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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1 09:16 수정 : 2019.12.21 13:38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ㄱ재개발구역 ‘들개’ 똘이와 비비가 2017년 12월 뒷산 바위 아래 새끼들을 낳았다. 정혜주 제공

[토요판] 기획연재
유기구역: 버려진 개와 사람의 땅 ③ 개 같은 인생

수원 재개발구역서 버려진 영월이
산으로 올라가 새끼 낳으며 야생화
개발구역 뒷산 휘저은 개 사냥에도
3대까지 살아남아 ‘들개’ 된 후손들

개발구역서 지하로 밀려난 세입자
사비 들여 개·고양이 돌보는 주민
펜스 밖으로 쫓겨난 가난한 사람과
펜스 안에 홀로 갇힌 들개 한 마리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ㄱ재개발구역 ‘들개’ 똘이와 비비가 2017년 12월 뒷산 바위 아래 새끼들을 낳았다. 정혜주 제공

서울 도심을 털어먹은 개발이 서울 변두리로, 수도권으로, 전국 각지로 손을 뻗었다. 재개발·재건축이 전국화되면서 들개 포획에 나선 자치단체들도 전국으로 확산됐다. 수도권 노후 지역으로 개발이 전염되는 경로에 경기도 수원시 ㄱ재개발구역이 있었다. 도시가 안에 들일 자와 내보낼 자를 가르는 수직의 경계 앞에 버려진 개들과 그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보살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앞으로만 내달리는 도시가 안에 들이지 않는 존재들은 위(▶1회 ‘살아남기 위해’)로 올라가거나 밖(▶2회 ‘유기의 기원’)으로 밀려나거나 아래로 내려갔다. 번영과 발전과 융성에 끼지 못한 그들이 도시가 시선을 거둔 ‘유기구역’에 모여들어 생존을 구했다.

들개로 돌아온 영월이

그 구역은 ‘아래’에 있었다.

전깃불을 켜야 빛을 보는 지하방에서 양순옥(가명·70)이 윗옷 주머니에 사료 봉지를 챙겼다. 아래에서 아래로만 다니며 이 방(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이른 그가 땅 위로 올라오는 시간을 거리에서 쫓겨다니는 개와 고양이들은 때를 맞춰 기다렸다. 그의 아래와 그들의 거리는 모두 도시의 밖이었다.

“짱아 보셨어요?”

지상으로 올라온 양순옥에게 정혜주(가명·48)가 물었다.

“한동안 못 봤는데, 굶어 죽지나 않았나 몰라.”

양순옥이 리어카를 정리하며 짱아를 걱정했다. 정혜주가 밥그릇을 살피며 “짱아”를 불렀으나 짱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양순옥이 전봇대 옆에 세워둔 리어카 아래엔 정혜주가 놓아둔 사료 그릇이 있었다. 웅크려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 리어카 밑으로 들어가 웅크린 채 배를 채웠다. 양순옥의 이웃인 정혜주는 생계 활동 외엔 시간과 돈의 대부분을 떠도는 개와 고양이들을 찾아 보살피는 데 썼다. 양순옥은 정혜주가 나눠준 사료 포대를 집에 두고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조금씩 챙겨 나갔다.

양순옥씨의 폐지 리어카 아래에 배고픈 개와 고양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놓아둔 사료 그릇이 있다. 이문영 기자

양순옥이 작은 손수레를 끌고 골목을 내려갔다. 두 사람의 집과 닿은 골목을 끼고 사방을 둘러친 펜스가 골목 아래까지 이어졌다. 펜스 안은 양순옥이 지난해 6월까지 살던 땅이었다.

그 땅, 펜스 안.

