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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1 20:52 수정 : 2008.05.01 20:52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상임강사

시론

대통령에 당선된 뒤 사르코지는 자신의 승리가 ‘68 혁명’의 관에 마지막 못질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꼭 40년 전 프랑스 파리 교외의 낭테르대 학생 시위로 불붙은 68 혁명을 매장하려는 세력들은 도처에서 득세하고 있다. 아니, 권위·차별·강제노동·전쟁 등에 대항하는 몸부림들을 ‘테러에 대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탄압하는 미국 중심의 제국적 세계질서가 68 혁명을 산 채로 넣는 관이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의 운동을 국가통합의 이름으로 탄압하고 있다. 일본의 후쿠다 총리는 전쟁 포기와 전력을 보유하지 않을 것을 명기한 헌법 9조에 대한 개헌을 서두르면서 전쟁의 자유를 획득하는 방향으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 뒤늦게 찾아와 1980년 5월 광주에 봉인되었다가 87년에 다시 터져나온 한국의 68 혁명은 문민·국민·참여를 내건 정부들의 수중에서 쇠약해진 뒤 이제 이명박 정부에 의해 관에 담겨 차례차례 매장되고 있다.

68 혁명을 매장하려는 세력이 우파만은 아니다. 구좌파 견해를 옹호해 온 사람들도 지난 40년 동안 68 혁명에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처음에는 68 혁명을 폭도로 일컬었던 이들은 이제 그것을 혁명으로 인정하지만 실패한 혁명으로, 정치적 냉소주의를 가져왔을 뿐인 무정부주의적 소요로 폄하한다. 이런 흐름에 최근에는 68에서 연원한 신좌파 일부까지 가세하고 있는데, 그것은 68 혁명이 반자본주의적이었다기보다 자본주의 정신을 쇄신하는 ‘사라지는 매개자’의 구실을 담당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68 혁명은 정치 일반에 대한 냉소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국가 정치로부터 삶 정치로의 이행을 강제했고 삶 자체를 투쟁의 무대로 만들었다. 또 그것은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일국적 케인스주의에서 지구적 신자유주의 이행을 강제했고, 지구 자체를 투쟁의 무대로 만들었다. 요컨대 68 혁명은 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투쟁공간을 확장했고, 노동을 넘어 삶 자체로 갈등 지형을 심화했다. 덕분에 선거·임금·노동조건 외에 생태·성·인종·인권·전쟁·이주·실업·불안정 노동, 교육·주거·빈곤·지식·과학 등이 직접적인 정치적 의제로 등장했다. 우리는 사파티스타 봉기, 시애틀 이후의 대항세계화 운동들과 세계사회포럼 등이 얼마나 깊이 68 혁명으로부터 그 상상력을 가져오고 있는지 안다.

그러나 9·11은 이 진보적 흐름에 쐐기를 박았다. 9·11은 안보 문제를 전면화하면서 반테러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상화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이제 세계주의(초국적 자본)와 국가주의(큰 정부)라는 두 얼굴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초국적인 자본들이 어떻게 국가주의에 의지할 수 있을까? 자본간 경쟁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진보적 사회운동 내부에 존속하는 국민국가에 대한 기대와 호소다. 이것 때문에 국가의 방어를 통해 민중이 겪는 피해를 축소하려는 수동 운동으로 나타나곤 한다. 이 국민주의적 운동 덕분에 자본은 국가를, 다중에 대한 분할통치의 도구로 활성화할 수 있게 된다. 68 혁명은 국가에 대한 어떤 애착도 없는 인류연합의 꿈을 일깨웠다. 전세계 나라들이 자본의 용병이 되어 안보와 치안이란 이름으로 68 혁명의 최종적 매장에 나서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신자유주의를 끝내고 68 혁명의 저 인류인주의적 꿈을 지키고 실현하는 일이 절박한 과제로 제기된 바로 그 시간 아닐까?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상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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