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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6) 작법서 너무 믿지 마세요
필독서라고 주장하는 작법서
문장은 무조건 짧게 쓰라거나
맞춤법·문법에 열을 올리는 등
실제 도움되는 조언은 많지 않다
진부하지만 믿을 만한 지침은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
글쓰기야말로 자기주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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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쓴 작법서 겸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 머리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글쓰기에 대한 책에는 대개 헛소리가 가득하다.’ 킹은 자기 책에도 헛소리가 들어갈 것이기에 그걸 줄이려고 책을 짧게 썼다고 밝힌다.(그런데 <유혹하는 글쓰기>는 그다지 짧지 않다.) 내가 하는 말에도 헛소리가 많이 들어 있을 거다. 거기에 대해 쓰려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러면 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법서를 상당히 많이 읽었다. 소설가로 데뷔하고 나서도 종종 집어 들었다. 내 실력에 자신이 없었고, 다른 작가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비법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작법서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선전하기도 했다. 저마다 자신들이 필독서라고, 이것만 읽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담은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도움이 안 되는 정도를 넘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거나 숫제 글쓰기 자체를 방해하는 어긋난 권고도 있었다. 기실 나뿐 아니라 많은 작가 지망생이 작법서의 신뢰성을 놓고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두 작법서가 서로 완전히 반대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흔하다.
글을 잘 쓰는 기술은 기묘할 정도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분야다. 운동 잘하는 법에 대해서는 수많은 과학자가 거액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원리와 응용 기술을 탐구하고 있다. 뼈와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자라는지, 각 영양소와 신경전달물질들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의류나 장비는 어떻게 디자인해야 효율적인지, 선수의 심리와 팀워크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 반면 글 잘 쓰는 법은 여전히 작가들의 개별적인 체험담에 의존한다.
글쓰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 연금술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누군가의 주장을 맹검법으로 제대로 검증한 적도 없고, 작가들의 뇌에서 신경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특이사항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작법서 저자들은 좋은 의도로 책을 썼을 것이고, 거기에는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도 많이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현자의 돌’ 타령과 다름없는 얘기도 어쩔 수 없이 꽤 포함됐을 것이다. 그러니 참고하되 맹신하지는 말자.
글쓰기에 대한 책에 담긴 ‘헛소리’
불행히도 많은 작법서의 태도는 그 반대다. 자신들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한다. 세상 모든 플롯이 이 안에 있으니 가져가서 변형만 하면 된다는 식의 작법서를 믿고 글을 쓰다가는 책이 말하지 않은 걸림돌에 발목이 걸리기 일쑤다. ‘고양이도 쓸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책을 읽을 때면 잠시 기운이 솟지만, 뒤에 만만치 않은 장애물에 부딪히면 ‘난 고양이만도 못한가’ 하는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
공허한 작법서도 많다. ‘문단들이 스스로 어떻게 배치되고 싶어 하는지 알아내라’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 ‘초고를 다 썼으면 인쇄해서 한번 더 읽으며 오류를 찾아라’ 따위 하나 마나 한 소리를 길게 늘어놓는 책도 있다. ‘글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가슴을 울려야 한다’는 말도 재미라는 게 뭔지, 가슴을 어떻게 울려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 한 의미 없는 얘기다. 누군들 재미없는 글을 쓰고 싶어서 쓰겠는가.
엉뚱한 내용을 길게 늘어놓는 작법서도 있다. 예문이라면서 기성 작가가 쓴 글을 제시하고, 그런 글을 쓰는 방법이 아니라 읽는 방법을 말하는 식이다. 하지만 써보면 안다. 그 두가지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장르의 정의, 역사, 종류, 대표작을 한참 읊는 책도 있다. 두발자전거를 타려는 사람에게 자전거의 역사와 분류법을 강의하는 꼴이다. 메모하는 법을 늘어놓는 작법서도 여기에 해당한다. 메모는 각자 편한 방식으로 틈틈이 하면 그만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지침이 참 많다. 그걸 다 헌법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특히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권고들을 경계하자. 예를 들어 상당수 작법서가 ‘문장은 무조건 짧게 쓰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단문을 선호한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문장을 짧게 쓰면 문법적으로 실수할 일이 적고, 자기 생각도 더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 좋다. 특히 글쓰기 초보들은 대개 문장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쓰는 편이다. 그러나 짧은 문장이 긴 문장보다 언제나 더 아름다운 건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며 모든 사람에게 단문이 적합하지도 않다. 긴 문장으로만 이를 수 있는 감흥과 우아함도 있다. 단문은 유용한 수단이고, 그게 전부다.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길고 짧음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이 있느냐, 그리고 그런 개성이 글의 다른 요소들과 어울리느냐는 것이다.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는 조언은 어떨까. 좋은 제안이지만 초고를 쓸 때는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너무 의식하다 보면 아예 첫 문장을 못 쓰게 된다. 초고를 막 시작했다면 첫 문장은 생각나는 대로 쓴 뒤 바로 잊고 다음 문장을 고민하는 편이 훨씬 낫다. 탈고할 때까지 다시 생각하지 말자.
