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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4 20:34 수정 : 2008.05.04 20:34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시론

미국 쇠고기 협상 논란을 둘러싼 혼란 속에 정부의 대국민 기자회견이 있었다. 관련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지금 상황에는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다양한 입장이 섞여 있다. 우선 현재의 협상 타결 조건이 정부의 말처럼 안전한가? 물론 아니다. 결코 안전하지 않다. 그러면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위험한 것인가? 아니다.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과학자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가능성에 대한 발언이지 현재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질병에 대한 방역이나 예방은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현재의 발생 숫자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장차 발생할 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단순 오염물질의 경우 자연의 정화작용에 의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감소하지만, 생물학적 위험은 증식과 분열이라는 특징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발생 위험도는 증가한다. 그래서 광우병으로 인해 영국에서 목축산업을 붕괴시키면서도 수만 마리의 소를 도축했고,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에서 병에 걸리지 않는 수만 마리의 닭을 사전에 살처분한다.

광우병은 긴 시간을 통해 자연계에 형성된 종간 장벽을 인간이 파괴해 등장한 질병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의가 요구된다. 원숭이로부터 종간 장벽이 파괴돼 발생한 것으로 밝혀진 에이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발생 초기 서너 명의 사망자로 시작해 30년도 되지 않은 현재, 세계적으로 3천만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내고 있다. 더욱이 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은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특별한 병원체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의 근거가 된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은 2004년에 만들어졌고 당시 참고가 된 과학적 사실은 2003년까지의 연구 결과다. 그러나 5년이 흘러 더 많은 연구와 사례 검토 결과가 쌓인 현재 그 기준은 이제 안전한 기준이 못 된다는 것이 과학계의 견해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협상 과정에서 낡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이 안전하다는 증명을 미국 쪽에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대변인처럼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증거를 대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기자회견장에 있던 관련 공무원들 가운데는 전 정권에서의 협상 때는 이번과 동일한 미국의 요구에 나름대로 거부하며 협상 타결을 하지 않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현 정권의 강한 협상 타결 의지에 맞추어 미국의 조건을 전면 수용한 뒤 국민 앞에서 오히려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야만 했다.

물론 이번 협상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위한 정치경제적 측면 외에 언급하기 거북한 정부의 태만도 있다. 그동안 국내는 안전하다는 주장만으로 국내 소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될 만한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은 한국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으로도 가장 위험한 나라군에 속한다. 따라서 협상 중에 한국이라는 광우병 위험국이 나름대로 통제국 판정을 받은 미국 쇠고기를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 재협상이 어렵다면, 준비부족의 정부 과실과 이번 타결로 예상되는 위험 가능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비책을 제시함으로써 굴욕적 협상과 그로 말미암아 야기된 국민들의 막연한 공포심을 없애야 한다. 무조건 안전하다는 말만 하면서 현재 발생 숫자가 적어 괜찮다는 전염병 사전예방 원칙도 무시한 발언과 더불어 정권 방침에 따라 말을 바꾸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모습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한, 당신들의 ‘참을 수 없는 경박의 무거움’이 국민의 공포를 더욱 증폭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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