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20 19:35
수정 : 2008.01.20 19:35
|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
시론
현재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에 형사책임을 묻는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태안지역 환경오염에 대한 삼성중공업 등의 민사책임을 묻는 소송이 준비되고 있다. 그런데 사안별 특검제와 현행 손해배상 법리의 문제점 때문에 충분한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삼성 특검은 이건희·이재용 부자와 핵심 임원들의 자택과 집무실, 삼성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한 수사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수사가 소기의 성과를 얻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0월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였을 때 검찰은 삼성과의 유착을 부인하는 데 급급하면서, 삼성에 대한 즉각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이후 김 변호사의 폭로에 근거가 있음이 밝혀지자 검찰은 삼성에 대한 계좌추적을 행하지만, 핵심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은 미루어졌다. 그리하여 이번 특검이 출범하기 전 약 석달 동안 “관리의 삼성”은 검찰 출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만반의 대비를 하고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필자는 삼성 특검의 분투를 고대하면서 동시에 지론인 상설특검제의 도입을 다시 주장한다. 권력 핵심 인사나 검찰 수뇌부가 수사 대상이기에 검찰의 엄정한 수사가 난망한 사건은 국회 의결만 있으면 바로 특검 수사가 발동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상설특검제는 수사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없앨 수 있으며,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 법률을 만드는 번잡함도 피할 수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처음에는 상설특검제를 도입할 듯하더니 법무부의 반대가 있자 슬그머니 논의를 중단하였다. 재고를 요구한다.
한편 환경재앙을 일으킨 선박을 운행한 개인에게는 형사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고 예방을 위한 주의 의무와 관리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은 선주기업에 대한 민사책임이다.
그런데 1995년 여수 앞바다에서 일어난 시프린스호의 원유유출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드러났듯이, 피해 어민들은 자신의 피해에 대하여 입증의 부담을 져야 하고, 입증이 되더라도 현행 ‘실손해액 배상주의’ 원칙은 손해배상의 범위를 좁게 만든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기업이 겁을 먹을 이유가 없다. 피해자와의 개별적 합의금이나 법적 소송 결과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이 기업에 큰 부담을 주는 액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부담한 손해액도 이후 기업의 주가나 상품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가볍게 만회할 수도 있다.
필자는 태안 주민을 지원하고 있는 법률지원단 변호사들의 건투를 기원하면서 동시에, 대형 환경재앙에 책임이 있는 기업에는 실손해를 넘어 배상 책임을 지우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 사례를 들면, 1989년 알래스카 연안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즈호 원유유출 사건에서, 유출 회사인 엑손 발데즈는 일반 손해배상금 2652억원 외에 2조3210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내야 했다. 이렇게 기업주와 경영진을 정신 번쩍 나게 만드는 손해배상액이 부과될 수 있어야 기업은 환경재앙을 예방하기 위해 실질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과거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법안이 마련되기도 하였지만, 위원회 안팎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되었다. “친기업”을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제도를 통하여 대형 환경재앙의 사전예방과 기업의 업무관리체계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기에 도입 주장을 포기할 순 없다. 기업은 영업의 자유를 가져야 하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