같은 표현의 반복을 피하라든가, 부사와 형용사를 줄이라든가, 피동형 문장을 쓰지 말라든가, 일본식 한자어를 삼가라든가 하는 금지 사항들로만 가득한 작법서도 있다. 역시 옳은 말이지만 무언가가 용솟음칠 때는 일단 되는대로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반복되는 표현이나 불필요한 수식은 퇴고하면서 고치면 된다. 피동형 문장? 일본식 한자어?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논술시험에서는 감점 요인일 테니 대비를 해야겠다. 하지만 책 한 권을 쓰자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신경 써야 할 문제 중에서는 한참 후순위다.
맞춤법으로 독자에게 겁을 주는 작법서들도 있다. 어떤 문장의 주어와 술어가 호응이 안 된다며 호되게 혼내고, 문장부호 쓰는 법을 몇쪽에 걸쳐 설명하고. 그런 책은 예비 작가보다는 편집자가 읽어야 한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예시문을 ‘죽어 있다, 진부하다, 조야하다’고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작법서도 봤는데,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런 책을 읽으면 누구나 주눅이 들고 자기검열에 빠진다. 공교롭게도 맞춤법에 열을 올리는 작법서일수록 더 크고 중요한 사안은 어물쩍 넘어가는 것 같다.
반면 거창한 창작 이론을 소개하는 책들에 대해서도 나는 다분히 회의적이다. 현재로서는 전부 개인들의 가설에 불과하다. 성공한 작가 중에 꽉 짜인 작법 이론에 따라 글을 쓴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한데 글쓰기 이론을 펼치는 책을 쓴 저자의 대표작이 바로 그 글쓰기 책인 경우는 꽤 있다. 글쓰기 책 외에는 다른 책을 쓴 적이 없는 작가도 있다.
어떤 아기는 기는 단계 없이 걷는다
결국 진부하더라도 가장 믿을 만한 지침은, 많이 읽고(多讀·다독) 많이 쓰고(多作·다작) 많이 생각하라는(多商量·다상량) 옛 격언이다. 스티븐 킹도 자기 책에서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조언을 여러차례 반복한다. 여기에 좀 더 자신을 믿어보라고, 자기 생각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덧붙이고 싶다. 좋아하는 책이 있는가. 그 책이 왜 좋은지, 어느 대목이 좋은지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원고를 판단하는 기준과 가야 할 목표를 이미 갖춘 것이다. 남이 아닌 나의 기준을, 엄격하게 자기 글에 적용해보자. 칭찬을 구하지 말고 부족한 점을 직시하자. 그걸 믿고 가보자.
애초에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한가지 글쓰기 매뉴얼이 있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는 착각인지도 모른다. 과거에 아동학자들은 유아가 걸음마를 배우는 특정한 과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연구를 해봤더니 아기들은 스무가지도 넘는 방식으로 걷기를 배웠다. 파푸아뉴기니의 한 부족 아이들은 기는 단계 없이 바로 걸었다. ‘정상적인 걸음마 학습 경로’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든 아기들은 다 잘 걸었다.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인 토드 로즈의 책 <평균의 종말>에 나오는 얘기다. 로즈 교수는 모든 학습이 자기 주도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쓰기는 틀림없이 그렇다.
문예창작은 아직 학문이 아니라 기예의 영역에 있는 것 같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면 얻을 수 있는 힌트가 몇가지 있는데, 다음 회에서 그 얘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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