장안구 ㄱ재개발구역(3만5739㎡)은 2009년 정비지구로 지정됐다. 사다리꼴 땅에 485가구 1267명이 살았다. 재개발·재건축 하는 땅들은 자본과 이권의 각축장이었다. ㄱ구역에서도 오랫동안 사업(21층 아파트 8개동)이 표류했다. 조합원에게 금품을 뿌린 건설사가 시공사 선정 무효 판결을 받기도 했다. 정비구역 지정 10년째인 지난해에야 이주가 끝나고 철거가 시작됐다. 이주와 철거는 집 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을 나누고 개들이 유기돼 산으로 올라가는 계기가 됐다.

“이것도 가져가세요.”

양순옥이 길가에 버려진 상자를 정리하고 있을 때 길 맞은편 네일숍 주인이 빈 상자를 들고 나왔다. 양순옥은 ‘폐지 할머니’였다. 새벽과 밤 하루 두 차례 손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며 폐지를 주웠다. 숍 주인에게 양순옥이 덕담으로 답례했다.

“부자 되세요.”

골목 귀퉁이에서 양순옥이 손수레를 멈췄다. 주머니에서 꺼낸 사료를 나무와 나무 사이 풀숲에 뒀다. 폐지를 찾아다니는 짬짬이 사료를 놓아두면 굶주린 고양이들이 먹고 갔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인심 잃게 생겼다.”

그는 사료를 줄 때마다 보는 사람이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동네 사람들이 싫어했다. 사료를 두는 위치는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이어야 했다. 허물어진 담장 틈으로 밀어 넣거나 철물점 앞 방치된 기계 아래에 뒀다. 양순옥이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사료는 짱아의 밥이기도 했다. 짱아는 ㄱ구역의 마지막 ‘들개’였다. 주민들이 떠나며 버린 개들이 동네를 떠돌다 개발구역과 맞붙은 야산으로 올라갔다. 그 개들 중 짱아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2013년 ㄱ구역 안에서 정혜주가 벤치에 묶인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산책하던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줄 알았으나 개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기된 개란 사실을 안 정혜주가 다시 벤치를 찾았을 때 개는 보이지 않았다. 매듭 풀린 목줄만 벤치 다리에 매여 있었다.

재개발이 지연되고 빈집이 방치되면서 떠도는 개들이 늘어났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던 정혜주가 산기슭에 사료를 두면 개들이 와서 먹었다. 사람들이 산에서 번식한 개들과 맞닥뜨리는 일이 잦아졌을 때 ‘도심에 출몰한 들개 떼로 주민들이 불안에 떤다’는 뉴스(2017년 이 지역 취재)가 방송을 탔다. 방송 직후부터 산이 올무밭으로 변했다. 보신탕집 주인인지 개 사냥꾼인지 정체 모를 사람들이 산에 철사 올무를 치고 개들을 쓸어갔다.

정혜주가 뿌려 놓은 사료를 엄마 없는 강아지들이 나타나 먹었다. 한동안 나무 뒤에 몸을 감춘 채 새끼들을 지키며 주위를 경계하던 아빠 개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 함께 사료를 핥았다. 벤치에 목줄만 남겨 두고 사라졌던 수컷 개였다. 산으로 올라간 그가 4년 만에 짝을 잃은 채 새끼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정혜주는 아빠 개를 영월이라고 부르며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ㄱ재개발구역에서 버려져 산으로 올라간 영월이가 ‘들개’가 돼 구조된 뒤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서 옆구리에 박힌 총알(오른쪽 위 흰색)이 확인됐다. 사진 정혜주 제공

엑스레이에 찍힌 총알

양순옥이 상자를 해체했다. 납작하게 눌러 편 뒤 한장 한장 차곡차곡 쌓았다. 플라스틱통과 페트병은 상자 위에 올려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폐지가 나오는 시간과 장소는 대개 정해져 있었다. 양순옥이 새벽(6시)과 저녁(8시)에 폐지를 주우러 지하에서 올라오면 산에서 내려온 짱아가 리어카 옆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사료를 주며 양순옥은 짱아와 약속하듯 말하곤 했다.

“내일 여기서 다시 만나.”

