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21 22:36
수정 : 2008.04.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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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북한대학원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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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명박 대통령은 캠프데이비드를 처음으로 방문한 한국의 대통령이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의 모두발언에서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부시 대통령은 다른 국가의 수반과 정상회담을 할 때, 백악관, 캠프데이비드, 크로퍼드 목장 세 장소를 사용해 왔다. 그리고 방문자의 등급을 장소로 표현하곤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2등급으로 설정해 놓은 캠프데이비드에 갈 수 있었다. 최고 등급인 크로퍼드 목장에서 일본, 중국, 러시아의 지도자처럼 부시 대통령과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 자신이 부정하고자 하는 전임자인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가보지 못한 곳을 갔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의 등을 두드리면서 캠프데이비드의 잔디밭을 즐겼다.
그 장면은, 한국 대통령이 취임하면 제일 먼저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방문지에서 사대외교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도 있는 좋은 활동사진이었다. 1등급이 못 된 것이 아쉽겠지만, 이제 2등급은 되었다는 사실에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는 긍지를 느낄만도 하다. 때론 형식이 내용보다 중요할 수 있다. 한·미 정상은 친구처럼 행동했다. 이명박 정부가 원했던 동맹의 복원의 지표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용의 측면에서 긍정적 의미를 추출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내용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반평화외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재정의하려 했다. 한·미가 서로의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치동맹, 군사동맹은 물론 경제·사회·문화를 포괄하는 신뢰동맹, 동아시아지역 및 범세계적 차원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평화구축동맹이 전략동맹의 세 구성요소였다. 전략동맹을 한국이 제안하고 미국이 수용하는 형국이었다. 이 과정은, 한-미관계에서 한국의 자율성이 증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전략동맹 제안은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전략동맹은 외부의 위협을 동맹의 존재이유로 설정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략동맹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 내지는 폐기가 필요할 것이다.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스스로 협상의 여지를 없애고 미국적 가치를 공유하겠다고 약속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외교에, 미국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전략동맹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익외교, 실용외교로 대응했다. 주한미군 추가감축 중단과 한국의 미국산 무기구매 지위의 상향 조정 그리고 방위비 분담금 제도의 개선은, 한국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되고, 한국의 미국산 무기수입이 증가할 것이며, 한국이 주한미군에 지불하는 비용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강조하는 대목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의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의 국외파병과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거나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에 한국이 지원을 하겠다는 합의로 읽힌다. 이 모두 한반도의 평화, 동북아의 평화, 세계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합의들이다. 동맹이 평화에 우선할 수는 없다.
보다 우려되는 것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엇박자다. 부시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북한의 우라늄농축에 의한 핵개발 의혹과 북한과 시리아의 핵협력설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한 싱가포르 합의를 승인했다. 아직은 불안정하지만,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가로막던 장벽 하나를 제거한 셈이다.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은 북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이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만약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완전한 신고로 간주하고 테러지원국 해제와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되면, 정책은 없이 말만 가지고도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온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배신을 규탄하며 북한에 대한 이념적 접근을 지속하기 위해 ‘반미보수’의 길을 걸을 것인지 궁금하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한-미관계에서 우리의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지렛대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갑우/북한대학원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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