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내 생애 동안 진행된 우리 사회의 폭발적인 변화에 감격을 스스로 드러내놓고 자부한 바 잦았지만,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보기 힘든 그 성장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했는지의 자문에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양하 선생이 꼽은 ‘은근과 끈기’가 우선 떠오르고 우리 땅을 둘러본 외국인들이 눈 씻고 다시 바라보는 열정과 창의 정신도 꼽히며 오바마 대통령이 거푸 부러워한 교육열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그 끈기와 열정 그리고 교육이 다른 후진국보다 왜 우리에게 더 강하게 작동했는지 쉬 수긍되지 않았다. 그런 참에 영국 사학자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에서 1차 세계대전은 러시아와 합스부르크의 제국을 해체했고 2차 세계대전은 서구 제국주의가 소유한 곳곳의 식민지들을 해방시켰다는 설명을 읽었다. 그렇구나! 한국사에서 가장 처참했던 한국전쟁은? 여기서 내게 ‘그라운드 제로의 의지’가 짚였다. 6·25에 대한 내 회상은 바로 그 전쟁 벽두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6학년에 오른 지 몇주 안 된 1950년 6월의 마지막 일요일, 내가 자란 지방도시의 중심가에서 “외출중인 국군 장병 여러분, 어서 귀대하십시오”라며 마이크로 외치는 지프차 방송을 들었다. 반동 계급에도 속하지 못한 부모님은 오직 전쟁을 피하겠다는 심정으로, 현명하게, 멀찍이 부산으로 피난했다. 덕분에 나는 인민군을 보지도, 폭격 소리를 듣지도 못한 채 외려 초량 밤바다 외국 원조선들의 휘황한 불빛들을 환상처럼 바라보았다. 석달 후의 10월, 기차 지붕에 실려 사흘 만에 내린 정거장에서 보인 건 멀리 산자락까지 질펀하게 펼쳐진 벌건 폐허였다. 밝아오는 새벽빛에 어스름히 드러나는 시내는 여지없이 부서지고 깨진 황무지였고 시청 등 두어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어 그 황폐가 더욱 살벌하고 적막했다. 어른이 되어 배운 ‘그라운드 제로’의 현장이었다.
칼럼 |
[김병익 칼럼] 역사에의 관용 |
문학평론가 내 생애 동안 진행된 우리 사회의 폭발적인 변화에 감격을 스스로 드러내놓고 자부한 바 잦았지만,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보기 힘든 그 성장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했는지의 자문에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양하 선생이 꼽은 ‘은근과 끈기’가 우선 떠오르고 우리 땅을 둘러본 외국인들이 눈 씻고 다시 바라보는 열정과 창의 정신도 꼽히며 오바마 대통령이 거푸 부러워한 교육열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그 끈기와 열정 그리고 교육이 다른 후진국보다 왜 우리에게 더 강하게 작동했는지 쉬 수긍되지 않았다. 그런 참에 영국 사학자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에서 1차 세계대전은 러시아와 합스부르크의 제국을 해체했고 2차 세계대전은 서구 제국주의가 소유한 곳곳의 식민지들을 해방시켰다는 설명을 읽었다. 그렇구나! 한국사에서 가장 처참했던 한국전쟁은? 여기서 내게 ‘그라운드 제로의 의지’가 짚였다. 6·25에 대한 내 회상은 바로 그 전쟁 벽두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6학년에 오른 지 몇주 안 된 1950년 6월의 마지막 일요일, 내가 자란 지방도시의 중심가에서 “외출중인 국군 장병 여러분, 어서 귀대하십시오”라며 마이크로 외치는 지프차 방송을 들었다. 반동 계급에도 속하지 못한 부모님은 오직 전쟁을 피하겠다는 심정으로, 현명하게, 멀찍이 부산으로 피난했다. 덕분에 나는 인민군을 보지도, 폭격 소리를 듣지도 못한 채 외려 초량 밤바다 외국 원조선들의 휘황한 불빛들을 환상처럼 바라보았다. 석달 후의 10월, 기차 지붕에 실려 사흘 만에 내린 정거장에서 보인 건 멀리 산자락까지 질펀하게 펼쳐진 벌건 폐허였다. 밝아오는 새벽빛에 어스름히 드러나는 시내는 여지없이 부서지고 깨진 황무지였고 시청 등 두어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어 그 황폐가 더욱 살벌하고 적막했다. 어른이 되어 배운 ‘그라운드 제로’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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