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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6 19:29 수정 : 2008.03.26 19:29

하원호 /동국대 연구교수

시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 교육은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교과서쯤 되면 그 배경에 집필하는 쪽의 정치적 입장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지난 정권을 비난하면서 그 동안의 역사 교과서에 만족할 수 없었던 학자 몇 명이 모여 교과서포럼이란 단체를 만들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안’으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를 ‘공정’하게 쓰려 했다 한다.

이 책은 ‘우리 민족’ 대신 ‘한국인’을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 삼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이 쓴 한국근현대사는 ‘보통 사람’들의 역사가 되고, 세계사에서 보편적으로 실천되어 온 근대문명의 한 가닥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보는 눈이 ‘민족’에 갇히지 않고 ‘세계 속의 한국인’에서 출발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보통 사람’이 근현대사의 주역은 아니다.

주역은 따로 있다. ‘개화파에서 출발하는 독립운동 세력과 근대화 세력’이 지난 130년간 역사의 주역이다.

한말의 역사에서 개화파는 소수였다. 물론 선각자적인 식견을 가지고 한국의 근대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그들이 보통사람은 아니다. 한말의 보통사람은 누구일까. 대다수의 농민이다. 그런데 농민들의 저항인 ‘동학농민봉기’는 촌무지랭이들이 왕을 위해 일어난 ‘유교적 근왕주의 운동’이라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한테는 기대를 할 수 없고, 개화파만이 주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개화파가 독립운동세력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일까?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면 개화파의 대다수가 친일로 돌아선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독립운동 세력이 개화파에 뿌리를 두었다는 것은 사실과 달라 그리 ‘공정’하지 않다.

이 독립운동 세력을 다시 대한민국의 근대화 세력에 이어야 하는 데 이게 사실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에 목차에 이름이 나오는 인물이 이승만이다. 이승만의 강조가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고리란 것은 조금만 신경 쓰면 눈치채게 된다. 해방 뒤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이었다고 하지만, 그 이승만의 대한민국에서 김구는 암살당한다.

이승만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좌파척결과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냈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동안 복원시켜 놓은 제주 4·3 항쟁도 다시 이승만의 눈으로 본 ‘좌파의 반란’이 된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지킨 이승만에서 드디어 이 책이 주인공으로 삼는 박정희가 등장한다. 바로 ‘근대화 세력’이다. 소수의 군인 출신 정치가와 재벌들이 이 책이 주장하는 ‘보통사람’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이때 들러리로 등장하는 세력이 있는데 민주화 세력이다. 근대화의 두 축이 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라 한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전두환 정권에 들어서면 민주화 세력은 다시 좌파 세력이 된다. 당연히 북한은 그동안 교과서의 서술과는 달리 비난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보론’으로 등장한다.


역사는 역사가의 눈으로 재구성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근대화다. 그래서 역사의 주역이 근대를 수용하려 한 개화파에서 출발하고 근대화 세력으로 결론지어진다. 식민지시대 근대화에서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근대화를 위한 모든 세력은 역사에서 주역이 된다. 하지만,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이 책에서 구호로만 그친, 근대화 과정에 치인 진정한 보통사람의 ‘자유’ ‘인권’ 같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가운데 고리에 두지 않는 이상, 집필자들만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는 ‘대안 교과서’로 끝날 수 있다.

하원호 /동국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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