영월이의 새끼는 5마리였다. 똘이, 비비, 밤이, 두부, 솔이. 그들은 산에서 태어난 2세대 들개들이다. 들개들이 길고양이를 공격하는 일이 되풀이되자 정혜주는 개들을 구조(지금까지 들개 14마리·고양이 100여 마리)해 입양 보내는 것이 개와 고양이 모두에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입양인을 찾지 못한 개들은 사비를 들여 보호소에서 장기 보호했다.

영월이는 구조됐을 때부터 건강 상태가 나빴다. 개심장사상충 감염이 심각했다. 동물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을 땐 옆구리에서 납탄이 확인됐다. ㄱ구역 뒷산에서 ‘들개 사냥’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가 쏜 총에 맞은 것으로 짐작됐다. 몸에 총알이 박힌 채로 영월이는 엄마 잃은 새끼들을 보살펴왔다.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영월이가 남긴 새끼 중 두부와 밤이는 인천시 강화로 입양됐다. 솔이는 강원도 정선의 가정으로 보내졌다. 

똘이와 비비는 아빠와 형제들이 포획·구조될 때 잡히지 않았다. 그들이 산속에서 짝을 이뤄 두 차례 새끼를 낳았다. 처음 낳은 새끼들은 장마 때 한 마리만 빼고 모두 죽었다. 2017년 12월 새끼 6마리(3세대 들개)가 다시 태어났다. 바위 아래에서 정혜주에게 발견된 두 번째 새끼들은 벨기에와 경기·충청 등으로 입양 갔다. 똘이의 첫 출산 때 살아남은 한 마리가 짱아였다.

“또 도는 거야?”

길모퉁이에 앉아 숨을 고르는 할머니에게 양순옥이 말을 건넸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할머니 앞엔 수거한 폐지가 조금밖에 없었다. 폐지를 둘러싼 경쟁은 치열했다. 오토바이나 차를 몰고 다니며 ‘속도전’으로 훑어가는 남자들이 있었다. 리어카를 끌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양순옥과 노인들은 “당할 수가 없었”다. “폐지로 한 리어카 죽도록 채워 가도 손에 쥐는 돈은 1500원(30㎏ 기준·㎏당 50원)”밖에 안 됐다. 옷(㎏당 250원)이나 쇳덩이(㎏당 200원)가 그나마 나았지만 발 빠르고 손 빠른 사람들이 남겨 두지 않았다.

도시는 부수고 다시 세우는 무한 반복으로 증식했다. 서울 도심을 털어먹은 개발이 서울 변두리로, 수도권으로, 전국 각지로 손을 뻗었다. 재개발·재건축이 전국화되면서 엽사 채만철(가명·68·1회 등장)에게 들개 포획을 위탁하는 자치단체들도 전국으로 확산됐다. 서울시 포획 작업을 도맡았던 채만철은 인천, 경기 의정부·남양주, 전북 군산, 경남 김해 등으로 다니며 들개를 포획했다. 수도권 노후 지역으로 개발이 전염되는 경로에 수원 ㄱ구역도 있었다. 정혜주의 의뢰를 받은 마취총 전문가 채만철이 지난해 2월 ㄱ구역으로 왔다.

똘이의 구조가 시급했다. 똘이는 두 차례나 올무에 걸렸다. 첫 번째 올무는 비비가 이빨로 끊어냈다. 두 번째 올무가 똘이의 목을 괴사시키고 있었다. 채만철이 똘이에게 마취 주사기를 명중시켰다. 채만철이 올무를 잘랐을 때 똘이(현재 보호소 생활)의 목은 피투성이였다. 비비와 짱아는 마취총을 피해 달아났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ㄱ재개발구역 야산에 혼자 남은 ‘들개’ 짱아. 사진 정혜주 제공

수직의 경계

“저 고양이들이 여기까지 밀려 왔네.”

