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지영씨는 아이를 낳은 뒤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젠더 이슈를 대하는 자세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기본값’
남성 절반 “평등한 삶 투쟁 지지”
다른 절반 “개념 왜곡해 답답…
무슨 일만 나면 성차별 운운 싫어”
100명중 80명 “한국 남녀 불평등”
여성 29명 아이 낳을 생각 없어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직장·출산 등 결혼하면 여자 손해”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지영씨는 아이를 낳은 뒤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물두살 여성 유수민도 결혼 생각이 없다. 엄마의 삶이 그렇게 만들었다. 엄마에겐 꿈이 있었다. 대학도 나오고, 행사 기획 일을 하려고 공부도 했다. 아빠와 같은 꿈이었다.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아빠는 행사 기획 일을 하고 있고 엄마는 꿈을 포기했다. “둘이 같은 꿈을 꿨는데 엄마만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런 걸 보면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아요. 다 그렇지 않을까요? 아빠처럼 살고 싶어요.” 스물두살 여성 이송아(가명)는 자신을 ‘반혼주의자’라고 한다. “한국에선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여자만 노예 생활이에요. 아무리 봐도 좋은 점이 없어요. 결혼하는 순간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아니면 회사 다니면서 임신·출산·육아를 겪어야 하고…. 남자들 육아휴직이 늘었다지만 여자만큼은 아니잖아요. 국가에서 출산율을 높이고 싶으면 그런 게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청년 100명은 ‘성평등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묻는 항목에서 간극을 드러냈다. ‘한국 남성의 분노에 공감한다’고 답한 여성은 50명 중 11명인 반면 남성은 50명 중 25명이나 됐다. ‘한국 여성의 분노에 공감한다’고 답한 여성은 50명 중 36명이었고, 남성은 50명 중 24명이었다. ‘법은 남성에게 불리하다’고 답한 남성은 50명 중 18명에 이른 반면 여성은 50명 중 4명만 동의했다. ‘법은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답한 여성은 23명, 남성은 11명이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점 차이가 컸다. 19~23살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본값’이다. 스물두살 여성 김우연(가명)은 “페미니즘은 성차별을 지양하자는 거니까 너무 당연한 운동”이라고 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남자애들이 많은데 너무 답답해요. 자기들은 겪은 게 없으니까 저러나 싶어요. 자기들도 힘들다는데, 배부른 소리 같고요.” 스물세살 여성 유지연(가명)도 페미니즘에 대해 “사회적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가치관이고 인간 평등을 지향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통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거부하던데 자기 권력을 빼앗긴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자기들도 권력이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겠죠?” 쏟아지는 또래 여성들의 분노를 남성 50명 중 절반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스물두살 남성 김종훈은 “공정한 사회를 위해 남녀평등 같은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하다”면서도 페미니즘을 비판했다.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뉴스를 통해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를 접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어요. ‘모든 남자가 이럴 거다’ 일반화하는 게 싫어요.” 스물세살 남성 김도훈(가명)도 마찬가지다. “개념 자체를 왜곡해서 쓰는 것 같아서 답답해요. 무슨 일만 일어나면 ‘성차별’로만 접근하니까 좀 그래요.” 입장은 ‘성별’로만 갈리지 않았다. 스물한살 김민석은 남성이지만 “평등한 삶을 쟁취하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객관적으로 여성 차별이나 혐오가 심각한 사회라고 봐요. 여성들만이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있죠. 임금 격차도 크고요.” 스물두살 남성 이영우도 “여성 차별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지지한다. 분명히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지향”이라고 답했다. _________
페미니즘 반응 가른 집단과 지역의 ‘온도’차 페미니즘에 대한 지향을 가른 또 다른 요인은 현재 속한 집단이나 지역의 ‘온도’였다. ‘나는 한국 여성들의 분노에 공감한다’는 말에 남녀 100명 중 60명이 공감했는데,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선 그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16명 중 2명을 뺀 14명이 여성의 분노에 공감했다. 반면 고졸 취업자 10명 중에선 2명만이 여성의 분노에 공감한다고 답했고, 전문대 재학생 사이에선 14 대 14로 공감하는 이와 공감하지 못하는 이의 비중이 같았다. 지역에서도 4년제 대학에서 여성의 분노에 공감하는 비율은 60~70% 정도로 높았다. 대전의 한 전문대 학생인 스물한살 여성 정수경(가명)은 “남자는 전공을 살려 어디든 나가는데, 여자라서 나갈 수 있는 범위가 좁아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페미니즘엔 손사래를 쳤다. “아무 생각 없어요. 내가 속한 게 아니면 관심이 없어요. 관심사가 아니에요.” 인천의 전문대학에 다니는 스무살 여성 배미연(가명)도 “페미니즘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다. “페미니즘은 남녀평등에 관한 건데 요즘에는 너무 남자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무조건 편을 가르니까 진절머리가 나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여기는 청년들은 이런 반응들이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진을 전공 중인 스물두살 여성 김선희는 여성주의 영화를 만드는 단체 ‘찍는 페미’에서 활동하는 자타공인 페미니스트다. 그러나 그는 “저조차 가끔 남들, 특히 남성들 앞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쓰기가 두려울 때가 있다”고 했다. “그냥 여성주의자라고 하거나, 인권 운동을 한다고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고 나서 항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후회해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러니 ‘페미니즘’이 더 많이 노출되고, 더 많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김윤주 강재구 김혜윤 서혜미 기자 kyj@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