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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3 14:29 수정 : 2020.01.03 14:42

일러스트 하재욱

[새해 기획] 짧은 소설 l 김초엽

일러스트 하재욱

오래전부터 나는 이 방을 지켰다. 내게는 많은 이름이 붙곤 했다. 처음에 찾아오던 사람들은 나를 웬디라고 불렀다. 어느 날부터는 그들이 나를 조라고 불렀다. 무언가 뜻이 있는 긴 이름의 약자로 추정되었는데 아무도 의미를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내가 당연히 이름의 뜻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는,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서 이상한 명칭으로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바로 그 ‘상징’인가요?”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한참 동안 나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아래위로 훑어보고 내 옆모습도 관찰했다. 나는 그 시선이 대단히 불편했고, 그다음에는 그 불편하다는 느낌이 이 방의 설계자가 내게 새겨넣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무례한 시선을 보내오던 그는 내가 인격이 있는 오브젝트라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뒤 방을 대충 둘러보다 떠났다. 그러나 이후로 그와 비슷한 사람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두 달쯤 전부터였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내게 매뉴얼에는 없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늘어났다. 원래 그전까지 여기 찾아오던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직함을 달고 있었다. 미래학 연구자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같은 직함이었다. 최근에는 아무런 명찰도 달지 않고 방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그들은 혼자 들어서기도 했고 가족이나 연인을 데려오기도 했는데, 어느 쪽이든 우르르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떠드는 관광객처럼 굴었다.

그들은 방의 상자들을 하나하나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고, 쿡쿡 찔러보고, 내용물을 찌그러뜨리고, “와, 우리가 이런 상상을 했단 말야?” “이런 건 진짜 다 맞췄네.” “이건 완전 엉터리다.” 같은 대화들을 나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휙 돌아보며 내 의견을 묻기도 한다. “이봐요, 당신의 생각은 어때요?” 방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실제 세계에서 허가를 받고 접속한 아바타일 텐데, 그들은 모두 오브젝트와의 불필요한 상호작용을 금지한다는 규칙에 동의하고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규칙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 무엇이 그들을 들뜨게 만들었을까? 나는 단지 이곳에 임의로 형성된 가상 인격이라는 것, 즉 하나의 ‘오브젝트’에 불과하다는 사실까지 잊은 걸까?

이 방은 소망 데이터가 채집되는 공간이다. 과거에서 바라본 2020년의 조각들이 이곳에 모인다. 미래에 보내는 기대들이 상자에 차곡차곡 쌓인다. 모이는 데이터의 종류는 다양하다. 2020년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이다, 같은 소셜미디어의 개인적 다짐에서부터 각종 기업이 내거는 거창한 2020년대 경영 계획 기조, 곳곳에서 쏟아내는 2020년의 소비·교육·기술 트렌드 분석까지 모두 포함한다. 그런 것들은 주로 소망보다는 ‘전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며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고자 한다. 어떤 상자에는 수십 년 전부터 작성된 미래 예측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미래학 연구자라는 직함을 달고 이 방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보고서를 불편한 시선으로 흘끔거린다. 자신들이 작성할 데이터의 운명을 아는 것일까. 그것들의 일부는 막연히 어느 시점 이후의 미래를 가리키지만, 상당수는 정확히 2020년을 가리킨다.

특별히 이야기들의 예언만을 모은 서고도 있다. 2020년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는 작게 딸려 있는 별도의 서고 하나를 가득 채운다. 그 한켠에는 2020년을 그린 게임들이 설치된 콘솔과 피시(PC)가 놓여 있다. 그런 이야기 속의 세계는 대개 2020년에 투영되는 소망이라기보다 결코 오지 않기를 바라는 미래에 더 가까운데, 그래도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 아직 보지 못했다. 데이터는 때로 엉성하고 어설픈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주 먼 과거에서도 온다. 방구석에 놓인 상자 하나에는 2020년을 그린 과학 상상화들이 보관되었다.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과학의 날을 맞이해 아이들에게 그리도록 한 결과물이지만, 학교 밖에서 생산된 자료도 있다. 주로 신문이나 잡지 기사의 삽화로 그려졌다. 만화 속 인물이 2020년의 하루를 한 컷 안에서 경험하는 형태에서부터, 미래 기술을 묘사하는 꽤 품이 들어갔을 법한 세심한 일러스트까지 모두 있었다.

