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1 20:09
수정 : 2008.06.0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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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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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부는 국민 뜻을 무시하고 보완책과 더불어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권한도 없는 검역관을 미국에 상주시키거나 검역 비율을 몇 퍼센트 높이고, 조직검사를 하는 등 현실적으로 그다지 효과가 없는 대책을 해법이나 되는 듯이 열거하고 있다. 한마디로 스스로 늪 속에 빠지는 지엽적인 대책이다. 이것은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그동안 현장에서 묵묵히 검역에 힘쓰던 현장 공무원들의 업무량만 늘리는 것으로서 국민 변명용에 불과하다.
검역 당국은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를 수입하던 상황에서 작은 뼛조각마저 찾아내는 철저한 방역체계를 꾸려 왔다. 또한 지금 거리에 나선 국민도 검역이 미비하다거나 소홀하다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미국으로부터 30개월 미만 소의 살코기만을 수입할 때 그것은 어느 나라의 기준으로 보든 안전성이 인정되었기에 전혀 반대 의견을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보완책이나 대책은 국민이 보이는 분노의 원인을 정확히 알 때 마련될 것이다. 과거에 비해서 변한 것은 모든 연령의 살코기와 30개월 미만 소의 두개골·뇌·척수·창자·장간막이 수입된다는 점이다. 특히 광우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30개월령 미만 소에서 편도와 회장끝만 제거된 모든 부위가 수입된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광우병을 전염시키는 99%의 감염력은 특정위험물질( SRM)에 있는데, 광우병 연구에서 세계 어느 곳보다 많은 사례를 근거로 하여 지난달 새로 개정된 유럽연합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규정을 보면, 현재 수입되는 부위는 대부분 특정위험물질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깨끗이 처리된 부위라도 이 물질에 접촉했을 때 그 전체를 특정위험물질로 보라는 단서 조항을 생각할 때 그 위험성과 감염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수입조건으로는 미국에서도 사료용이거나 폐기되는 부위에 불과한 부위가 여과 없이 수입되어 일반인들의 먹을거리로 판매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거리에 나선 국민들은 검역주권 포기뿐만 아니라 이러한 안전성을 우려하는 것이지 단순히 검역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제시된 보완책을 보면 그런 문제에 대한 근본 대책 없이 장황하고 실효성 없는 검역방법만 나열했을 뿐이다. 광우병의 확진 방법으로 뇌조직 검사가 있지만, 그것은 변형프리온의 덩어리가 뇌조직에 구멍을 만든 것을 관찰하려는 것이고, 일반 내장 등에서의 조직검사는 단지 어느 부위인지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 생체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데 요구되는 번거로운 조직 처리 과정을 생각할 때 조직검사는 오히려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검역 실무자에게 일의 부담만 지우게 되는 전혀 쓸모없는 대책이다. 결국 정부의 이런 발상은 이번 협상 과정 중에서 일부 학자를 동원해 무조건 안전하다며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한 고질적인 접근 방식과 동일하다.
그동안 국민을 무시하는 정부의 완고함으로 말미암아 검역 실무자를 포함해 국민 모두 너무 지쳐 있다. 더는 비현실적인 보완책을 제시하여 이미 잘 가동되고 있는 검역 체계에 무의미한 작업 부담을 더하거나 세금을 낭비하지 말고 더욱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일각에서 거론되듯이 지금 상황을 몇몇 고위직의 문책이라는 정치적 해결로 마무리하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된다. 국민의 요구는 그 누구에게 책임을 묻자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해 달라는 민생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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