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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7 18:41 수정 : 2008.01.07 18:41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시론

시장친화적 경제운영을 표방한 이명박 당선인의 행보가 삐걱거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수위는 정신 없이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그것이 과연 시장친화적 경제운영 원리와 부합하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인수위는 최근 통신요금 인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문제는 소위 민생과 직결된 문제이고 작년에 시민단체로부터 문제 제기도 많았던 부분이다. 따라서 정책 방향 그 자체야 특별히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게 없다. 그러나 정책을 구현하는 방법과 관련해서는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유류세 인하 문제와는 달리 통신요금 인하 문제는 사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관치 경제가 아니고서야 정부가 시장에서 결정되는 민간기업의 가격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예외는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 경쟁이 저해된 상태에서 결정된 독과점 가격일 경우다. 이때는 공정위가 개입하여 적절히 시정하도록 하면 된다.

그런데 인수위는 한편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면서 공정위를 구석으로 몰면서, 다른 한편으로 민간 기업에 통신요금 인하를 종용하고 있다. 이것이 시장경제인가.

또다른 예를 들어 보자. 인수위는 최근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여러 정책을 발표했다. 10조원 규모의 신용회복기금을 조성하여 연체자 혹은 저신용 고금리 부담자의 삶을 보살펴 주겠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신용회복기금의 재원은 휴면예금 또는 생보사 상장 관련 기금으로 조달하고, 연체자의 경우 원본을 다 갚되, 변제조건을 일부 완화해 주고, 저신용 고금리 부담자의 경우 저금리 대출로 갈아 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불량자를 돕겠다는 갸륵한 정책의지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은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우선 재원조달부터 문제다. 휴면예금은 엄연히 예금자의 자산이다. 그런데 시장경제를 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것을 자기돈 쓰듯이 가져다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생보사 상장 관련 기금 역시 과거에 생보사가 홀대했던 유배당 계약자를 위해 쓰는 것이 타당하지 정부가 마음대로 생색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금융기관의 팔을 비틀어서 해결하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금융기관이 보유한 연체기록을 삭제하라는 발상이 나오는 이유는 이런 얄팍한 문제의식에서 연유한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개인도산 제도를 정비하는 쪽으로 풀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가의 법질서와도 부합하고 시장경제의 원리와도 충돌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채권자와 채무자의 균형을 잡는 데도 훨씬 우월한 방법이다. 도산제도가 채권자의 채권을 변제받을 권리와 채무자의 지급능력을 조화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본 시각이 잘못되었기에 정책 선택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연체자에게 원금을 전부 상환하라는 조건이 그 좋은 예다. 변제능력이 거의 없는 연체자에게 원금을 다 갚으라고 하면 죽을 때까지 갚으라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이것은 사실상의 노예제다. 선진국은 사실상의 노예제를 막기 위해 법원에서조차 3년이 넘는 변제계획을 작성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존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멋있고 과단성 있는 모습을 보이려는 유혹을 억누르고 경제 원리와 법질서를 존중하는 인내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당선 후 보름도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은 부정적이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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