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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1 09:17 수정 : 2019.12.22 10:17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⑤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작가의 꿈 버리지 못했지만
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서점 신간코너에서 분노한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랬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저도 젊을 때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답니다”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난다. 부모님의 지인도 있고, 강연을 하러 간 기관의 기관장도 있고, 언론계 대선배도 있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내게 건네는 덕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분들과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비슷한 질문이 되풀이해서 나왔다.

장 작가는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백일장에서 상도 받으셨나요? 공대 나왔는데 어떻게 작가가 될 생각을 했어요? 글쓰기를 따로 배우셨나요? 회사 다니면서 밤에 혼자 글 쓰는 게 힘들지 않았습니까? 그런 질문들을 받다가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분들은 내게 덕담을 건네는 것이 아니었다. 궁금한 걸 묻는 중이었다.

그런 때 “선생님도 책 한번 써보시죠. 일본에서는 요즘 60대, 70대 신인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라고 권하면 예의 그 손사래가 돌아온다. “아이고, 저 같은 게 무슨…. 책은 장 작가님 같은 분이 쓰셔야 하는 거예요.” 그는 작가의 꿈을 버렸다. 그러나 그 꿈은 버려지지 않았다. 그도, 나도 안다. 앞으로도 그에게 작가의 꿈은 버린 것과 버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상태로 살 것이다.

이런 ‘림보’에 사는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다. 그런데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화가 난다. 어쩌자고 이따위 종이 쓰레기 같은 책을 낸단 말이야? 겨우 이런 글을 인쇄하자고 나무를 베어냈어? 모든 재화가 과잉 생산되고 시시한 물건들이 넘쳐나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그는 유독 책, 그것도 신간에 대해 분노한다. 이런 형편없는 책은 펴내면 안 된다고! 이따위 일기장 같은 책은…, 이런 책은…, 나도 쓰겠다!

‘나무의 소중함’ 운운은 핑계

고백하자면 내가 바로 그랬다. 서점 신간 코너에 가면 분노에 휩싸였다. 지인이 책을 냈다고 하면 관심 없는 척하면서 내용을 몰래 살폈다. 그 책에 신통한 데가 없으면 그제야 겨우 안심했다. 결국 나무의 소중함 운운은 그냥 핑곗거리였다.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아 포기한 작가라는 거룩한 영예를, 다른 녀석이 제값을 치르지 않고 길에서 주웠다고 여겨서 부린 트집이었다. 정의감을 닮았지만 실제로는 질투심이다. 그 흉한 감정은 내 책이 나온 뒤에야 겨우 사라졌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비슷한 시기심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면, 당장 책을 쓰는 편이 낫다. 최악의 경우에도 전과 다른 차원의 독서가로 거듭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힘든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작품의 방법론과 기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피아노를 칠 줄 알면 라흐마니노프가 다르게 들린다.

“너는 글 쓰는 쪽은 아닌 것 같다”는 국어 선생님 말씀에 작가의 꿈을 버렸다는 회한의 고백을 들으면 그 국어 선생님에 대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꿈을 버린 당사자에게도 몇 마디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결국 꿈을 버리지 못하셨잖아요? 미련이 남으신 거잖아요? 수십년 동안 미련을 품고 사느니 그냥 써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국어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셨건 간에. 세상에는 자기 글을 깔본 교수에게 주먹을 먹이고 대학을 뛰쳐나와 소설가로 성공한 할런 엘리슨 같은 이도 있다.

