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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10 21:59 수정 : 2008.04.10 21:59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시론

총선 결과를 지켜본 마음이 적잖이 착잡하다. 국회 입성에 성공한 후보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 총선은 승자가 없고 패자들만이 벌인 쓸쓸한 잔치였다. 역대 최저를 기록한 투표율, 예상과 달리 과반에 겨우 턱걸이한 여당, 지난 총선과 비교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제1야당의 의석수, 진보세력의 약화, 이름부터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친박연대의 예기찮은 선전 등은 척박한 우리 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거한다.

가장 우려할 것은 정치적 균형의 상실이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등 보수세력이 200석이 넘는 의석수를 차지한 반면,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의 중도개혁 세력과 민주노동당의 진보세력이 차지한 의석수는 채 100석이 되지 않는다. 이제 입법부까지 장악한 보수세력이 실용을 전면에 내걸어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더욱 강화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민주당의 경우 최소한의 견제세력을 확보했다고 자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 다수가 민주당을 한나라당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정당 득표로 얻은 25%의 지지율은 ‘정당 아닌 정당’인 친박연대가 얻은 13%의 2배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선에 이어 민주당이 다시 좌절한 근본 원인은 모호한 정체성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당은 ‘새로운 진보’, ‘유능한 진보’를 내걸었지만, 과거보다 무엇이 새로운지, 보수세력보다 무엇이 유능한지 국민 다수를 설득하지 못했다. ‘박재승발 개혁 공천’으로 지지그룹의 관심을 다시 모으기는 했으나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발길을 끌어오질 못했다.

진보세력의 위기도 이에 못지않다. 분당 상황을 고려하면 민주노동당이 나름 선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지난 총선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과다. 진보세력이 고전한 이유는 두 가지다. 선거 직전의 분열이 하나라면, 자신의 가치와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소통의 어려움이 다른 하나다. 진보적 이념과 정책 못지않게 현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공감대를 넓히는 데 있다.

비례대표를 포함해 3석을 얻는 데 그친 창조한국당 역시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창조한국당은 정글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낡은 정치세력의 교체를 주장함으로써 보수 세력과의 의미 있는 경쟁 구도를 만들어 냈다. ‘사람 중심 진짜 경제’, 환경재앙 대운하 반대 등을 앞세운 창조한국당의 노선은 ‘중도적 반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 문국현 후보를 선택한 은평구민들의 시선에는 창조한국당 노선이 민주당의 ‘중도적 신자유주의’와 결코 작지 않은 차이를 갖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거듭나려면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개혁과 진보의 핵심 가치는 누가 뭐라 해도 사회적 형평의 구현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있다. 둘째, 진보는 자신의 의미에 충실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 진화하지 않는 진보는 더는 진보가 아니다. 이제 진보는 ‘민주화 2.0 시대’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정책대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정치는 비전과 정책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전파하고 심화하며, 지지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의 형성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위기는 새롭게 진화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지속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진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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