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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6 19:30 수정 : 2008.06.06 19:55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시론

미국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는 이명박 정부를 혼쭐냈다. 대선과 총선에서 연승을 하여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한 보수진영은 기세등등했지만, 시민의 직접행동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현 집권세력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맹신했다. 정당한 절차에 따른 선거에서 다수 유권자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니 임기 동안은 자신의 방식대로 인사를 하고 정책을 추진할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오만한 오판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국민은 대의 민주주의를 소중히 생각하면서도 그 맹점을 알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은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후보들이 앞 다투어 국민의 머슴을 자처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머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난 후에 자신이 선택한 대표자가 자신을 실망시키거나 배신할 때는 뿔딱지가 난다. 그러면 다음 선거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것인가?

우리 국민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국민은 자신이 나라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충만하다. 자신이 뽑은 대표자의 임기 동안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맡기고 손놓고 지낼 생각이 없다. 반대로 지난 선거와 다음 선거까지의 시간적 간격, 뽑은 자와 뽑힌 자의 신분적 간격을 자신의 직접행동으로 메우고자 한다. 직업적 운동가만이 아니라 중학생도, 예비군 아저씨도, ‘넥타이 부대’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 신은 아가씨도, 유모차 끄는 아줌마도 말이다. 게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 풀뿌리 조직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강한 대중의 직접행동은 향후 어떠한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지속될 것이며,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대표자를 감시·통제하는 핵심적 장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강한 직접행동에 비하여 정당정치는 취약하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의 직접행동이 바로 정치권력으로 전화하기는 어렵다. 대중의 직접행동에서 표출되는 집단적 소망과 의지를 수렴하여 국가의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정당의 존재와 역할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번 촛불시위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과 대중 사이의 소통은 미미했다. 여당은 대통령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면서 행동에 나선 국민을 비난하거나 노회하고 안일한 관료들의 논리를 복창(復唱)했다. 사태가 심각해지고 난 후에야 슬그머니 비판적 언사를 던졌지만 소용이 없었고, 재보궐 선거 참패는 예견되어 있었다.

민주당은 뒤늦게 원외투쟁에 나섰지만 촛불시위대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적극 촛불시위에 참석했지만 그 속에 묻혀 버렸다. 대선·총선 패배 이후 최고의 ‘호재’가 아래에서부터 터져 나왔지만 야당도 정당 독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자축하고 있을지 모르나, 정당 지지도나 조직률은 여전히 취약하고 대중과의 소통구조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여야를 떠나 각 정당은 촛불시위에서 터져 나온 국민적 요구를 새겨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의 핵심인 검역주권과 국민의 건강권 문제는 물론이고, 대운하 반대, 의료·보건·교육의 공공성 보장 등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정당한테 미래는 없다. 권위주의적 또는 기업가적 통치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당은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촛불시위대가 보여준 자유롭고 발랄하면서도 동시에 진지하고 견실한 문화적 특성과 감수성을 배우지 못하는 정당은 구닥다리 ‘꼰대’로 취급되어 쪼그라들고 말 것이다.

촛불시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대중의 직접행동 양식으로 외국에 ‘수출’할 만한 ‘정치적 한류’다. 그러나 ‘운동’과 ‘정치’를 연결하는, 그리고 대중의 직접행동과 대의 민주주의를 매개하는 정당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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