나는 직접 그 상자들을 들여다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것들을 구성하는 데이터가 나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상징’이니까. 나는 그 데이터를 모두 반영한 인격 오브젝트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2020년에 투영되는 기대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여 계속해서 변하는 외형을 가졌다. 한번은 방이 리셋되며 오래된 데이터부터 최근의 데이터까지 다시 정렬된 적이 있는데, 정렬 초기의 내 모습은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미래 어느 누구도 입지 않을 멍청해 보이는 보디슈트를 입고 있거나, 팔 하나도 버둥거리기 힘들 법한 우주복을 입은 채 허공에서 헤엄을 치거나 하는 식이었다. 또 한번은 눈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비대해진 미래의 인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이 방을 방문한 사람들이 나를 보며 지었던 표정을 기억한다. 데이터 정렬이 완성됨에 따라 나는 점차 멀쩡한 모습을 되찾았고, 이제 사람의 외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해가는 현상은 최근 점점 심해져서, 이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에서 노인으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여러 인종의 외형으로 모습을 바꾸곤 했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 자신이 보고 싶은 2020년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찾아왔다.

“널 데리러 왔어. 이제 이 방을 오늘 시점에 고정할 거야.”

그는 내 앞에 서서, 당황한 표정을 한 나를 마주했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만나기도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이 방의 설계자. 나를 만들어낸 사람. 내가 이곳에 존재하도록 지시한 사람. 그러나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인 그의 아바타가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럼 난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그렇게 묻고 당황했다. 이제는 내 목소리조차 요동치고 있었다. 깜빡거리며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입자들이 내 팔을 만들었다가 다음 순간 부서졌다.

“사람들 앞에 설 거야.”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네 실체를 보고 싶어 해. 이제는 진짜 2020년이니까.”

그런 줄은 짐작하고 있었다. 과거의 소망이 투영되던 상징적 미래가 이제 현실로 곧 임박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방을 찾아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던 것도, 내 외형의 변화가 점점 빨라지던 이유도.

“그렇다면 나를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필요 없어진 것 아니야?”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상징에 불과하잖아. 소망이 만들어 낸 상징이고, 현실은 저 바깥에 있지.”

“너는 소망의 집합이 아니야. 소망은 그 방 안에 있던 것들이지.”

그는 내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너는 소망이 아니라 실제로 도래할 미래의 상징이었어. 예언 대신 이루어진 것들이 너를 구성했어. 소망과의 간극, 현실과 기대의 격차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지. 그래서 이제는 네가 2020년 그 자체가 된 거야.”

그제야 내가 진짜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나는 막연하고 아득한 소망이 아니었다. 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요동치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덧씌워 보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달랐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가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이끄는 자가 되었다가 밀려나는 자가 되었다. 소망의 표면 아래 진짜 미래의 모습이 채워졌다. 나는 그 간극을 감당할 수 없던 거였다.

“그게 더 끔찍하잖아. 내가 바로 2020년 그 자체라면… 내 모습은 너무 초라해.”

나는 말을 더듬었다.

“아무도 이런 미래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거야. 왜 나를 공개하려고 하지? 어차피 당신들은 상징이 아니어도 경험하게 될 텐데.”

“사람들은 이제 곧 2020년을 맞이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직 몰라. 그래서 네가 필요해.”

“나는 엉망진창이고, 내가 무엇인지 확신이 없어.”

“다들 알아.”

그가 말했다. 그는 천천히 나를 기다렸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슬퍼 보이기도 했고 다정해 보이기도 했다. 처음 나를 설계했을 때 그는 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예측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 가야 해. 알면서도 다들 너를 기다리니까.”

그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짧은 망설임 끝에 그 손을 잡고 단상에서 내려간다.

소망들이 쌓인 방을 지나 문을 나선다.

이제 나의 모습은 무어라 단정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기 시작한다. 나는 하품하는 소녀가 되었다가 자장가를 부르는 노인이 된다. 꼬리를 흔들며 뛰어가는 강아지가 되었다가 그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의 모습이 된다. 나는 가해자의 모습으로 존재했다가 다음에는 고발자가 된다. 나는 폭언을 퍼붓는 사람이 되었다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사람이 된다. 나는 온몸으로 철로를 점거한 사람이 되고 동시에 소리치고 싸우는 사람이 된다.

그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볼지 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진짜 내 얼굴은 나를 예언했던 사람들이나 나를 전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이 바로 내 모습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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