폐지 수레를 끌고 가던 양순옥의 눈에 낯익은 고양이들이 들어왔다. ㄱ구역에서 사라진 고양이들이 그가 폐지를 줍는 동네에 나타나 쓰레기를 뒤졌다. 철거로 ㄱ구역을 떠난 고양이들은 처음엔 양순옥의 지하방이 있는 골목에서 먹이를 구했다. 주민들의 타박을 받고 모습을 감추더니 반대 방향인 시장 쪽으로 옮겨와 있었다.

“너희나 나나 집이 없으니까 이렇게 쫓겨다니지.”

양순옥은 수원에 처음 살기 시작한 2000년부터 지하방 세입자(보증금 3700만원)였다. 2014년 ㄱ구역 안으로 이사했을 때도 지하(보증금 4천만원)였고, 지난해 6월 이사 나와 구한 방도 지하였다. 2017년 12월부터 ㄱ구역 퇴거를 독촉받았으나 이사 갈 집을 구하지 못한 양순옥은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다. 옆집까지 부쉈을 땐 “설움은 고사하고 너무 무서웠”다. “15년 동안 폐지 일을 하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그땐 정말 많이 울었”다. ㄱ구역 주민들이 한꺼번에 방을 구하면서 방값까지 뛰었다. 지금 사는 전세 5천만원짜리 지하방이 그가 평생 경험한 가장 비싼 방이었다. 그가 지하에서 올라올 때마다 눈앞으로 솟구치는 펜스는 안에서 살 수 있는 자와 살 수 없는 자의 자격을 가르는 수직의 경계였다.

채만철의 마취총을 벗어난 비비와 짱아는 야생의 삶을 이어갔다. 채만철이 포획(지난해 9월 마취총을 맞은 개가 쇼크사하자 중단) 일을 그만둔 뒤 정혜주는 다른 전문가를 찾아 비비(현재 똘이가 있는 보호소에서 생활)를 구조했다. 이때도 짱아는 몸에 주사기를 꽂은 채 산으로 도망쳤다. 그 짱아가 한 달 뒤 비쩍 마른 모습으로 양순옥의 리어카 주위에 나타났다. 굶주림에 지쳐 동네로 내려온 짱아는 양순옥과 정혜주가 주는 사료를 먹으면서도 두 사람과 거리를 뒀다. 인간세계가 두려울 땐 양순옥의 리어카 밑에서 사료 그릇을 물고 나와 산으로 올라갔다. 폐지를 주우러 나갈 때 양순옥은 사료 그릇을 채워주며 짱아가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얌전히 있어.”

도시가 거부한 인간이, 인간이 흘린 부스러기들을 주우며, 인간에게 버려진 존재들을 돌봤다.

양순옥이 수레를 밀며 도로를 건너갔다. 도로 저편에서 버스 한 대가 달려왔다. 20여년 전 그가 강원도 집을 뛰쳐나왔을 때도 버스가 오고 있었다. 정처 없이 걷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탄 버스가 이 동네로 그를 데려왔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친 그는 낮엔 식당에서 일하고 새벽과 밤엔 폐지를 주워 딸을 대학원까지 보냈다. 그도 짱아도 도망쳐야 살 수 있었다.

건물을 밀어버린 ㄱ구역을 포클레인과 중장비가 오가며 땅을 다졌다. 최근 ㄱ구역 펜스 옆에 철조망이 새로 설치됐다. 철조망에 막힌 짱아는 더는 동네로 내려오지 못했다. 양순옥은 지하에 갇혔고 짱아는 산에 갇혀 있었다.

“잘 있니? 이젠 너 짖는 소리도 안 들린다.”

폐지와 플라스틱통이 가득 쌓인 수레를 끌고 양순옥이 ㄱ구역 옆길을 올라갔다. 그가 펜스를 올려다보며 짱아의 안부를 물었다. 양순옥의 키는 145㎝였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가 폐지 더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끝>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양순옥씨가 폐지 실은 손수레를 밀며 ㄱ재개발구역(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펜스 옆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다. 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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