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5.12 21:08 수정 : 2008.05.12 21:08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시론

2000년대 들어와 가장 두드러진 것 가운데 하나가 ‘대중’이란 현상이다. 이는 다른 어디보다 한국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월드컵, 미군 장갑차, 대통령 선거라는 세 사건이 연속된 2002년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현저하고 영향력이 크지만, 이 현상이 잘 이해되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특히 현재의 이명박 정부만큼 이에 대해 무지한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선거에서 자신들을 지지해주고 두 달 만에 돌아서서 항의하는 대중을, 자신들이 그토록 ‘해명’하고 있음에도 전혀 믿지 않고 점점 늘어만 가는 대중을 이해하지 못하며, 학교나 열심히 다니고 있어야 할 중·고생들이 누구보다 앞장서 대중의 흐름을 만들고 인도하고 있는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집권 두 달 만에 지지율이 노무현 정부 말기보다 더 낮아진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점에서 현 정권의 미래는 아주 어둡다. 대중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정치는 실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운동을 항상 생각하고 살던 분들 역시 이런 대중에 대해서는 약간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분들이 생각하는 대중이란 변혁을 꿈꾸는 계급적 대중 내지 민중적 대중이기에, 계급적 기반 없이 갑자기 모여든, 진지하다고 하기엔 너무 가벼워 보이는 이 ‘중·고생 대중’, 어떤 조직적 기반도 없이 갑자기 쉽게 모이고 어떤 조직에도 쉽게 지도되지 않는 대중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일 게다.

대중이란 계급이 아니다. 계급뿐 아니라 모든 구분선을 범람하며 만들어지는 하나의 흐름이다. 때로는 분노가, 때로는 열광이나 기쁨이 다양한 경로로 전염되면서 만들어지는 흐름. 2000년대 이후 대중의 흐름이 어떤 조직의 기반도 없이 이처럼 쉽게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인터넷이나 휴대폰 등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거대한 ‘흐름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점점 긴밀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또 정보나 지식이 흘러다니는 공간이어서, 예전에는 정보의 흐름을 독점하고 있던 언론의 힘을 무력화시키면서, 집합적 지성이 형성되는 신경망을 형성한다. 그래서 지금 미국산 쇠고기나 광우병 등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것은,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라는 노인(!)들의 비난과 반대로 그 공간에 찰싹 붙어 사는 학생이나 누리꾼들이다. 이 집합적 지성이 대중의 판단이나 행동, 그 흐름을 좌우한다. 이것이 대중 자신의 지성인 것이다. 비겁한 전문가분들의 거짓말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고, 높으신 분들의 무지는 조롱하고 경멸할 수 있는.

그런데 지금 유독 중·고생이 대중의 선도적 부분이 된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명박 정권의 최대 피해자는 중·고생들 아닐까? 강남 땅 부자님들의 ‘교육관’에 따라 학교를 재편하겠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삶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학교 생활을 정말 “등이 휠 것 같은” 무게로 느끼게 되었던 것이 그들이다. 급식에 쓰레기나 이물질이 섞여 나오는, “로또 당첨금 찾으러 가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 더 작은 확률조차 피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광우병을 자신의 절박한 문제로 고심할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이다. 그러니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대통령의 반문에 어떻게 열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처지에서 부와 권력이 부도덕과 거짓말, 그리고 무지를 무기로 행사하는 사태를 반복해서 보게 된다면, 대체 누군들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대체 누군들 나서지 않을 수 있을까? 따라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면, 누구의 미래도 밝지 않을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