물론 책 한 권을 몇 달 만에 써서 출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 한 권 쓰는 데 수십년이 걸리지도 않는다. 요즘 단행본 한 권이 300쪽 남짓인데, 하루 한 쪽씩 느긋한 속도로 쓴다면 1년이면 365쪽 분량의 책 한 권 초고를 마칠 수 있다는 얘기다. 구상하고 헤매고 퇴고하는 시간까지 합쳐도 넉넉잡아 3년이면 한 권 쓸 수 있지 않을까. 3년이면 그리 먼 미래도 아니지 않은가. 올림픽도 월드컵도 4년 뒤를 기약하고 준비하는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나도 책 한 권 내고 싶었는데,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하는 미련을 품고 산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한국인 기대수명이 80살을 넘어선 지도 한참 됐다. 지금 70대 중반이라도 해볼 만한 도전이다. 3년 동안 다른 일 다 접고 집필에 전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굉장히 심오한 내용이 아니라면, 대체로 밤에 한두 시간이면 한 쪽 분량 정도는 쓸 수 있다. 그게 안 되는 날도 있겠지만, 그보다 잘 써지는 날도 있다.

20대 초중반에 신춘문예 여러 곳에서 낙방했다. 출판사로 응답 없는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한동안은 책 쓰기를 포기하고 지냈다. 초짜 신문기자로 일할 때는 ‘많이 보고 들어서, 퇴직하고 나면 그때까지 모은 소재로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6년 8월21일에(날짜도 기억하고 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는데 그냥은 못 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틀에 박힌 기사만 쓰다 보니 너무 공허했다. 그래서 노트북을 펴고 젊은 신문기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환상적인 기분으로 눈을 떴다. 몇 년 묵은 변비가 사라진 개운함. 나는 그런 글을, 소설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재능이고 뭐고 상관없었다. 그날부터 밤에 한두 시간씩 신문사나 세상을 위한 글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썼다. 수면 시간은 조금 줄었지만,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졌다. 그렇게 장편소설 원고를 마치는 데 꼭 3년이 걸렸다.

그렇게 마친 원고를 아내에게 보여줬는데, 아내가 감상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억지로 졸라 평가를 듣고 나서는 부부싸움을 벌였다. 일주일 뒤에 원고를 다시 읽었더니 그걸 인쇄하느라 잘려나간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너무 낙담하는 바람에 소설 쓰기를 포기할 힘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다음 작품에 착수했다. 그즈음에는 소설을 쓰는 게 제일 즐겁고 위안이 됐기 때문이다.

시간 관리 비법 따위는 없다

이번에는 원고를 마치는 데 2년 남짓 걸렸다. 그 원고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한동안은 ‘직장 생활을 하다 뒤늦게 등단한 소설가 장강명씨’로 소개되기도 했다. 나와 같은 해 데뷔한 작가 중에는 20대도 여럿이었다. 나는 ‘서른 즈음에 소설가가 되는 게 적절하고 나는 좀 늦었나 보군’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더 먹은 지금 젊은 작가라고 불린다. 뭐여, 이게.

작가가 됐더니 사람들이 놀라며 시간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고, 비법이 뭐냐고 물었다. 시간 관리 딱히 안 했는데…. 회사 다니면서 대학원에 등록해서 학위를 취득한 친구나 동기도 많았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시간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고 부업 작가에게만 물었다. 책 쓰는 게 대학원 다니는 것보다 시간이 더 들진 않을 텐데.

어떤 분들은 내게 끈질기게 묻는다.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뛰어난 작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솔직한 내 대답은 “모르겠습니다”이다. 내가 그런 작가는 아니라서, 정말 모르겠다. 그런데 뛰어난 작가가, 뛰어난 사업가나 뛰어난 교사나 뛰어난 요리사는 받지 못하는 하늘의 축복을 따로 받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절대로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3년쯤은 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뛰어난 사업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중요한 건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사업으로 내가 무엇을 얻을까’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의미의 우주’에 한 발을 들였고, 그 우주에 자신의 의미를 보태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당신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작품을 몇 편 발표하기 전에는 당신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욕망을 마주하고 풀어내면 분명히 통쾌할 거다. 가끔은 고생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고생에는 의미가 있다.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자. 의미를, 실존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

▶책 한권은커녕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하는 시대, 카드뉴스를 넘어 50초짜리 동영상이 글자를 대체하는 시대에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강명 작가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많은 이가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사회다. 책 쓰기가 우리 사회에 왜 이로운지를 함께 모색해보기 위해 장강명 작가가 ‘책 쓰는 법’을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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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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