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1.13 18:58 수정 : 2008.01.13 19:08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시론

지난 10일 대통합민주신당은 손학규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다. 신당이 놓인 상황을 보면 예정된 경로였다. ‘노무현 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정치지형, 보수(자유신당)·중도보수(한나라당)·중도진보(대통합민주신당)·진보(민주노동당)의 지형이 4월 총선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형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태동하지 않는다. 범진보세력이 축소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무리한 추진 등 미시적 전략의 실패, 둘째 민주화 이후 세계화 시대 거시적 비전의 부재가 그것이다. 거시적 조건은 미시적 요인에 영향을 끼치고 미시적 요인이 다시 거시적 조건을 악화시키는 반복 속에서 범진보세력의 지형이 축소됐다. 그리고 이 악순환 과정에서 중도보수와 중도진보의 차이는 사실상 소멸했다.

세계화 시대의 정치지형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세 세력으로 분화된다. 성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세력’과 분배를 중시하는 ‘반신자유주의 세력’,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력은 다시 성장을 더욱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우파’와 분배적 요소를 보완하려는 ‘신자유주의 좌파’로 나눠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말한 바 있지만, 이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를 포함한 서유럽 지식인들이 2000년대 초반 이미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제3의 길’은 바로 ‘신자유주의 좌파’ 노선을 지칭한다. 그 핵심 테제는 앤서니 기든스가 강조한 ‘혼합경제 모델’에 교육개혁·직업훈련을 더한 ‘사회 투자’와 ‘적극적 복지’다. 영국에서는 10년 넘게 이 전략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반면, 프랑스에서는 일찍 좌초했고, 독일에서는 보수세력과의 대연정으로 변신했다. ‘제3의 길’ 지지자들은 ‘신자유주의 좌파’에서 ‘좌파’에 방점을 찍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반대자들은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 속에 위치한 좌파, 신자유주의의 아류일 따름이라고 비판한다.

2000년대 들어와 ‘제3의 길’은 새로운 진화를 모색했다. 미국과 서유럽의 진보적 정책 전문가들은 두뇌집단으로서의 ‘정책 네트워크’를 만들고 새로운 ‘진보적 협치’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들은 손상된 연대를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평등을 모색하고 새로운 평등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려는 정책들을 탐색한다. 시장 자율과 정부 개입 사이의 역동적인 균형을 모색하려는 데 그 목표가 있다.

세계화 시대에 개방과 성장의 요구는 일종의 구조적 강제다. 이를 거부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러나 구조적 강제는 주어진 조건이지 순응해야 할 법칙이 아니다. 실용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방법일 따름이지 목표가 아니다. 진보가 보수와 다른 것은 개방과 성장에 연대와 평등을 양립시키는 데 있으며, 이것이 바로 21세기 신진보의 기본 가치다. 중요한 것은 레토릭(미사여구)이 아니라 신진보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 콘텐츠다.

손학규 대표는 취임과 더불어 한국적 ‘새로운 진보’와 ‘제3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게 선진국으로 가는 변화라면, ‘선진국으로 가는 비한나라당의 노선’ 제시가 중도진보세력에 부여된 핵심 과제다. 허물어진 집이라면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 장기적 시각에서 신보수와 ‘가치 전쟁’을 벌여야 한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정책을 품고 있는 집으로서 정당의 노선을 수립하기 위해 고투할 때에만 정치 지형의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