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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3 10:08 수정 : 2019.12.10 15:48

지구 구조 활동 뒤 퇴근해 피곤한지 드러누운 치와와들. 체중 1.5㎏의 작은 체구 덕에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아 입히는 것도 일이다.

[애니멀피플] 엄지원의 개부담
반려템, 반려인과 반려견의 영혼의 동반자

지구 구조 활동 뒤 퇴근해 피곤한지 드러누운 치와와들. 체중 1.5㎏의 작은 체구 덕에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아 입히는 것도 일이다.

육아는 ‘템빨’(장비발)이다. 모든 돌봄노동이 사실 그렇다. 제때 손에 쥔 장비는 노동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적은 노력으로 돌봄 대상의 만족도를 끌어올린다.

개란 그저 제때 밥이나 주고 똥이나 치워주면 되는 존재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다. 미개했다. 아직 우리 가족 모두와 치와와 가족 모두(가장 많을 땐 여섯 마리의 반려견이 함께 지냈다!)가 함께 살 때의 일이다.

북적북적 놀아주는 이가 많으면, 장비 따위 없어도 괜찮다. ‘전통적 대가족’ 시절 아이들에게 발달시기별 장난감이나 교구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가정 내에서 성격 맞는 인간이나 개와 어울려 놀면 그만이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자인 데다 졸지에 독박 반려인이 된 나는, 단위시간당 치와와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아이템을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늙어가는 치와와 모녀를 혼자 두고 나가는 게 해가 지날수록 미안해졌다. 나의 부재를 돈으로 메꾸기 시작했다. ‘노즈워킹 담요’는 그 출발점이었다.

모든 반려견주의 멘토인 ‘강형욱 선생님’ 이전에 나는 개들에게 냄새 맡는 활동이 그리 중한지 잘 몰랐다. 그저 후각은 개들이 무언가를 지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냄새 맡는 활동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단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신나게 노즈워킹 중인 치와와들. 엄마인 막내가 딸 쭈니보다는 후각이 뛰어나 늘 먼저 간식을 찾아낸다.

산책을 나가서 치와와 1호 ‘막내’(13)가 유난히 한 장소를 서성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으면 잡아끌기에 바빴다. 우리가 잠시라도 멈추면 2호 ‘쭈니’(11)가 “주인님, 저희 언제 출발하나요”라고 묻는듯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서다. 쭈니는 충성심이 아주 뛰어나지만 호기심은 좀 부족하다.

서로 다른 산책 취향을 가진 막내·쭈니 모녀지만 노즈워킹 담요는 둘 모두에게 찰떡 아이템이었다.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간식도 담요에 숨겨두면 코가 콧물로 흠뻑 젖을 정도로 킁킁대며 신나게 수색활동을 벌인다. 이 노인네들 어디에 이런 에너지가 숨어 있었나 할 정도다. 밤늦게 귀가해 산책할 여력이 없는 날에도 이 담요 한장만 있으면 미물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다.

간식은 물론이거니와, 의상도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반려템’이 되었다. 고향은 멕시코, 사철 따뜻하던 집에서 자란 치와와들이 독박 반려인의 변변치 않은 집에 살게 된 탓이다. 조금만 찬바람이 불어도 옷으로 여며줘야 한다. 7~8년을 대개 알몸으로 살았기에 몸에 붙는 옷을 거추장스러워하고, 품이 넉넉한 옷은 이내 벗어버린다. 재단사를 두고 맞춤옷이라도 해 입어야 할 지경이다.

여러 차례 옷을 사보면서 몇 가지 기준을 갖게 되었다. 다리가 짧으니 소매가 없는 옷을 입어야 하며, 비슷한 덩치의 강아지들보단 목이 두꺼우니 목 부분이 넉넉한 옷을 골라야 한다. 쉽지 않다.

탈모로 악명높은 단모 치와와의 털 관리와 환경 미화를 위해 구비한 아이템도 여럿이다. 두어 번 ‘죽은 털 골라내기’의 명수라고 광고되는 빗을 샀고, 이불에 붙은 털을 떼어내는 도구, 러그에 붙은 털을 떼어내는 밀대를 샀다. 피모 관리를 위한 미스트도 두어 번 광고에 속아 샀다. 혼자 사는 내가 로봇 청소기와 일반 진공청소기를 모두 구비한 것도 다 치와와들의 털 때문이다.

이쯤 되면 미물들을 위해 쇼핑을 하는 건지 쇼핑을 하려 미물들을 돌보는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치와와들이 곁에 있는 한 ‘장바구니 담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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