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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9 20:46 수정 : 2008.05.19 20:46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시론

‘불온’ ‘배후’ ‘좌경’. 1970~80년대 사회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섬뜩한 말들이다. 당시 군사정권이 민주화운동이나 비판자를 탄압할 때 흔히 이런 표현들을 사용했다. 그런데 민주화 사회가 된 지도 한참 지났다는 2008년 요즘 이와 비슷한 말들을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다. 그것도 교육을 둘러싼 논의에서.

지난 14일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광화문 문화포럼에서 역사나 경제를 비롯한 사회교과서들이 ‘약간 좌편향’되었으며, 이를 수정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나 교과서포럼 같은 뉴라이트 단체, 그리고 일부 경제 단체들이 이미 몇 년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해왔던 주장이므로 새로울 것은 없다.

그동안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역사학계나 교육계, 교사들은 대부분 별 문제가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좌편향’ 운운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관점의 문제인 것이다. 장관도 한 사람의 개인이니까 교과서 내용을 보는 관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관점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고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70, 80년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교과서 정책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장관의 이번 발언은 대한상공회의소의 교과서 검토 내용을 토대로 했다고 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가들의 단체이므로 자연히 기업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이들의 분석내용 곳곳에는 적극적인 개방을 주장하고 있으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더구나 경제단체의 분석에는 어울리지 않게 정치나 남북관계까지 광범위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그 논조는 한국사회에 대한 객관적 성찰이 아니라 친미, 반북으로 일관되고 있다. 이에 어긋나면 좌편향이라거나 왜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관점이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국가기관은 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지나치리만큼 친기업적 성향으로 오히려 사회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교과부 장관의 이번 발언도 현 정부의 이러한 성향과 맥락을 같이한다.

더구나 장관의 발언은 교과부가 스스로 정한 교과서 검정 절차를 무시하는 것이다. 교과서는 개인이나 출판사가 임의로 펴낸 책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따른 심의를 통과하고 수정을 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 내용에 오류가 있거나 문제가 지적될 경우, 필자들이 검토하여 수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장관은 이런 기본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고치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이번 장관의 발언은 교육적 고려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한나라당 당직을 맡고 있는 한 국회의원은 김도연 장관의 말을 지지하면서 교과서의 자학적인 역사관, 편향된 역사관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들이 말하는 자학적인 역사관, 편향된 역사관이란, 교과서들이 지난날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독재정치를 비판해서 한국사회를 어둡게 그렸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자학사관이라면, 독재정치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역사의 퇴보라고 서술해야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서술하는 것이란 말인가? 남북분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통일운동을 친북좌익이라고 몰아붙여야 긍정적 역사관이란 말인가? 정부는 무엇이 정말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쓰고,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길러주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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