 있는 리버풀은 17세기부터 대서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노예매매 등 해상무역으로 이름이 높았던 항구도시다. 1807년 노예무역이 법으로 금지됐지만, 리버풀은 해상무역으로 유럽 최고의 항구 자리를 지켰다. 1846년 문을 연 앨버트도크는 리버풀의 부흥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19세기에는 미국으로 오가는 대서양 정기 노선도 운항됐다. 19세기 중반 리버풀 인구는 100만여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쇠락을 일찍부터 찾아왔다. 19세기 말부터 산업운송 구조가 선박에서 기차로 변하자 리버풀도 천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 상업용 항구 기능을 사실상 잃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항으로 활용됐던 리버풀은 1941년 한해에만 68차례 공습이 있을 정도로 독일의 집중적인 폭격을 받았다. 전후 복귀도 원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리버풀을 떠났고, 낡고 노후한 항만은 그대로 방치됐다. 기차역인 리버풀 라임스트리트 근처에서 음식가게를 하는 머독은 “1970년대 리버풀은 어둡고 음침한 도시였다. 거리에는 일자리를 잃었거나 찾지 못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많은 젊은이가 이곳을 떠났다”고 회상했다.

영국 리버풀시 리버풀항 앨버트도크 안쪽 모습.

1981년 결국 리버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경제침체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시민의 분노였다. 당시 톡스테스(toxteth) 지역에 사는 30대 이하 흑인의 60%는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맸다. 리버풀 평균 실업률은 20%를 훌쩍 넘었다. 리버풀은 혼란에 빠졌다. 마가릿 대처 총리의 영국 정부는 군대 배치까지 고려했다.

리버풀시가 관광객 유치에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비틀스 멤버 존 레논의 죽음이었다. 재생계획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리버풀은 쇠락해 슬럼화된 항구도시일 뿐이었다. 1980년 12월 존 레논이 총기사고로 숨지자 같은달 14일 리버풀에 2만여명의 추도객이 몰렸다. 이후 전세계에서 추도객이 끊임없이 리버풀을 방문했다. 엔지 레드헤드 리버풀시 자산 책임자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리버풀을 되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봤다. 여기에 리버풀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른다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엠디시는 중앙·지방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예산을 운영해 재생계획을 추진했다. 앨버트도크 등 옛 항만시설을 리모델링해 관광자원화에 힘썼다. 국제정원축제 등 볼거리도 만들었다. 1984년 8월 머지강에서 열린 ‘커티샤크 범선 경주’에는 관광객 100만명이 몰렸다. 주마가편이었다. 이후 재생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리버풀도 점차 활기를 되찾았다. 유럽연합과 정부도 리버풀시에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리버풀시는 이 자금을 도시재생을 통한 경제 재건에 사용했다. 민간자본도 리버풀시와 손을 잡고 투자에 나섰다. 선순환이었다. 리버풀시는 엠디시가 해체한 1998년부터 역사와 문화가 아우러지는 ‘문화 투자 프로그램’을 만들어 축제와 예술 등 문화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했다.

엔지 레드헤드 리버풀시 자산 책임자가 리버풀의 재생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8년이 리버풀의 전환기입니다. 앨버트도크 등 리버풀의 역사문화자산을 활용해 10년 동안 키우고 진행한 문화 프로젝트가 꽃을 피웠습니다.” 엔지 자산 책임자가 강조했다. 당시 유럽연합(EU)은 회원국 사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유럽 도시문화 개발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리버풀을 ‘2008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했다. 리버풀시는 대규모 문화예술 공연과 행사를 기획해 잇따라 열었다.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리버풀시는 전략적 투자계획을 세워 민간자본 유치에 적극 나섰다. 도시재생 정책 과제를 연구하고 계획하기 위해서 문화관광·국제협력·도시재생 등 관련 부서를 통합한 ‘리버풀 컬처 컴퍼니’를 만들어 운영했다. 현재는 ‘컬처 리버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리버풀의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해 진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도시재생은 컬처 리버풀을 비롯한 관련 부서가 유기적인 협력으로 진행한다. 영국 정부는 해마다 리버풀시에 도시재생 관련 예산을 지원할 뿐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

지난해 리버풀을 다녀간 관광객은 모두 3800만명이다. 이는 전년에 견줘 7.4% 증가한 수치다. 하루 이상 머무는 체류 방문자도 연간 270만명에 달한다. 엔지 레드헤드 자산 책임자는 리버풀의 성공 요소를 묻는 질문에 “10년 이상 여러 민간업체와 함께 다양한 문화 콘텐츠 개발 등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민간업체가 만족할만한 내용의 콘텐츠 기획이 쉽지 않다. 많은 고민과 여러 도전, 민간업체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난관을 극복해 발전했다. (민간업체와의) 동반자 관계는 대단히 탄탄하다. 이것이 리버풀시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리버풀시의 고민은 점차 줄어드는 정부 지원예산이다. 영국 정부는 최근 4년 동안 총 1억 파운드의 지원예산을 삭감했다. 삭감 비율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엔지 레드헤드 자산 책임자는 “리버풀시는 자생할 수 있다. 문화콘텐츠 개발과 투자 등 10년 넘게 민간업체와 함께 일해오면서 쌓인 경험과 관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리버풀시가 표어로 내건 ‘공정성을 바탕으로 한 도시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리버풀시 리버풀항 앨버트도크 안쪽에서 관광객들이 카누를 타며 물놀이를 하고 있다.

“20세기 중후반까지 리버풀은 먹고 살기 위해 사람들이 떠나야 했던 암울한 도시였습니다. 도시 재생으로 다시 부흥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암울한 도시 이미지를 지우는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습니다. 이제 시민들은 리버풀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세계적인 문화 이벤트가 있고, 비즈니스 중심지이자, 경제력이 있는 다양한 매력과 먹거리가 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항만재생의 목적과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리버풀/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영국 리버풀시 리버풀항 앨버트도크 앞 버스 정류장에 2층 버스가 도착하자 관광객들이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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