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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9 17:58 수정 : 2007.06.21 13:55

조홍식/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가뭄이 오래 지속되어 땅이 갈라지기 시작하면 아전인수의 유혹은 골수를 파고든다. 12월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지난 일요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 대한 한국 언론의 의미부여 경쟁은 이런 유혹의 힘을 역설하고 있다. 보수에서는 세계적 흐름이라고 선동하느라, 진보에서는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는 시저와 같은 심정으로 “프랑스 너마저!”라고 넋두리를 읊으며 경각심을 고취하느라, ‘신자유주의의 승리’에 박수치거나 한탄하고 있다. 과연 프랑스는 신자유주의에 무릎을 꿇은 것인가?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 요소가 도입되기 시작한 역사적 시점을 따지라면 2007년 대선이 아니라 1982년 사회당·공산당 연합정권의 정책 전환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당시 좌파 연정은 프랑스에서의 일국 사회주의와 세계적 신자유주의 흐름에 적응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하였다. 그 이후 프랑스는 속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적어도 경제 영역에서는 시장 원칙을 확대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가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부분적 변화가 이뤄졌다고 해서 앵글로 색슨형의 시장 사회로 돌변했거나 앞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논리적 비약이다. 프랑스의 조세 부담률은 40%대로 여전히 30%대의 영국이나 20%대의 미국보다 현저히 높으며, 그런 점에서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사회주의적 국가다. 사르코지의 대선 공약이 완벽하게 지켜져서 5년 뒤 국내총생산 대비 조세 부담률을 4%포인트 줄인다고 해도 프랑스는 여전히 영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사회주의적 사회임이 틀림없다.

달리 말해서 120㎏의 비만 성인이 체중을 줄이려 노력한다고 해서 홀쭉이가 되는 것도 홀쭉이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사르코지 자신이 “영국의 좌파가 실천하고 있는 것을 프랑스의 우파가 제안하는 용기를 가질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데서도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은 프랑스 우파가 영국 좌파보다 좌익적이라는 점이다.

이번 프랑스 대선 읽기에서 핵심은 사르코지의 성공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보수주의적 사회·문화정책 중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있다. 사르코지의 연령별 최대 지지층은 60살 이상이다. 이들은 종신 연금의 혜택을 누리는 계층으로 보수주의의 텃밭이다. 계층별로는 수공업자와 소상인의 82%가 사르코지를 지지했다. 이들이 대자본을 대변하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질서와 권위를 위한 보수주의 중에 무엇을 선호하는지는 뚜렷해 보인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가장 보수적 연령과 계층에서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희망했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선에 관해 읽은 기사 중에서 가장 명확하다고 판단되는 글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프랑스는 성장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은데도 외국의 직접투자 자본은 프랑스에 몰려들고 프랑스의 시간당 생산성도 미국보다 높다. 둘째 프랑스에서 이민자들이 사회적 소요를 일으키지만 미국의 도시 폭동에 비하면 온건한데, 그 이유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체계를 포함한 사회보장제 덕분이다. 셋째 프랑스는 중소상인들을 대규모 할인매장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그 덕분에 치즈가게와 빵집이 어우러진 아담한 동네 문화를 유지하였고, 이는 프랑스가 분위기 있는 관광대국이 될 수 있는 근원이다. 마지막으로 사르코지는 주간 35시간 근무제나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에서 변화를 주장하지만 감히 이 프랑스적 제도의 기본적 철학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이 기사가 실린 신문은 프랑스의 온건좌파 <르몽드>도 아니고 한국의 진보 <한겨레>도 아니다. 보수적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스>다.

조홍식/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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