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완/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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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재외동포 사회는 대선이 있는 해인 5년마다 한 차례씩 열병을 앓는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300만 재외국민들이 ‘빼앗긴 한 표’를 되찾자는 목소리로 웅성거린다. 1972년 10월 유신 직후, 국외 부재자투표를 보장했던 기존의 대통령선거법이 통일주체국민회의법으로 대체됨에 따라 참정권 행사의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때 주권을 박탈당한 동포들은 아직도 유신시대에 살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데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희망에 부풀어 있다. 열린우리당이 2가지, 한나라당이 3가지의 참정권 보장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서도 법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보장한 법안이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 이유도 한심하다. 법안 발의의 형식요건인 의원 20명의 서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외국민들은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풍성한 잔칫상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것 같은 우려도 있다. 5가지 법안 중 2가지가 핵심인데, 선거권 부여 대상의 범위를 두고 갈라진다. 130만 단기체류자에게만 부여하자는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 법안과 140만명의 장기체류자를 포함해 270만명에게 부여하자는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 법안이 맞서 있다. 단기체류자는 흔히 주재원과 유학생을 일컫는데, 요즘은 영주권을 받기 이전의 거주자들도 포함된다. 이들이 중국에만 60만명에 이른다. 장기체류자는 영주권 소지자로, 미국과 일본 등에 집중돼 있다. 이 밖에 400만명에 이르는 외국 국적 소유 동포들은 국내 참정권 부여 대상이 될 수 없다. 제헌의회 이래 우리 국회가 변함없이 지켜온 전통 중 하나는 선거법만큼은 날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법은 정치인들에게 게임의 룰이며 심판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야가 타협을 거쳐 합의에 이르러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현재 130만명의 단기체류자들에 대한 선거권 부여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자이툰 부대원이나 외교관처럼 국가의 명령에 따라 국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국내 주민등록이 있는 단기체류자에게는 마땅히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140만명의 영주권자들이다. 외국에서 ‘영주’하며 국내로 돌아올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 왜 국내 선거에 개입해야 하는가부터 주민등록이 말소돼 선거기술상 문제라는 의견까지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다. 우려스러운 것은 여야 양당이 득표 계산에 따라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는 태도다. 여야는 서로 상대방의 법안을 받아들이면 각각 수만에서 수십만 표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격이다. 유학생, 주재원들은 20~30대가 많아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을 보여왔으며, 반대로 50~60대의 영주권자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거법안이 5가지나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이런 대립으로 단기체류자들에 대한 투표권조차 성사되기 어렵게 됐다. 지난달부터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준비위원회’가 공청회를 준비하고 재외동포 전문지인 〈세계로신문〉에서 참정권 되찾기 1만명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오는 6월 임시국회까지 앞으로 석달여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국외투표를 실시하려면 3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으므로 역산해 보면 9월 이전에 임시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한다.우리가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시적으로 국제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재외동포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순서다.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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